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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nterview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22일(金)
“日과 맞붙을 탄탄한 소·부·장 확보하려면… ‘R&D 예산 유리천장’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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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포함한 국내 연구·개발(R&D)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장 출신의 화학자인 김 본부장은 지난 5월, 20조 원대 규모의 국가 R&D 예산 컨트롤 타워 수장인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취임했다. 곽성호 기자
■ 日수출규제에 눈물의 브리핑… 김성수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장

화학硏 30년 근무한 화학자 출신… ‘한국 과학기술 혁신’ 컨트롤타워

반도체·디스플레이 주도권 10년 뒤에도 韓에 있겠나
후발국가에 넘어갈 때 대비해 소·부·장 강화해야

우리 R&D 문제점은 ‘새로운 것 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러다 보니 기존 주력상품 ‘약한 고리’는 못 봐

무슨 연구든 ‘예산 확보되면…’ 전제조건 붙어 못마땅
예산이라는 테두리 벗어나 꼭 해야 할 연구 해야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수출통제 발표로 대응에 부산하던 지난 8월 27일 정부서울청사.

“이번에야말로 과학기술이, 과학기술인이, 그 사업들이…음…(목메어 목소리가 쉰 채) 결과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붉어진 눈시울.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두 눈을 깜빡이며) 아이고, 제가 나이가 드니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거는 과학기술인들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 브리핑을 위해 단상에 선 화학자 출신 고위 관료의 이 절절한 외침은 일본 보복규제로 상처 입은 우리 국민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당사자인 김성수(58)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지난 18일 세종시 집무실에서 어렵사리 만났다. 소재·부품·장비 R&D 대책에 24조 원 규모로 불어난 내년도 R&D 예산 집행 계획까지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김 본부장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지라 인터뷰는 요청 두 달 반 만에 겨우 성사됐다.

일본의 수출제재가 본격화하던 7월 초 보았던 또 다른 부처 고위 공무원은 “요즘 매일 대책회의를 하는데 김 본부장만큼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화제가 됐던 ‘눈물의 브리핑’ 얘기를 꺼내자 김 본부장은 멋쩍어하면서도 “과학기술이란 이름으로 믿어 달라고 국민께 호소하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브리핑 때 왜 우셨나요.

“그게 (쑥스러워하는 웃음) 참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제가 한국화학연구원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습니다. (일본이 수출을 제한한) 3개 소재(고순도 불화수소·포토 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모두 연구원에서 다뤘거든요. 과거에 더 잘했어야 하는데 싶었습니다. 예산이 한두 푼이 아니고 국민 기대도 높은데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감정들이 브리핑 내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우리나라 R&D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뭔가요.

“무조건 새로운 걸 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서 기존의 ‘집토끼’ R&D가 지닌 문제점은 못 보고 지나간 점입니다. 대표적 집토끼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만 봐도 정부는 그동안 ‘기업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었던 겁니다. 치이고 소외 받는 약한 고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라도 약한 고리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강화하도록 정부 R&D 예산의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소재·부품·장비 종합대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되고 있습니다. (8월 5일 발표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은 R&D, 세제, 금융, 인허가 지원이 총망라되고 있습니다. R&D 분야의 경우 특성화된 전략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소재·부품·장비 R&D 대책을 (8월 27일) 별도로 발표했던 겁니다. 현재 100+α 핵심품목별로 기술 수준을 분석하고 국내 수준에 맞는 맞춤형 투자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중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기업들 반응이 궁금합니다.

“기업들이 상당히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 17개 수요기업(대부분 대기업)을 만나 정부 대책의 보완점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눴습니다. 미리 공부를 해와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줘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 포토 레지스트 대체 소재 개발을 위해 광학 기술 R&D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아직 과학적 기반이 취약하다, 전공교수 육성이 급선무라는 의견을 낸 기업인이 있었습니다. 특히 기업인들이 ‘국가에 기여하는 것 같아 좋다’고 해서 고마웠습니다.”

―R&D가 잘되는 나라는 어디인가요.

“일본입니다. 화학을 예로 들어볼까요. 일본 화학의 역사는 미국만큼 깁니다. 미국에 화학학회가 생긴 게 1876년인데 일본 화학학회는 1878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도자기를 만들 때 바르는 유약 있죠? 이 역시 화학의 일종입니다. 유약을 만드는 오랜 기술이 포토 레지스트 생산 기술로 연결된 셈입니다. 일본 R&D의 특징은 기업과 대학 간 유기적 관계입니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기업에 납품하는 일본의 한 소재 업체가 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 본사가 있고 직원 규모도 100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 기업 요청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제품을 업그레이드해주고 요구조건을 맞춰줬다고 해요. 뛰어난 연구자가 없는데도 말이죠. 의아해 알아보니 수십 년간 인근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꾸준히 소통하며 해당 대학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R&D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도체·디스플레이 주도권이 일본에서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하지만 10년? 20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요. 중국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일본을 보세요. 비록 주도권은 넘겼지만, 소재·부품·장비 생산기술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죠. 우리도 이래야 합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같은 주력 상품 주도권이 후발주자에게 넘어갈 때를 대비해 R&D를 통해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시류에 따른 연구가 아니라 한 분야만 꾸준히 파고, 일본처럼 지역과 연계해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긴 호흡의 R&D가 필요합니다.”

―화학연구원장 재임 1년 4개월 만에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자리를 제안받으셨습니다. 왜 수락하셨습니까.

“첫 공직 입문은 2007년 1월이었습니다. 개방직 직위였던 과기부 과학기술혁신본부 생명해양심의관이었습니다. 원래 2년 임기였는데 1년 3개월만 하고 나왔습니다. 정권이 바뀌며 혁신본부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서글펐습니다. 첫 공직 경험인 데다 일이 굉장히 재미있었거든요. 이번 정부에서 부활한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그러던 차에 본부장직 제안을 받았고요. 처음에 좀 망설였던 게 사실입니다. 화학연구원장으로 있으면서 추진하던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혁신본부가 한 번 없어졌던 트라우마가 있어 이번에는 계속 잘돼야 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혁신본부가 하니 다르다, 기획재정부보다 부처 간 조정도 잘한다는 얘길 듣고 싶습니다. 존재감, 필요성을 인정받아 연구자에게 꼭 필요한 기관이 됐으면 합니다.”

―상당수 학생이 과학을 어려워하고 좋아하지 않는데요. 과학, 그중에서도 화학을 전공으로 택하신 까닭이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과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화학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학 1학년 때 화학 실험을 해보니 참 재미있고 과학자라는 이상에 제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근력운동 시 운동기구의 중량이나 드는 횟수를 늘리면서 성취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저는 화학 실험을 할 때 그런 희열을 느꼈어요. 내가 예상하던 방향대로 실험 결과가 나오면 그렇게 성취감이 클 수 없었지요. 되돌아가더라도 화학을 전공하고 싶습니다.”

―졸업 후 다양한 직업적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연구원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미국 하버드대에 박사후 연구원 자격으로 갔습니다. 지도교수님 추천으로 유기화학 연구분야에서 톱3에 드는 코리 그룹(1990년 노벨화학상을 단독 수상한 일라이어스 제임스 코리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에 들어가게 됐죠. 저 외에 3명의 한국인이 더 있었는데 그 형님들이 이후 모두 화학연구원으로 가셨습니다. 저에게도 ‘화학연구원에서는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며 추천하시더라고요. 코리 교수께서 나중에라도 미국에 오라고 제안했고 코리 교수 추천이라면 미국 내 직장 구하는 건 문제도 아니긴 했습니다. 하지만 화학연구원 생활이 좋았습니다.”

―연구원장으로 계시며 느낀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정부 출연 연구원·출연연)의 당면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연구가 예산의 테두리에 갇혀 있다는 겁니다. 무슨 연구를 하든 ‘예산이 확보되면’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못마땅했어요. 예산이란 유리천장을 벗어나 연구원이 잘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R&D 예산 20조 원 시대인데 좋은 연구라면 예산을 안 주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화학연구원장 재직 당시에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해 정부에 제안하겠다는 구상을 했습니다. 진짜 나아갈 길이라면 기관장이 바뀌어도 이어나갈 수밖에 없겠죠.”

―출연연을 싱크탱크로 육성하려면 추가로 어떤 점이 뒷받침돼야 할까요.

“예산, 법 모두 수단일 뿐입니다. 진짜 중요한 건 좋은 연구자를 키우는 겁니다. 연구원을 들어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겠지요. 지금은 출연연에 대표연구자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대학이나 기업으로 옮겨갔어요. 대학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는 있지만, 큰 연구를 하긴 어렵습니다. 기업은 큰 프로젝트를 할 수는 있지만 연구자가 100% 원하는 연구를 하긴 어렵죠. 기업체보다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고, 대학보다는 큰 연구를 할 수 있는 출연연만의 장점을 잘 살려야 합니다. 다행히 요즘 화학연구원을 비롯한 연구원들에 40대의 실력 있는 연구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이들이 5년 정도 더 지나면 대표연구자로 클 수 있을 겁니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이루고 싶은 점, 본부장 역임 후 꿈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열심히가 아닌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혁신본부 자체가 창의성 있게, 도전적으로 운영돼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자기 문제화해 고민하고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노’(NO)라고 당당히 말하고 이를 수용하는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만들 겁니다. 퇴임 후에는 강의 등을 통해 연구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을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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