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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글로벌 포커스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13일(水)
지도자도 조직도 없다… SNS가 소집하고 지휘하는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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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홍콩 사이완호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 3발을 발사했다. 경찰의 발사 장면과 총에 맞은 시위자가 쓰러져 피를 흘리는 장면이 페이스북에서 생중계됐다.

■ 지구촌 시위 새로운 주역 ‘스마트폰’

수천명 모이는 ‘플래시몹’ 시위
채팅방서 기획하고 자금 모집도
홍콩시위 ‘실탄 발사’등 생중계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지며 충격
이라크·레바논·칠레·알제리 등
각국 反정부 시위마다 큰 역할

구심점 없고 다양한 요구 분출
정부와 협상력 떨어뜨리는 한계


홍콩 시위가 전 세계인의 관심을 촉발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SNS를 통해 생중계됐다는 사실이다. 홍콩 경찰이 11일 시위자를 향해 실탄을 쏘는 모습은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채팅방을 통해 재확산됐다.

총격 장면을 담은 영상은 1인 미디어 ‘큐피드 프로듀서’가 촬영해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경찰이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다가오는 시위자에게 총을 겨누고 바로 쏘는 장면은 충격 자체였다. 21세 남성이 총에 맞자 배를 움켜잡은 뒤 길바닥에 쓰러지는 영상은 현장 바로 3m 옆에서 촬영됐다.

홍콩 시위의 첫 사망자인 홍콩과학기술대 학생 차우츠록(周梓樂) 씨의 지난 4일 사고 장면 역시 텔레그램을 비롯한 SNS를 통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2세 청년이 3층 주차장에서 2층으로 추락해 쓰러져 있는 장면, 그의 혈흔이 낭자한 현장 사진은 소강상태로 접어들던 시위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경찰이 구급차를 향해 수차례 최루탄을 발사하는 동영상이 추가로 공개되자 시위대에선 “경찰은 살인자” “피의 빚은 반드시 피로 갚는다”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SNS는 이처럼 시위를 확산시키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홍콩뿐만 아니다. 2019년 전 세계 주요 시위 현장의 공통된 특징이다. 시위를 기획하고, 모이는 장소를 공지하고, 현장 상황을 공유하면서 조직력을 배가시키는 일 모두 SNS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시위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일도 SNS를 통해 이뤄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지구촌 시위에 대해 “중앙위원회가 당 지도자를 통해 정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소집하고 해시태그에서 영감을 얻은 반란”이라고 분석했다.

◇SNS가 소집한 전 세계 시위 = 실제로 그렇다. 홍콩 시위를 움직이는 건 민주화 투사도, 야당의 지도자도 아니다. 홍콩 시민 수천 명이 순식간에 도로와 지하철 역사를 점거해버리는 ‘플래시몹’ 시위를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 채팅방이 조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만 명의 시민이 가입한 텔레그램 채널 ‘아빠가 아들을 찾는다(dad finds boy)’에선 경찰의 움직임은 물론, 경찰과 정부 관리들의 생년월일과 전화번호, 주소, 가족의 이름과 주소를 비롯한 개인정보가 공유됐다. 익명의 시민들은 이 채널에서 시위의 방향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으로 의료비와 법률 비용을 모금하기도 했다. 홍콩 정부는 LIHKG.com 홈페이지나 텔레그램 같은 온라인 사이트·SNS가 폭력을 부추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홍콩 법원은 지난달 31일 정부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온라인 이용자들의 폭력 선동 게시글을 금지하는 임시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 채널도 지난 8일 폐쇄됐다. 홍콩 법원은 오는 15일 이 문제를 놓고 정식 청문회를 연다.

이라크와 레바논, 칠레, 알제리, 스페인 카탈루냐와 파키스탄, 온두라스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에서도 이 휴대전화 화면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라크 내 SNS에선 “이라크는 석유가 많은 나라지만 우리는 일자리가 없다”는 식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에 대한 과세로 촉발된 레바논 반정부 시위에선 ‘#LebanonProtests’와 같은 트위터 해시태그가 시위대를 동원하고 뉴스를 퍼트렸다.

◇얼굴 없는 지도자의 한계 = 이러한 시위 풍경은 1960년대 후반 서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 1980년대 말부터 아시아와 동유럽의 독재와 공산주의를 뿌리 뽑은 시위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시위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도, 뚜렷한 메시지를 양산하는 정당도,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할 자본도 없다.

1989년 ‘벨벳혁명’에 있었던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나 1988년 8월 군사정권을 향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군중연설로 미얀마 민주화를 촉구한, 이른바 ‘8888항쟁’을 일으켰던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과 같은 인물이 최근 일련의 시위에선 보이지 않는다.

홍콩 시위에선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시위인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이 주목받았지만 그를 시위대의 구심점으로 볼 순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조슈아 웡은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시위에 참여할 수 없었다. 내가 (민주화 운동에 대해) 지불한 대가는 작다”고 말해왔다.

칠레에서도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과 권력층의 부적절한 언행 및 처신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정치조직은 없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광장에선 각각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여성 단체와 청소년 단체가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헌법개정,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다. 20년간 독재했던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알제리 시위대도 높은 실업률에 고통받는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층이 주도 세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17일 첫 전국집회가 시작된 지 1주년을 맞은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도 특정 정치세력과 연계하지 않은 자발적 시위자들이 SNS 등을 통해 동력을 유지했고, 결국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를 굴복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구심점 없는 반정부 시위가 정부와의 협상력을 떨어뜨리고 다양한 요구를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해 논점을 흐리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칠레의 피녜라 정부는 누구와 협상을 해서 어떤 양보를 해야 하는지를 놓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칠레대의 로버트 펑크 교수는 “한 시위자는 연금 때문에, 또 다른 시위자는 학자금 대출 때문에 시위를 벌이고 있다”며 “메시지를 하나로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도 마크롱의 잇단 유화책에 동력을 상실하고, 시위의 대표 인물들이 유럽 의회선거 출마를 포기하면서 정치세력화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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