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600㎞ 떨어진 사우디아람코의 주베일(Jubeil) 정유플랜트 전경. 아람코는 사우디 정부가 소유한 핵심 기업으로 나라 살림의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AP
■ 내달 기업공개‘사우디아람코’… 흥행전망
아람코 “작년 영업益 251조원”
애플·삼성전자 합친금액 이상
빈 살만 “기업가치는 2조 달러”
글로벌IB“1조5000억달러이하”
저평가에 예정행사·물량 축소
주관사들도 ‘수수료 감소’우려
투자자 “셰일가스 탓 흥행부진”
전통 산유국들 타격 점점 커져
‘세계 증권시장의 제패가 될까, 무리수로 위기를 맞게 될까.’
‘세기의 상장’을 앞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ARAMCO)의 기업공개(IPO)를 놓고 말이 많다. 온갖 설왕설래 속에 12월 5일에는 아람코의 최종 공모가가 타다울거래소에서 결정된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은 전 세계 1위 기업의 상장 소식에 흥분했다. 반년여의 시간이 흐른 11월 25일 현재, 아람코의 성적표는 그리 좋지 않다. 호기롭게 등장한 아람코는 최근 체면을 잔뜩 구겼다. 당초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제시한 아람코의 기업가치 2조 달러(약 2354조 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평가서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평가사들의 점수는 대략 1조1000억∼1조7000억 달러 사이에 머물렀다. 국제 투자자들로부터는 “여전히 비싸다”는 힐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우디 왕실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아람코는 비상장회사로 그동안 영업이익을 포함한 경영 실적이 외부에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IPO를 앞둔 아람코의 불투명한 행보에 비판이 일자 아람코는 최근 2017∼2018년 요약재무 결과를 발표했다. 2018년 한 해 영업이익이 약 2129억 달러(약 251조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간 세계 1위였던 애플(818억 달러), 2위 삼성전자(776억 달러), 3위 로열더치셸(533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모두 더한 액수보다 많다. 빈 살만 왕세자는 2조 달러 중 5%(약 1000억 달러)를 주식시장에 내놓겠다고 했는데 방침이 자주 번복되면서 IPO 이후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흥행 부진에 ‘동네잔치’로 전락 = 소문난 잔치에 먹을거리가 없는 상황으로 가는 기류다. 사우디는 당초 예정된 미국과 캐나다, 일본 투자자 로드쇼를 지난 17일 전격 취소했다. 이튿날인 18일에는 유럽 로드쇼 일정도 취소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진행되는 로드쇼를 취소한 것은 아람코가 더 이상 국제 투자자들에게 매달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앞으로 투자자 회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람코는 24일 두바이에서 로드쇼를 열고 쿠웨이트 국부펀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협상을 벌였다. 쿠웨이트신문은 이날 “국부펀드는 아람코 IPO를 더 연구한 뒤 참여를 결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IPO를 앞두고 심상치 않은 소식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뒤 벌어진 일들이다. 시작은 몇 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FT는 수주 전 투자은행들이 ‘미국, 아시아, 유럽 전역에서 열린 초기 투자자 회의에서 아람코 기업가치를 1조1000억∼1조5000억 달러로 잠정 결정했다’는 소식을 사우디 정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의 당초 예상에서 반 토막 난 수준이다. 투자자들이 저가 매수로 차익 실현을 기대하기 위해 기업가치를 낮게 잡은 경향도 있다고 언론은 분석했다. 한 은행가는 당시 이 자리에 있었던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야시르 알 루마얀 회장에 대해 “1조1000억 달러 얘기를 듣고는 매우 화가 났다”고 전했다.
지난 16일엔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가 몇 명이 리야드 궁전에 모여 사우디 정부에 상장을 위한 최종 권고안을 전달했다. 이들은 1조5000억 달러 규모의 국제 상장, 1조6000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 역내 상장 등 2가지 버전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 17일 아침에서야 ‘아람코가 전체 주식의 1.5%만 1조7000억 원으로 평가해 내놓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빈 살만 왕세자가 2016년 제시한 5%는 물론, 최근 시장에서 예상한 2%보다 훨씬 줄어든 규모다. 사우디의 잇단 투자자 로드쇼 취소 결정은 기업가치를 더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한 국제 투자가는 “루마얀은 우리 국민에게 주식을 팔 수 있는데 왜 더 낮은 평가를 받아가면서 우리의 보석을 국제 시장에 넘겨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우디 중앙은행은 사우디 투자자들이 아람코 IPO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도록 대출제한을 완화하며 대출을 장려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렇듯 아람코의 IPO가 ‘동네잔치’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그동안 사상 최대 수수료를 기대했던 주관 은행사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 상장에 종사하는 25개 은행이 당초 예상인 2억 달러보다 훨씬 낮은 9000만 달러 이하의 결합 수수료를 벌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망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원인으로는 원유 생산량과 유전 개발 예산, 비축 매장량 등에 관한 아람코의 결정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꼽힌다. 사우디 왕실을 비판하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왕실의 지시로 암살됐다는 의혹도 상장의 걸림돌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숙적 이란과의 계속되는 충돌,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장기적으로도 해소되기 어려운 문제다.
아람코는 이달 28일까지 개인투자자 청약을 받고 다음 달 4일까지 기관투자가를 모집할 계획이다.
◇셰일가스·신흥 산유국의 위협 = 국제 투자자들은 사우디 IPO 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세계 에너지 판도를 뒤흔든 셰일가스를 꼽는다. 셰일 혁명으로 국제유가의 주도권이 이미 중동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하루 평균 1099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제1 산유국 지위에 올랐다. 1973년 이후 45년 만이다. 미국의 원유 생산 규모는 지난 10년간(2008년 500만 배럴) 두 배 넘게 늘어났다. 미국 원유 생산량은 올해 1245만 배럴, 내년에도 1338만 배럴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원유 및 석유제품 수출량이 수입량을 초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완전한 에너지 독립국이 된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셰일가스가 미국에 외교적 권한을 부여했다”며 “휘발유 가격 상승에 대한 걱정 없이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제 생산량 증대로 인한 원유가격 하락, 다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의 분쟁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미국 최대 셰일 분지인 텍사스주 소재 퍼미안의 주요 생산자인 파슬리에너지는 지난 3년간 생산량이 3배 증가했지만 주가는 2016년 말 38달러에서 올해 약 19달러로 떨어졌다. 한 셰일가스 생산자는 “미국 생산량을 하루에 200만 배럴 늘린다면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순 있지만 OPEC 등과 또 다른 가격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과 캐나다, 노르웨이, 가이아나 등 지금까지 원유 생산이 활발하지 않았던 산유국들도 원유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NYT는 이들 4개국 생산량이 2020년 일일 총 100만 배럴에 달하고 2021년에는 일일 총 100만 배럴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현재 전 세계 하루 원유 생산량은 약 8000만 배럴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던 남미 가이아나의 경우 글로벌 에너지 기업 엑슨모빌이 4년 전 가이아나 앞바다에서 경질유가 매장된 유정을 발견하면서 산유국 반열에 올랐다. 내년 초부터 하루 12만 배럴, 2025년에는 매일 75만 배럴씩 생산할 전망이다.
새로운 산유국들의 생산량 증가는 미국 셰일가스와 함께 사우디를 포함한 전통 석유 수출국들의 위상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 둔화 기미가 점점 뚜렷해지는데 원유 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 있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OPEC과 러시아 등 산유국들이 ‘짬짬이’ 감산을 통해 원유 가격을 유지하는 방식도 이제는 더 이상 어려울 전망이다. EIA는 올해 배럴당 평균 64달러에 거래된 국제유가가 내년엔 60달러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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