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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Interview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08일(金)
이종열 “피아노 줄 230개가 똑같이 양보해야 좋은 音… 조율은 곧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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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열 명장이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의 피아노를 조율하고 있다. 바로 아래 사진은 그의 조율 장비가 들어있는 공구함. 위쪽 사진은 튜닝 해머로 현을 조정하는 장면. 이 명장은 “더 좋은 조율을 위해 항상 장비를 연구해왔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 피아노 조율 ‘대한민국 명장’ 이종열
무대 뒤 관객 안 보이는 곳서 ‘64년 외길’… 주요 공연 조율만 4만1000여회

고3 때 풍금에 반해 시작
불안정해지는 소리 고치려
읽지도 못하는 일본책 구입
일본어 독학 뒤 조율 터득

음 맞는 순간엔 숨 멎는 느낌
1∼2시간 걸리는 조율 과정
숨 멈춤도 230회 지속 반복

연주자 까다로운 요구 힘들어
이제 그만둘까 생각하다가도
거장들 감사 인사할 때 보람


그의 방은 백스테이지에 있다. 공연이 열리기 전 무대 뒤편, 관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 연주자의 피아노에 문제가 생겨 그걸 급하게 해결하기 위해 간혹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아주 드물게는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 최정상급 피아니스트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지난 2003년 연주를 마친 후 객석을 향해 한 말은 공연계에 유명하다. “미스터 리에게 감사한다. 완벽한 조율로 피아노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81). 2007년 정부가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한 인물이다. 지난 5일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 백스테이지로 갔다. 출연자 대기실, 분장실 등이 있는 무대 뒤쪽 공간이다. 여기에는 피아노 보관실도 있고, 이 조율사가 사용하는 방인 ‘명장의 공간’도 있다. 그는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 수석 조율사 직함을 갖고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용역 계약직인데 예술의전당에서만 24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를 만나자마자 ‘전주 이씨’냐고 물었다. 그가 최근 펴낸 책 ‘조율의 시간(민음사)’에서 전주 인근의 완주 태생인데 조부가 한학을 했다는 대목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맞는다”고 했다. “제가 고교생 때 조율 기술을 배우겠다고 하니,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지요. 양반은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라고. 더욱이 제가 8남매 중 장남이었으니 아버지의 고민이 컸습니다. 아버지가 작은아버지와 의논을 하셨다고 해요. 왜정 때 사범학교를 나온 작은아버지가 ‘앞으로의 세상은 그런 기술 있는 사람이 잘살 수도 있으니 해 보고 싶은 거 하게 해줍시다’라고 설득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의 셋째 동생은 법대를 졸업했는데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조율사로 일한다. 바로 아래 동생은 교원을 그만둔 후 한때 피아노대리점을 운영했다. “동생들이 형 영향을 받은 모양이군요?”라고 하자,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공연장에선 피아노 연주를 하기 전에 조율을 한다. 조율(調律)은 좁은 의미에서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음을 맞추는 것이다. 연주에 필요한 건반의 기능을 잘 되게 하는 것이 조정이고, 음색 음량을 음악에 알맞게 하는 것을 정음(整音·Voicing)이라고 하는데 이걸 통틀어서 조율이라고 한다.

그가 조율을 처음 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할아버지 덕분이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단소를 불어보곤 하던 그는 중학생 무렵엔 자신이 직접 만들어 보기로 한다. 국악 오음계가 아니라 서양 칠음계로 구멍을 내고 음이 제대로 나오도록 갖은 연구를 했다.

이즈음 스님이 그의 집을 찾아 공양을 받은 후 이렇게 말했다. “학생은 이다음에 소리 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사람이네.” 그는 미신을 믿는 이가 아니어서 그 예언을 까맣게 잊고 살았으나, 최근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전주공고 다닐 때 브라스밴드에서 클라리넷을 불고 싶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무서워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더라고요. 어른들이 무섭기만 한 게 아니고 저에 대한 사랑이 크셨다는 것은 나중에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됐지요.”

그는 고교 3학년 어느 날 옆 동네 예배당에 갔다가 풍금을 봤다. 풍금을 치고 싶었던 그는 할아버지 몰래 예배당에 다녔다. 오르간 교본을 사서 혼자 타법을 익혀 찬송가 580곡을 다 칠 수 있게 됐다. ‘바이엘 피아노 교본’도 독학으로 공부했다. 해체 상태였던 성가대를 다시 만들고 반주를 맡았다.

이렇게 반주를 하다가 4부 합창곡 화음을 연주하다 보면 풍금 소리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느끼게 됐다. 풍금을 뜯어서 고쳐 보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책방에서 일본 책을 통해 ‘調律’이란 말을 처음 접했다. 그는 일본 책을 사겠다며 주문해놓고, ‘일본어 첫걸음’을 사서 독습을 했다. 그렇게 익힌 일본어로 조율 책을 파고들어 6개월 만에 평균율 조율을 터득했다.

그에 따르면, 중세 이전에 대세였던 순정률 조율은 몇 개의 화음을 아름답게 하면서 다른 음에서 불만이 생기는 조율법이다. 요즘 건반 악기 99.9%가 채택하는 평균율 조율은 음 모두가 아름답기 위해 서로 똑같이 양보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그는 명장답게 평균율 조율에서 민주주의를 떠올린다.

‘서로 타협하는 민주주의식의 기술을 발휘해 아름다운 음이 만들어져 나온다. 정치에서도 조율이라는 표현을 더러 쓰는데 잘되어가기를 바란다.’

군에 입대해서도 틈날 때마다 조율 공부를 했던 그는 제대 후 수도피아노사와 삼익피아노사에서 일했다. 프리랜서 조율사로 독립한 후 열심히 뛰어다니던 그는 차가 필요해 ‘포니 1’을 구입했다. “1979년쯤이었지요. 전화로 조율 일을 청하던 사람이 자기 집까지 오는 버스 노선을 알려주다가 제가 자가용으로 가겠다고 하면, 수화기 저쪽에서 한참 말이 없어요. 피아노 고치는 사람이 자가용이 있다니… 하는 심정이었겠지요, 하하.”

그는 1980년 세종문화회관 전속 조율사가 됐고, 이후 국내 주요 공연장에서 4만1000여 번의 조율을 했다.

“조율은 연주자가 무대에서 대기하기 전에 끝내야 하니 항상 시간에 쫓깁니다. 음이 맞아 들어가는 순간에 숨이 멎지요. 사격 선수가 총을 쏠 때의 심정과 같을 거예요. 그런데 피아노 줄이 230개니, 그 숨 멈춤이 230번 계속돼야 합니다. 보통 1∼2시간 걸리는데, 언제나 힘이 듭니다.”

연주자가 조율사의 전문 영역을 인정해줄 때 훨씬 더 좋은 피아노 음으로 청중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걸 이해하는 연주자는 많지 않다. 그는 터무니없는 주문을 받을 때가 많은 탓에 1년에도 2∼3번 정도 일을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한 길을 걸은 장인 특유의 자부심 덕분일 것이다.

그가 조율 일을 하며 만난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조지 윈스턴, 라두 루푸, 파울 바두라스코다 등은 연주 전에 조율에 대해 엄청나게 까다롭게 구는 탓에 그의 피를 말렸다. 지메르만은 무대에서 그를 공개적으로 칭찬해주긴 했으나, 워낙 고집을 부리기 때문에 또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물론 까다롭게 굴었어도 감사 인사를 한 경우는 생생히 기억한다. 엘렌 그리모가 그에게 엄지 척을 해 줬거나 막심 므라비차가 꽃다발을 건네준 것,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악수를 청한 것 등.

그는 세계적 거장들을 만나더라도 사인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휘자 로린 마젤이 방한 연주를 마친 후 한 소녀가 간곡히 사인을 청하는 것을 냉정히 거절하는 모습을 본 이후부터다. 속 좁고 인색한 음악 거장들에게 굳이 사인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을 협업자로 인정한 연주자들에겐 종이를 내밀었다며, 앨범에 소중히 갈무리하고 있는 사인 글씨들을 보여줬다. 게릭 올슨이 ‘동양 최고의 조율사’라고 칭한 것, 존 릴이 ‘경탄할 만한 피아노 조율’이라고 고마움을 표현한 것 등이 눈에 띄었다.

그는 “한국에 이런 고급 피아노를 조율할 사람이 있을까”라고 했던 이탈리아 파치올라사 사장을 놀라게 해 줬던 일,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 프로듀서가 페이스북에 ‘원더풀 피아노 테크니션 미스터 리’라고 썼던 것을 즐겁게 회상했다. “내 나름대로 국위선양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거려 줬다.

그는 한국인 음악가들에 대해서는 실명으로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백건우, 백혜선 등의 거장이 그 실력만큼이나 조율에도 민감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백혜선 씨가 호쾌한 성격이어서 좋은 느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연주자들의 예민함은 잘 이해하지만, 따스한 인간미를 갖춰야 진짜 예술가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조성진이 쇼팽콩쿠르 우승 직후에 새 피아노를 쓰겠다고 해서 8시간에 걸쳐 조율해 준 적이 있는데, 연주를 마친 후 방에 노크하고 들어와 감사 인사를 했을 때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다시 만났을 때 조율작업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하던데, 워낙 말이 없는 연주자임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에게 “조성진이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수줍은 성격이지만 인간미를 갖추려 애쓰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하니, “그랬냐”며 관심을 표했다.

그는 후임을 정해 일을 나눠 맡기며 가르치고 있다. 제자 이정규(53·세종문화회관 전속) 씨가 성실하게 일을 잘한다며 자랑했다. “3대 제자도 있어요. 조율 입문한 지 12년째인 서른한 살의 김서원이라는 친구인데, 연세대 금호아트홀 전속으로 일해요. 업계에선 너희들끼리 다 해 먹느냐는 비판도 하는데, 신경 쓰지 않아요. 어차피 실력으로 겨루는 거니까.”

그는 조율 실력은 결국 쌓아온 노력의 시간만큼 나온다며 열정과 몰입을 강조했다. 작은 것에 충실해 태산을 이뤄낸 시간의 공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인터뷰 내내 드러났다. “저는 지금도 틈만 나면 조율을 위한 저만의 새 공구를 만들어요. 고교 때 풍금에 빠진 이후로 지금껏 조율에 빠져 있는 것은, 이 극성 때문이겠지요.”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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