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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평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12일(火)
이젠 ‘과거사의 강’ 건너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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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前 외교부 차관보

한국의 ‘베트남 참전’ 사과에
베트남은 미래 해친다며 항의
숙연함 넘어 두려움 느끼게 해

2차 대전까지 대부분 식민지
아직도 배상 요구國은 한국뿐
이젠 현재와 미래에 집중해야


어느 나라든 가슴속에 깊이 간직한 아픈 과거사들이 있다.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비극적 과거사의 강도로 따져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가 베트남이다. 그 베트남과 한국 사이에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 의혹’이라는 과거사 문제가 20년 전 어느 국내 언론 매체에 의해 불거졌다. 공교롭게도 6·25전쟁 당시 발생한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의혹이 국내적으로 떠들썩하던 때였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문제의 조기 진화를 위해, ‘공동조사 후 사과와 보상을 할 용의가 있다’는 매우 전향적인 입장을 베트남에 전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베트남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어떠한 논의에도 반대하며, 과거를 덮고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는 단호한 입장을 전해 왔다.

그 이듬해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 정부는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정상회담 때 덕담 차원에서 베트남전쟁 참전에 대한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그러자 베트남 외교부는 강한 불쾌감을 전달해 왔다. 베트남은 한국과 친구가 되려고 하는데 한국 정부는 왜 그리도 과거사에 연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漢)나라에 정복돼 1000년간 중국 지배를 받았고, 1945년 이후에만도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과의 전쟁으로 인구의 10%인 800만 국민을 잃은 베트남의 의연한 태도는 숙연하다 못해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다.

세상에는 역사적으로 앙숙인 나라가 많다. 왕정 시대부터 수많은 전쟁을 했던 수백 년 숙적 독일과 프랑스, 영국과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의 우산 아래 친밀한 이웃이 됐다. 지구상엔 식민통치를 받은 나라도 수없이 많다. 당시에는 국력을 길러 타국을 침략하고 영토를 빼앗거나 식민지화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당연한 권리로 간주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그 어느 국제법도 침략행위나 식민통치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군대를 동원해 이웃 나라를 정복하는 것도 합법이었고, 총칼 들이대고 서명한 합병조약이나 영토할양조약 등도 모두 합법이었다.

그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대다수의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였다. 아시아에서 완전한 독립국이라곤 일본과 태국 정도밖에 없었다. 유럽과 미주대륙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대다수 국가는 2차대전 이후 비로소 독립국이 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민통치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이로 인해 현재와 미래를 위한 협력까지 포기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또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독일은 사과를 많이 했으나 일본은 사과에 인색하다는 말도 공허하다. 독일의 사과는 전쟁 기간에 발생한 유대인과 외국인 대량학살에 대한 것이었고, 침략행위에 대한 사과에는 지극히 인색했다. 독일의 유럽 침공은 로마제국이나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과 마찬가지로 당시로써는 국가의 정당한 주권 행위였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정복하고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수천만 명의 현지인이 희생됐으나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어느 나라도 사과하지 않았고, 피해국들도 대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국제협정과 정부 간 합의로 일단락된 사과와 배상에 더해 한국이 추가로 제기한 요구 사항들을 둘러싸고 관계가 극도로 악화했다. 그에 따른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로 우리 국가안보의 중추인 한·미 동맹과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까지 심각한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처럼 끝없는 사과와 배상 요구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정녕 우리 국가안보나 현재와 미래의 경제적 번영보다 더 중요한가?

이제 9개월여 뒤면 한일합병 110년, 해방 75년이다. 비록 늦었지만, 우리도 이젠 그만 과거사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다. 윈스턴 처칠이 “역사를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고 했을 때, 그것은 결코 과거사의 ‘원한’에 매달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영광스러운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면서, 부끄러운 역사에서는 ‘교훈’을 얻어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을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를 설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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