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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Deep Read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21일(木)
文, 국민 뜻 내세우며 거식증 정치… ‘연성 독재’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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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본 文정부 민주주의

정치 우회해 국민에게 직접 접근하는 건 전체주의式… 여론 조작에 취약해 反민주주의 흐를 위험
상대 인정 않고 정의·도덕·진리관 독점… 극단적 과거청산·적폐몰이, ‘자유의 빈사’ 초래할 수도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는 어디쯤 와 있을까.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구현하긴 하는 건가. 오히려 국민 기억에 남아 있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 수준이 더 떨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 거짓말과 선전선동, ‘국민의 뜻’을 앞세워 협치를 거부하는 ‘거식증(拒食症) 정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집, 규범과 전통의 훼손, 권력 주변 혐오 발언의 주류 편입, 언론 및 사법부에 대한 공격은 이런 의구심을 갖게 한다. 병적 나르시시즘에 기댄 편 가르기와 적폐 몰이는 문 정권이 ‘연성(軟性) 독재’(알렉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의 단계를 밟고 있을 뿐 아니라 전체주의를 닮아간다는 우려도 커졌다.

책은 시대의 거울이다. 최근 민주주의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대변해준다. 권력에 의한 거짓과 혐오의 재생산이 어떻게 일상화하며 전체주의의 길을 안내하는지를 설명한 미치코 가쿠타니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민주주의의 권위주의화 과정을 담은 티머시 스나이더의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국내 7인의 행정학자들이 5년간 토론한 내용을 엮어 출간한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그리고 한 해 전 출간된 레비츠키·지블랫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등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이 처한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 ‘국민의 뜻’과 권력의 자의성

지난 19일 생방송 된 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성장론, 일자리, 노동개혁, 탈원전, 드루킹, 대통령 가족 의혹, 한·미 동맹, 탈북자 강제송환 등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집값, 남북관계, 조국 사태 등 질문에는 본질을 비껴간 답변과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는 평가가 많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국민을 앞세우거나 ‘국민의 뜻’을 내세운 국정 운영과 권력 행사는 늘 정당화할 수 있는가이다. 7인의 행정학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국민을 앞세운 직접민주주의가 때로 반민주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치권력이 ‘국민의 뜻’에 대한 해석권을 독점한 뒤 여론을 조작해 권력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게 신형 독재의 상투수법이라는 지적이다. 이때 권력자는 입법기관 대신 자신을 국민의 대변자로 내세운다.

참된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전면화하는 데 있지 않다. 가쿠타니에 따르면 언어를 포섭해 정치를 우회하며 곧바로 국민에게 접근하는 수완이야말로 전체주의 전략이다. 실제로 히틀러는 연설 때마다 ‘국민(Volk)’을 내세워 자신과의 일체화를 시도했다.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무솔리니의 초기 파시즘에 대해 초보적인 문법을 사용해 인민을 획일적인 전체로 여기고 그 공통의지(즉 국민의 뜻)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비츠키·지블랫은 수많은 사례 연구 결과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군인이 아닌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무너진 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민주주의와 관련한 역설 중 가장 비극적인 역설”이라고 평했다.

문 정권의 통치술도 이와 매우 흡사하다. 직접민주주의 혹은 ‘국민의 뜻’을 내세우는 건 정권의 단골 메뉴다. 지난 10월 22일 국회에서의 내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국민’이었고 언급 횟수는 33회나 됐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의 뜻으로 세워진 촛불정권임을 자임했고, 대규모 군중집회를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검찰개혁, 적폐청산과 같은 언어를 포섭하고 효과적으로 연출된 이벤트를 활용해 대의제를 ‘패싱’하면서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는 건 괴벨스의 선전선동술을 닮았다. 문재인 정부가, 에코가 비평한 초보 파시즘 혹은 토크빌이 180년 전 예언한 연성 독재 에 수렴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낳는 지점이다.

◇ 거짓과 궤변, 언어의 타락

조국 사태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 및 여권 내 만연해 있는 사실에 대한 회피, 이성을 대신한 감성, 그리고 좀먹은 언어가 어떻게 진실의 가치를 깎아내리는지를 말해준다. 문 대통령은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 문제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다. 비록 사과했지만, 본질을 외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는 조국 사태의 원인에 대해 “우리 사회에 내재된 모순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조국 일가의 비리 혐의에 대해 ‘합법적 제도 속에 내재된 불공정’이라고 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 자크 데리다 등 해체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고 따라서 단죄할 수 없다는 논리다. 거짓과 궤변을 용납하는 ‘탈진실(post-truth)’ 세계관을 드러낸 것이다.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에 따르면 정치 혼란은 언어의 부패와 관계가 있다. 가쿠타니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어 타락을 비판한다. 이는 곧바로 문 정권의 통치 스타일로 투영된다. 느닷없는 남북 평화경제론 제기, 탈북 선원 강제 추방을 둘러싼 허위 해명, 탈원전 옹호를 위한 억지 논리, 거짓말 브리핑 논란을 빚은 남북군사합의서 채택, 소득주도성장론의 성과 옹호에 이르기까지 거짓과 궤변이 통치 기제로 쓰인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문 정권은 기존의 통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생각을 바꾸는 건 나약함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오웰). 나아가 권력 작동과정에 오류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진술, 통계, 공식기록을 합치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유시민이 끝까지 조국을 감싸는 것도, 통계 방법론까지 바꾸면서 경제 정책의 성과를 강조하는 것도, 북한 미사일 도발이 위협적이지 않다고 강변하는 것도 이런 유에 속한다. 러시아의 정치가인 가리 카스파로프는 “선전선동의 목적은 대중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것, 그리고 진실을 무효화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진실이 전체의 이름으로 희생될 수 있다는 것, 이게 전체주의의 방식이라고 그는 말했다.

◇ 선악 이분법과 정치적 거식증

연성 독재든 전체주의든 그 동력은 적과 위기와 증오의 재생산에서 나온다.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기존 질서를 파괴해 새로운 신조가 침투할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문 정권의 행태가 놀라울 정도로 이를 닮아간다. 경제교체, 시대교체, 역사교체, 주류세력 교체가 이런 흐름 위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7인의 행정학자는 앞의 책에서 민주주의 퇴보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로 ‘집권세력이 쉴 새 없이 가상의 적들을 만들어내 공격하는 것’을 들었다. 이처럼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이 정의와 도덕, 진리와 선을 독점한다는 의식은 정치적 경쟁자와의 협치를 거부하는 일종의 ‘정치적 거식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것이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고 일본을 겨냥해 ‘죽창가’를 선동하는 것, 우리 안에 적폐 대상을 만들어 내부식민지화하는 것이 이에 속한다.

민주주의 앞에 붙은 수식어는 때로 민주적 절차를 파괴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인민 민주주의’가 집단을 내세워 개인의 가치를 훼손하고, ‘광장 민주주의’가 종종 떼의 힘을 휘둘러 대의적 절차를 무시하는 것 등이다.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획일적 전체를 내세워 개인의 존엄을 국가의 손아귀로 가져가고 자유의 빈사(瀕死) 상태를 만든다면 스나이더가 말한 ‘스키조(정신분열) 파시즘’의 도래를 피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국민’ 앞세운 권력 논리의 함정 : 국민을 앞세운 권력은 때로 반민주주의로 흐른다. ‘국민의 뜻’에 대한 해석권을 독점한 뒤 여론을 조작해 권력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게 신형 독재의 상투수법이다. 문재인 정권의 통치술은 자칫 초보 파시즘이나 연성 독재에 수렴할 가능성이 있다.

‘탈진실’과 권력의 거짓 : 정치적 혼란은 권력이 사용하는 언어의 부패와 관계가 있다. 권력의 거짓과 궤변은 종종 ‘탈진실’ 속에 묻힌다. 전체의 이름으로 진실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전체주의의 방식이다.

거식증의 정치와 민주주의 후퇴 : 연성 독재나 전체주의의 동력은 적과 위기와 증오의 재생산에서 나온다. 나르시시즘에 의지해 상대와의 협치를 거부하는 건 ‘정치적 거식증’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자유의 빈사 상태를 가져오며 ‘스키조 파시즘’을 부를 수 있다.


■ 용어설명

탈진실(post-truth) : ‘탈진실’은 진실보다 신념, 이성보다 감성이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며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권위주의화 현상을 지적하면서 최근 유행한 개념이지만, 실제로는 1970년대 프랑스 좌파 지식인이 주도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계보를 잇고 있다.

연성 독재 : ‘연성 독재’란 알렉시 토크빌이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실은 흑백논리, 이중잣대, 선전선동, 민의 독점 등의 특징을 지니며 다수의 폭정, 혹은 전체주의화 경향을 보인다. 토크빌은 사적 집단의 나르시시즘이 통치자에게 연성 독재의 길을 안내한다고 경고했다.
e-mail 허민 기자 / 편집국 국장석 / 부장 허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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