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캔버스와 씨름”… 유화에 담은 판화의 서정성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승희, 새벽-21812, 72.7×116.8㎝, Oil on Canvas, 2018. 노화랑 제공

동판화작가 강승희 노화랑展

“판화과 교수라는 틀 때문에 그동안 유화에 대한 욕망을 감추고 있었지만, ‘다시 시작해보자! 완벽하게 해보자! 대학의 교학처장 업무시간 이외에는 그림만 그리자’는 각오로 5년을 캔버스와 씨름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서정적인 동판화 작가’로 알려진 강승희 추계예대 교수가 유화작품으로 인사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어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노화랑 전시에는 판화가 아니라 유화물감으로 수없이 지우고 그리길 반복해 완성한 200여 점에서 엄선한 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제주가 고향인 강 교수는 홍익대에서 유화를 전공하고 판화를 부전공으로 했지만, 점점 판화에 매료돼 3개월 내내 150회 이상 동판으로 긁고 부식시키는 열정으로 제작한 작품을 1991년 제9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같은 해 일본 ‘와카야마(和歌)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2등 상을 받으면서 그는 더욱 판화 작품제작에만 몰두했다. 극도의 세밀함으로 수묵화의 먹이 퍼지는 효과를 판화 제작기법으로 표현해낸 그의 작품은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중국 ‘충칭(重慶)미술관’ 등 유명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유화 작업은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거의 60년에 이르는 제 삶에서 가장 치열해서 오히려 처절한 감정까지 들 정도로 유화물감을 사용해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판화로 얻은 감성과 효과를 유화로 오롯이 드러낼 때까지 숱한 밤을 새웠어요.”

그는 판화제작 도구를 유화제작에 사용하기도 한다. 물감을 밀어내는 스크래퍼와 니들 그리고 동판을 닦는 망사를 붓 대신 사용했다. 판화로 만들어냈던 서정성을 유화에 옮겨내려는 장치이다. 재료가 바뀌어도 강 교수의 내적 서정성, 아니 새벽에 느낄 수밖에 없는 일반적 서정성을 그대로 드러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해서 ‘눈물겹게 얻어낸 서정성’이라고 작가가 직접 말할 정도로 밤과 낮이 교차하는 ‘새벽’이 절묘하게 캔버스에 옮겨졌다.

전시 서문을 쓴 박영택 평론가는 “붓을 동판화 도구인 바늘처럼 다루면서 캔버스 피부를 점으로 공략하고 있다”며 “습하고 눅눅한 회화의 피부를 거느린, 상당히 감성적인 그림”이라고 평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