<오후여담>양혜규 설치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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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 우리는 로켓트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그대가 부르는 노래 소리 온 세상을 수놓으리／ 사바 사바 사바 그날이 오면은.’ 박건호가 외국곡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노래로, 가수 민해경이 불러 1982년 발표한 ‘서기 2000년’ 한 대목이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양혜규(48)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노래를 들어보면 미래를 대하는 말도 안 되는 순진함이 후렴구 ‘사바 사바’로 축약된다. 당시 사회가 희망적이지도 않았으니, 사바 사바 노래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할 수 없었던 거다. 결국 황당함과 리얼함, 멀다고 생각했던 개념들이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조소과를 1994년 졸업한 양혜규는 독일의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 유학을 거쳐 세계 각지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면서다. ‘노마드(Nomad) 예술가’ ‘경험과 기억에서 시작된 철학적 사유(思惟)의 내용을 설치 작업으로 구성해내는 작가’ ‘독특한 사상가’ 등으로 불리는 그의 작품은 ‘매우 어려우면서도 아름답고 섬세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가 저서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에서 ‘다치기 쉬운 감수성을 드러내는 것이 예술가의 용기’라고 밝힌 대로, 난해하고 복잡한 생각을 작품 속에 친근·솔직하게 녹여 넣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현대미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작가에게 주는, 세계적 권위를 지닌 독일의 볼프강 한 상(Wolfgang Hahn Prize)을 아시아 여성 최초로 지난해 9월 받았다. “정확히 읽히기보다 영원히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는 “노래 ‘서기 2000년’ 발표 당시엔 2000년이 황당하도록 먼 미래였겠지만, 현재에서 보면 과거다. 작곡 시점은 대과거다. 평범한 유행가에서 그 접힌 시간을 봤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서기 2000년이 오면’을 주제로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9월 3일 개막한 4년 만의 한국 전시회가 오는 17일 끝난다. 전시장 입구에서 울리는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어디까지 와 있고, 무엇을 고민하는가’ 하는 질문에 양혜규 나름의 대답을 하는 작품들 앞에서 신선한 충격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