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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사회]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06일(水)
“산은 곧 神… 그 앞에서 욕심 부렸을 때 꼭 사고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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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31일 네팔 포카라에서 진행된 KT 안나푸르나 ICT산악구조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엄홍길 대장이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 등반 인생과 네팔과의 인연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엄 대장은 “등산이란 건, 늘 포기와 도전의 저울질 싸움”이라며 “이 둘이 부딪히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 산악인 엄홍길 대장

히말라야에서 동료 10명 잃어
등산은 늘 포기와 도전의 싸움
둘이 부딪히며 앞으로 나아가

가장 가혹했던곳은 안나푸르나
5번 도전 끝에 성공하고 눈물
산이 경외의 대상임을 알게돼

20년간 ‘산악 대장’으로 살아
믿고 맡기는 리더십은 안 통해
섬세하게 다 챙기고 중심 잡아


엄홍길 대장은 한국 등산계의 아이콘이다.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등반한 데 이어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등반에 성공하는 대업을 이뤘다. 국내외 각종 등산 행사에서 유명 등반가를 초빙한다면 ‘0순위’에 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히말라야 16좌 등반을 위해 그는 22년 동안 38번의 도전을 감행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후배 6명과 셰르파 4명을 잃은 쓰라린 기억도 안고 있다. 엄 대장은 “내가 살아 돌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산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하며 살 예정”이라고 했다. 그 노력이란 ‘엄홍길휴먼재단’ 일을 뜻한다. 지난 2008년 엄 대장은 자신의 17번째 도전이라며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네팔의 격오지 등에 학교를 짓는 일을 한다. 그는 “재단 활동을 통해 덤으로 얻은 삶을 좋은 일 하는 데 쓰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29~31일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 룸비니 등에서 2박 3일간 엄 대장과 동행하며 그의 등산 인생과 도전의 역사를 들어봤다.

―어떻게 등산을 시작하게 됐고, 히말라야 도전은 어떻게 시작됐나.

“어렸을 때부터 국내 산에 오르는 걸 좋아했다. 습관적으로 등산을 갔다. 그러다 군대에 다녀오면서 좀 더 큰 목표를 세우게 됐다. ‘아무도 못 가는 곳에 올라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바로 첫 목표를 에베레스트로 잡았다. 에베레스트에 가기 전에 6000m, 7000m를 등반하는 연습부터 했어도 됐는데 나는 바로 세계 최고의 산에 올라보고 싶었다.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도전이 10번, 20번으로 이어졌다.”

―히말라야 16좌 정복, 그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산은 어떤 산이었나.

“안나푸르나다. 산세가 험했고, 사고도 많이 났다. 동료도 잃었다. 4전 5기 끝에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안나푸르나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산인가.

“신이 허락해줘야 몸담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산을 탄다’는 말은 안 쓴다. 겸허한 마음으로 신께 잠시 공간을 빌리고,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뿐이다. 안나푸르나의 신은 내게 특히 가혹했다. 산세가 험했던 것은 물론이지만, 유독 사고가 나거나 안 좋은 일이 발생하곤 했다. 3번째 도전 땐 동료도 잃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먼저 떠난 동료를 위해서든, 우리 팀의 의지를 이어가기 위해서든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신이 마침내 5번째 도전에서 허락해줬다. 눈물이 다 났다.”

―히말라야에서 잃은 동료가 총 10분이라고 들었는데.

“내게 의지를 주는 분들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동료들 이름을 주문처럼 외운다. 내게 힘을 달라, 영혼들에게 말한다. 그러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힘이 나기도 한다. 15좌 등반을 앞두고는 실제로 먼저 간 동료가 나를 찾아와주기도 했다. 인생에서 가장 기이한 경험이었다. 히말라야에 오르려면 먼저 그 산을 오를 수 있게끔 신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라마제’라고 한다. 15좌 얄룽캉(8505m· 칸첸중가의 위성봉)을 오를 때도 라마제를 지냈는데, 앞서 칸첸중가에서는 내 의형제 같던 셰르파 다와 따망을 잃기도 해서 그를 생각하면서 제사를 지냈다. 그날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향이 마구 치솟더니 제단 주위로 돌풍이 불어왔다. 돌풍은 제단을 몇 바퀴 돈 뒤, 제사상과 내 몸을 휘감았다. 나는 너무 놀라 그저 멍하니 있었다. 아무리 자연현상이라지만 너무 신기했다. 잠시 뒤 ‘그래, 다와가 다녀갔구나’ 알게 됐다. 늘 그래 왔듯 다와 따망이 나를 도와줄 거라 생각하니 힘이 났다.”

―등산하다 보면 위기가 종종 온다고 들었다. 후회한 적은 없었나.

“생사의 기로에 설 때면 솔직히 후회되기도 한다. 신께 ‘여기서 살아서만 돌려 보내달라. 다신 안 오겠다’ 이렇게 속으로 외친 적도 있었다. 죽을 것 같은데, 등산이 다 무슨 소용이냐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이겨내게 되면, 다시 의지가 생긴다. ‘이겨내야지’ ‘할 수 있다’고 마음먹게 된다. 그러니까 등산이라는 건, 늘 포기와 도전의 저울질 싸움이다. 계속 둘이 부딪히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다시 안나푸르나 이야기로 돌아가야 하는데, 네 번째 도전 때였다. 정상이 눈앞에 보일 정도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마지막 정상을 앞두고 셰르파가 길을 열었지만, 몇 걸음 떼자마자 크레바스(빙하의 표면에 생기는 균열)가 나타났다. 돌파하고 싶었지만, 폭이 좁지 않다며 셰르파가 물러섰다. 그 과정에서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 순간 나는 셰르파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로프를 잡았는데, 로프가 발목에 감기면서 같이 떨어졌다. 가족 얼굴, 동료 얼굴들이 스쳤다. 어느 순간 정지된 것 같아서 눈을 떴고 다행히 살아 있었다. 이제 눈에 박혀 있는 발을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른쪽 발을 빼니 모양이 이상했다.


▲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 룸비니에 세운 10차 휴먼스쿨인 ‘순디스쿨’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독후감 시상식에 참석한 엄홍길(앞줄 오른쪽) 대장이 학생들에게 상장을 나눠주고 있다.

“‘17좌 등반’은 네팔 교육사업… 자신감·도전정신 가르치고 싶어”

엄지발가락이 있어야 할 곳에 뒤꿈치가 있었다. 발목이 180도로 돌아갔던 것이다. 응급처치하고 내려가야 했다.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다리를 절단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동시에 정상을 눈앞에 두고 가지 못한 게 너무너무 아쉽더라. ‘다리가 제발 멀쩡했으면…저는 다시 올라야 합니다’ 하고 신께 빌었다. 결국 이틀 생사를 오가다 한국까지 와서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다시는 못 뛸 것”이라고 했다. 참담했다. 하지만 삼각산을 다시 오르며 연습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4월 안나푸르나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고 눈물이 났다. 서러움과 통곡의 눈물이었다. 그때부터 난 산이 경외의 대상임을 알게 됐다. 히말라야에는 애초에 길이 없다. 신에게 가는 길만 있을 뿐이다.”

―히말라야 14좌를 넘어 15좌, 16좌는 어떻게 해서 도전한 건가.

“15, 16좌는 위성봉이다. 새로운 길을 또 개척하고 싶었다. 15좌, 16좌 등반할 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두려웠다. 산의 위대함을, 산에 대한 두려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동료가 나를 찾아와주는 경험을 했고 그 덕분에 오를 수 있었다.”

―20년을 ‘대장’으로 살아왔다. 어떤 삶이었나.

“나는 사물을 볼 때도 함부로 흘려보지 않는다. 지금도 그게 습관이 돼서, 밥 먹을 때도 ‘아, 물병이 왼쪽에 있고 물컵은 오른쪽 아래에 있지’하는 식으로 자동적으로 머리에 입력한다. 대장을 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대장의 판단에 따라 대원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지 않나. 나는 ‘저기 바위가 위험해 보이네, 돌아가야지’ ‘눈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등산을 미뤄야지’ 등을 판단해야 했다. 또 나의 이런저런 판단을 대원들이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기강을 평소에 잘 다잡았다. ‘신은 속여도 나는 속이지 말라’고 대원들에게 얘기하고는 했다.”

―대장의 리더십에 대해 말해 달라.

“리더십의 종류에 ‘믿고 맡기는 리더십’이 있을 수 있는데, 산악 대장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리더십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산에서는 그러면 죽을 수도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이다. 나는 산악의 모든 상황을 점검해야 했다. 예컨대 라면은 몇 봉지 있는지, 1~2인용 텐트는 어느 팩(짐가방)에 들어있는지 등을 세세하게 외웠다. 물론 각각의 대원들에게 나뉜 임무가 있고 그들이 전담해서 식량이라든지, 텐트라든지를 관리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몰라서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대원들이 헷갈려 할 때도 많았고, 그럴 때면 내가 중심을 잡아줘야 했다. 우리는 식구다. 나와 대원들은 매일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믿음과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한데 어우러졌다. 돼지고기와 양파, 김치 등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재료들이 한 솥에 들어가면 얼큰한 맛을 내는 김치찌개로 변하듯이, 우리도 한 팀을 이뤘다. ‘어떻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단연 ‘팀워크 덕분’이라고 답할 것이다. 산에서 내가 얻은 생존의 팀워크는 말 그대로 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 이뤄낸 것이다.”

―말씀 중에 신을 자주 언급한다. 현지에서 전해지는 토속적인 미신도 많이 신경 쓴다는데 신을 자주 언급하는 배경이 뭔가.

“신이 있다는 건 산을 오르다 보면 경험적으로 느끼게 된다. 나는 불교 신자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은 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 개념이 아니다. 산의 신, 일종의 절대자 같은 개념이다.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거다. 경험으로 절대자의 존재를 알게 되더라. 등산 중 사고가 나는 경우는 항상 내가 건방졌을 때, 욕심부렸을 때였다. 항상 겸손해야 했다. ‘나를 받아주십시오, 받아주십시오’하면서 가야 한다. 셰르파들에게도 산은 신앙의 대상이다. 생업 때문에 오르지만 절대 산에서 까불지 않는다. 셰르파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들도 있다. 예컨대 ‘(산에서) 살생을 하지 말라’ ‘연기를 피우지 말라’ 같은 것들이다. 미신이라지만 쓸데없이 만들었겠나. 다 경험칙에 의한 것들이다. 산은 생물이자 살아 있는 신이다. (등산객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산이 결정한다.”

▲  지난 1997년 7월 히말라야 14좌 중 하나인 가셔브룸I의 정상에 오른 엄홍길 대장이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엄홍길휴먼재단 제공

―등산이 돈이 많이 드는 일이더라. 네팔 당국에서 히말라야 정상으로 가는 입산료를 최대 4000만 원까지 올린다고 한다. 너무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있고,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보나.

“올려야 한다고 본다. 물론 입산료를 올리는 데 상업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네팔은 애초에 히말라야 입산료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관광자원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다만 부가효과도 노릴 수 있다. 솔직히 히말라야가 대중화되면서 준비 없이, 자격 없는 사람들이 히말라야에 많이 온다. 베이스캠프에 와서야 아이젠(얼음 따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등산화 밑에 덧신는 장구) 착용법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안전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는 거다. 히말라야는 베이스캠프를 넘어가면 자격 있는 사람도 많이 죽는 곳이다. 돈만 많이 낸다고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 입산료를 올려서 경각심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엄홍길 대장은 산악인으로서 대업을 이룬 뒤에도 인생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살아 돌아온 이유’를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을 세웠다. 네팔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교육 및 의료지원사업 등 국내외 청소년 교육사업과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사업을 설립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특히 네팔 휴먼스쿨의 경우 올해까지 각지에 16개 학교를 지어, 학생 6500명을 가르치고 있다.

―휴먼재단 일을 ‘17좌 등반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내게 새로운 도전이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일이다. 히말라야 8000m를 올랐듯, 인생 8000m를 오른다는 뜻이다. 네팔과 내가 인연이 깊어지면서, 이들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산을 오르며 배운 자신감과 불굴의 도전정신 등을 공유하고, 미래의 희망인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다. 다만 나 혼자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내가 이런저런 연줄과 인지도 등이 있어서 재단을 세울 수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교육’에 매진하기로 한 이유는 뭔가.

“6·25전쟁 이후의 우리나라와 지금의 우리나라를 비교해보라. 원조 받는 국가에서 원조 주는 국가로 발돋움했다. 그 원동력은 모두 교육에서 나왔다.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교육이다. 고기를 잡아다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서 그들 스스로 일어나게 만들고 싶었다.”

―네팔, 그중에서도 오지에 학교를 많이 지었다.

“사립학교 대부분이 카트만두(수도) 주변에 몰려 있다. 1만5000개 중에 1만1000개 가까이가 몰려 있을 것이다. 양극화 발생의 원인이다. 원래도 양극화가 심한 나라지만 교육에서까지 양극화가 발생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룸비니를 비롯해 여러 오지를 찾았다. 그런데 이게 네팔 정부, 사학 카르텔에는 안 좋게 보였던 것 같다. ‘왜 나대느냐’ 뭐 이런 거겠지. 네팔에서 사학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거의 재벌이다. 굳이 자세히 설명을 안 해도 느껴질 것이다. 사학 운영자의 자녀, 교장의 자녀들은 네팔에서 공부를 안 한다. 다 영국, 미국 등에 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순수교육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니고, 사업 차원에서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진정성이 빠진다. 돈벌이가 되는 쪽으로만 운영하려고 한다. 나는 다르게 하고 싶었다.”

―봉사활동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의 책을 보면, 대부분 보람되고 좋지만 가끔은 ‘왜? 뭐 때문에?’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 그런 순간이 온 적 없나.

“물론 있다. 재단의 일이라는 게 후원금으로 진행된다. 내 일은 그 후원금을 내줄 수 있는 분들을 찾아가 읍소하고, 사업 이야기를 논의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녁 술자리가 많아진다. 사람을 만나야 뭐가 나와도 나오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한국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술, 술, 술로 이어진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몸도 지치고 가끔은 마음도 지친다. ‘내 삶이란 게 없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한 달에 3일 정도는 등산을 꼭 가려고 비워둔다. 물론 그마저도 잘 안 될 때가 있지만.”(웃음)

엄 대장의 삶은 ‘극기’로 요약된다. ‘최강의 부대’라고 불리는 해군 UDT(수중폭파대)를 전역했다. 그때 얻은 용기가 삶의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이런 원동력을 바탕으로 산악인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총선 출마 등 정치권의 러브콜도 받았지만, 엄 대장의 입장은 단호하다. “히말라야와의 약속 때문”이라고 한다.

―삶이 극기의 연속이다. 거꾸로 보면 극기가 삶의 원동력인가도 싶다.

“맞는다. 나는 내 삶의 원동력이 ‘극기’라고 생각한다. 전역 후에도 그랬다. 1983년에 전역하고 약간의 준비를 거쳐 1985년에 바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했다. UDT도 전역했겠다, 두려울 게 없었다. 문제는 1985년 겨울에 도전했다는 거다. 봄, 가을 아니면 등반이 어려운 게 히말라야다. 그땐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게 가능했던 것 같다. 결국 실패했고 1988년에야 겨우 등정에 성공했다.”

―엄 대장님은 인지도가 높고, 극기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총선에 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안 나간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히말라야와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안 나간다. 신이 나를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물론 이전에 나가려고 했으면 됐을지도 모른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시절에 ‘기반을 다 닦아놨으니, 단상에 오르기만 해라’ ‘비례대표라도 나오라’고 했지만 내가 모두 거절했다. 정치는 내가 가야 할 길은 아니다.”

카트만두·포카라·룸비니 = 글·사진 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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