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농촌 ‘사회적 기능’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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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자원개발 원장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존립 위기를 맞은 전국 24개 군(郡)이 ‘특례군’ 법제화 추진 협의회를 창립, 지방자치법 개정 추진에 나섰다. 인구 3만 명 미만이거나 ㎢당 인구밀도 40명 미만인 지역을 ‘특례군’으로 지정해 정부가 지원토록 하는 제도다. 농산물의 생산이라는 농촌의 전통적인 기능만으로는 소멸 위기 농촌 소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대책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의 지방 소멸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소멸위험 지역에 해당한다. 2018년 6월을 기준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 중 89곳(39%), 전국 3463개 읍·면·동 중에는 1503곳(43.4%)이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아무리 작은 시골 마을이라도 최소한의 공공 서비스는 제공돼야 하기에, 농촌 소멸 위기는 곧 국민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의 증대를 의미한다. 이제 그 지역만의 문제로 미뤄둬선 안 된다.

농촌이 당면하고 있는 도시와의 소득 격차,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서비스, 그리고 와해된 공동체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촌에 잠재돼 있는 사회적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업 본연의 활동을 통해 장애인·고령자 등 도움이 필요한 지역 주민들에게 돌봄·교육·일자리 등을 제공하는 ‘사회적 농업’은 경제적 약자인 농업인뿐만 아니라 제도권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품고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소멸되는 농촌을 소생시킬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전북 임실의 선거웰빙푸드는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농장으로,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농업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고, 농업 분야 전문 직업교육을 통해 사회에 복귀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주 1회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여하고, 나눔과 베풂의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농업이 새로운 세대의 농업 모델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올해 3월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사회적 농업 확산과 제도적 기반 구축을 위해 ‘사회적 농업 추진 전략’을 수립, 사회적 농장을 2019년 18곳에서 오는 2023년 100곳까지로 확대하고, 체계적인 육성을 위한 지원센터 설치, 분야별 거점 농장 운영 등의 추진 로드맵을 마련했다.

한국농어촌공사에는 시작단계인 사회적 농장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실천조직, 지원조직, 이용고객 간 협업, 소통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종합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센터를 기반으로 역량 강화 워크숍, 판로 확대를 위한 마케팅 지원, 세무·회계·법률 등 전문 서비스 바우처 제도 운영을 통해 경영 여건이 열악한 사회적 농장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다. 오는 12월에는 농식품부와 함께 사회적 농업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국내외의 선진 사례를 공유하고, 정책적 육성 방안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한다.

경제성장의 크기를 최우선으로 하던 사회 발전의 척도는, 이제 경제성장의 과실이 사회 구성원에게 얼마나 고르게 돌아가는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낙오자를 어떻게 포용하고 더불어 잘 살아갈 것인지에 맞춰져야 한다. 농장에서 몇 개의 과실을 딸 것인지를 넘어 그 과실을 따는 사람들이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지, 그 리그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때 사람 중심의 경제,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이 실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