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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13일(水)
유재석이라는 이름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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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유재석을 버거워한 적이 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상 특성 때문이었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높은 MC이니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취재 대상인데, 동시에 그는 가장 취재하기 어려운 대상이었습니다. 인터뷰 요청에는 통 응하지 않고, 취재진과 만나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사생활 노출도 뜸한 편이기 때문이죠.

지난해 3월 ‘무한도전’이 종방된 후, ‘힘이 빠졌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걷어낸 뒤 오히려 유재석에게서 더 빛이 난다는 느낌을 받은 건 저뿐만이 아닐 텐데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때문이죠. 전국을 돌며 우연히 마주치는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방송의 문법을 모르는 비(非)연예인들과 대본 없이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가고,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연륜과 여유를 보여줍니다.

그의 진행 솜씨는 특히 어르신 혹은 어린이와 마주 앉았을 때 돋보이는데요. 지난 한글날을 앞두고는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적어 달라”는 유재석의 주문에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이름 ‘박묘순’을 적었죠. 할머니가 만든 단어는 ‘사랑하는 우리 신랑’이었습니다. 먹먹한 마음으로 “이게 가장 좋아하는 단어입니까?”라고 묻던 유재석은 “두 분이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진심 어린 인사를 전했죠.

지난 5일에는 한 초등학교 앞에서 40년간 문방구를 운영하시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2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는 할머니는 “아이들이 준 편지가 있어서 계속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슬퍼하는 할머니를 위해 초등학생들이 위로의 쪽지를 남긴 거죠. “죽음이란 건 어떤 느낌이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세상일을 다 한 거요. 자기가 땅에서 할 일을 다 한 거요”라고 답했고, “할아버지는 그 할 일을 다 하신 것 같아요?”라고 재차 묻자 “네, 충분히 하셨어요”라고 입을 모았죠.

곱씹을 웃음이 점점 사라지는 세태 속, 유재석에게서는 유독 온기가 느껴집니다. 1인 미디어가 득세하며 대중은 더 독하고, 원색적인 것을 원하는 듯한데요. 이런 분위기에 장단을 맞춘 프로그램을 접하다가 유재석을 만나면 마치 영혼이 건강해지는 슬로푸드(slow food)를 먹는 기분이 듭니다.

역대 최다 연예대상을 받은 유재석이 마지막으로 대상을 거머쥔 건 2016년이었죠. 그러나 이후에도 항상 시상식에는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치는 그가 있었습니다. 자신보다 상대방의 기쁨에 더 환하게 웃고, 액션보다는 상대방을 살려주는 ‘리액션’을 강조하는 유재석, 이런 진행자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적잖은 기쁨이자 선물입니다.
e-mail 안진용 기자 / 문화부  안진용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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