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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Leadership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19일(火)
협상의 女帝…‘AIG 회생’ 美정부 설득에 딱 15초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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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유럽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 특별 소방대대장
IMF 총재 맡았을때 별명
국제경제 위기에서 ‘역할’

- 수많은‘여성 최초’
글로벌 로펌 회장에서부터
G8 최초 여성재무장관까지

- 6cm 하이힐 취임
큰 키에 평소 낮은 굽 선호
‘유럽경제 해결’ 의지 표현

- 언어·뚝심도 무기
흠 잡을 데 없는 영어 구사력
합의까지 ‘마라톤 회의’ 불사



‘특별 소방대대장.’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유럽중앙은행(ECB) 신임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맡았을 때 얻었던 별명이다. 당시 국제경제의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소방수 정도로는 안 되고, 특별소방대대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서 붙게 되었다. 그가 이끌어갈 유럽의 경제는 지금 그때보다 더 심각한 과제와 맞닥뜨려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쇄도하는 난민과 불법이민 문제, 전반적인 제조업 경기 둔화, 실업률 등 수많은 악재로 유럽 경제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가 아무리 조정과 협상의 리더십을 자랑한다고 해도 유럽 각국의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매끄럽게 풀어나가기에는 힘겨운 난제들이다. 이번에도 유럽의 소방대대장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보름여 ECB를 이끌어온 라가르드 총재, 그의 위기 의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분주히 뛰고 있다. 지난 4일 새 ECB 총재로서 첫 연설을 할 때 ‘힘, 결단, 용기(strength, resolve and courage)’를 강조했던 그다.

라가르드 총재는 “우리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회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며 “유럽 전체가 오늘 이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평소 키가 커서 낮은 굽의 신발을 신는다”는 말과 달리 이날만큼은 6㎝ 굽의 검은 하이힐을 신고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어려운 숙제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힘있게 내딛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됐다. 라가르드 총재의 일성은 어느 때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ECB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상 모든 경제 지표들이 유럽의 경기침체를 증명하고 있다. 유로존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올 3분기 0.2%에 그쳤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성장률은 0.1%에 불과했다.

이미 ECB가 쓸 수 있는 ‘총알’도 거의 소진된 상태다.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전 총재는 유로존에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감이 드리우자 제로 기준금리와 마이너스 예금금리, 양적 완화 등 파격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했다. 블룸버그는 “라가르드 총재가 쓸 수 있는 ECB의 조치들은 전임인 드라기 전 총재 때보다 훨씬 덜 강력할 것”이라면서도 “라가르드 총재의 주된 임무는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위험’을 보여주고 더 많은 부담을 짊어질 필요가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경제학자 출신의 독특한 이력… 최대 장점은 협상력 = 경제학자 출신도 아닌 데다 통화정책 경험도 전무한 라가르드 총재의 최대 장점은 ‘협상력’이다. 그는 2005년 프랑스 상무부 장관으로 부임한 후 프랑스인들에게 주 35시간 근무에 대해 더 융통성 있는 접근을 하도록 설득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미국에서 보험회사 AIG가 망하기 전날 밤 미국 재무장관에게 “망하도록 해선 안 된다”고 설득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지 15초였다. 2007년 프랑스 재무장관으로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유럽 각국의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09년 그를 EU에서 가장 탁월한 재무장관으로 지목했다.

라가르드는 IMF 총재 재임 시절에도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중재자로서 충분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IMF 총재 임명 당시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할은 잘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실타래처럼 얽힌 이해충돌 조정이 숙제 = 경기침체의 늪에 빠진 유로존에 더 절실한 리더십은 냉철한 경제학자보다 회원국 간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협상가가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임자인 드라기 전 총재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은행 이사, 골드만삭스 부회장, 이탈리아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자타공인 ‘경제 전문가’인 데 반해 라가르드는 법학과 정치학이 전공 분야다. 드라기 전 총재가 양적 완화 등 강력한 통화정책을 추진해 ‘슈퍼 마리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라가르드는 IMF 총재 시절 고압적인 국가 구조조정 대신 유화책 위주의 구조조정 대책을 제시했다. 그리스 경제위기 당시에도 최대한 당사국의 편의를 봐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룸버그통신은 “라가르드가 구체적인 분석과 정책은 경제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회원국 정상들과 만나 외교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프랑스 태생이지만 23년간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해오면서 미국식의 합리적이고 직설적인 화법과 협상기술을 갖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약간의 프랑스 억양이 섞인 그의 영어도 흠잡을 데 없다. 최종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회의실 문을 닫고 ‘마라톤 회의’를 계속하는 뚝심도 그의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라가르드는 ECB 총재 취임 직후 그동안 총재의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의사결정 방식으로 회원국의 반발을 샀던 집행이사회 운용 방식부터 뜯어고칠 방침이다. FT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집행이사회 위원들로부터 ECB의 내부 논의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의견을 듣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재정확대가 첫 시험대 = 특히 라가르드의 첫 시험대는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재정확대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될 전망이다. 드라기 전 총재의 적극적인 금리정책과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은 목표치인 2%에 계속 못 미쳤다. 수많은 악재로 유럽 경제전망은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ECB는 경기부양책을 마련할 여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대안은 재정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라가르드 역시 “중앙은행만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공식 취임 이틀 전인 지난달 30일 프랑스 라디오 RTL과의 인터뷰에서도 “독일, 네덜란드처럼 흑자 예산을 보유해 여유가 있는 국가가 왜 예산 흑자분을 인프라와 교육, 혁신에 투자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유로존에서 가장 탄탄한 재정 상황을 갖췄으면서도 재정지출 확대에 보수적인 두 나라를 겨냥한 발언이다. 독일은 1990년대 중반 재정위기를 겪은 이후 헌법에 부채 제동(debt brake) 조항을 추가했으며, 2016년부터는 재정 적자가 GDP의 0.35%를 넘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여성 최초의 타이틀 수두룩 = 라가르드는 그동안 수많은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글로벌 로펌인 ‘베이커 앤드 매킨지’의 첫 여성회장을 시작으로 주요 8개국(G8)의 최초 여성 재무장관, IMF 최초 여성 총재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어린 시절 독특한 이력도 화제가 되곤 했다. 라가르드는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고등학교 문학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교육자인 부모는 라가르드와 세 명의 남동생들을 지적인 대화가 오가는 만찬 파티와 오페라에 자주 데려갔다고 한다.

10대 시절엔 싱크로나이즈드 수영 국가대표로 활동했고, 대학입학 자격시험(바칼로레아)을 본 뒤 장학금을 받고 미국 메릴랜드주의 홀론-암스 스쿨을 다녔던 이력도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엔 윌리엄 코언 상원의원의 인턴 보좌관으로 일하며 워터게이트 청문회 과정을 지켜봤다. 이후 파리로 돌아온 라가르드는 파리10대학을 졸업했지만 프랑스 공무원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졌다. 프랑스의 한 법률회사로부턴 “여성은 절대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미국 시카고에 기반을 둔 베이커 앤드 매킨지에 취업한 그는 주요 독과점 금지 사건들을 다루며 승승장구했다. 1999년 첫 여성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여성이 계속 위로 올라가려면 매일 결연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며 “높은 위치에 오른 후에도 내 능력과 가능성을 의심하는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매일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  왼쪽부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그자비에 지오캉티 사업가.

■ 라가르드의 화려한 인맥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정계·재계 인사들과의 화려한 인맥을 자랑한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라가르드 총재가 특히 독일 지도부와 강한 관계를 맺는 등 인맥과 정치적 기술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 최초 기록을 연거푸 써온 라가르드 총재는 세계의 여성 정치인들과의 연대를 공식적으로 표명해 왔다.

나이 : 63세
학력 : 파리 10대학 로스쿨, 엑상프로방스 정치학교(영문학, 노동법 석사)
이력 : 미국계 로펌 베이커 앤드 매킨지 회장,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미·유럽 관계 위원, 프랑스 상무부 장관·농수산부 장관·재무장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레지옹 도뇌르 기사장 서훈(2000년), 미국 포브스지 선정 ‘세계 파워 여성 9위’(2011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라가르드와 메르켈 총리는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분이 각별하다. 두 사람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교분을 쌓아 왔다. 메르켈 총리는 라가르드가 IMF 총재직에 지원했을 때 강력하게 지지했다. 라가르드는 최근 “지난 30년간 메르켈은 용기와 리더십의 정신을 구현했다”며 “우리 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리더 중 한 명”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클린턴 전 장관은 라가르드가 IMF 총재로 거론될 당시 “자격 있고 경험 많은 여성이 IMF와 같은 국제기구 수장을 맡는 걸 환영한다”고 지지를 표명했다. 2014년 세계 여성 정상회의에 참석한 두 사람은 “라가르드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되고,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이 되면 어떤가”라는 사회자의 말에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

2011년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성추문으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라가르드는 당시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였던 카르스텐스와 IMF 총재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유럽 출신이 IMF 총재 자리를 차지하는 암묵적 관행에 반발한 호주, 캐나다, 칠레 정부는 카르스텐스를 추천했지만 결국 라가르드의 승리로 끝났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라가르드를 재무장관으로 낙점하고, 이후 IMF 총재 후보로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한편 라가르드가 사르코지 전 대통령에게 이른바 충성 서약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라가르드는 당시 정치적 야심이 없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기용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

그자비에 지오캉티 사업가

라가르드의 파트너로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의 사업가다. 법대 동창인 두 사람은 2006년부터 동거하기 시작했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등 국제행사에 ‘퍼스트 젠틀맨’으로 동행했다. 종종 메르켈 총리의 남편인 요아힘 자우어와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두 번 이혼한 라가르드는 첫 번째 남편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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