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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9년 11월 28일(木)
사물·자연… 非인간과의 관계를 성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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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엄 하먼은 인간과 나머지 세계는 평등한 객체라는 ‘객체 지향 존재론’을 펼쳤다. 메릴린 스트래선은 전체론으론 세계를 파악할 수 없으며 부분 간 ‘평등한 관계’를 중시했다. 그림은 문화일보 연재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중 그레이엄 하먼 편과 메릴린 스트래선 편에 각각 실렸던 변영근 작가(왼쪽)와 이정호 작가의 일러스트.

부분적인 연결들 / 메릴린 스트래선 지음, 차은정 옮김 / 오월의봄
쿼드러플 오브젝트 / 그레이엄 하먼 지음, 주대중 옮김 / 현실문화

본보‘사상의 최전선’서 소개
전환적 사상가들 책 출간 봇물
인류학·철학 거대한 방향 전환

“새 관계 창출하는 사유를 해야”
전체성 깨부수고 개별존재 중시

인간의식 밖 존재인 객체 복권
“대상을 그 자체로 두고 인정을”


문화일보에 연재 중인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에서 소개한 바 있는 사상가들의 책이 쏟아지고 있다. 한 세대 전쯤에 포스트구조주의가 돌풍을 일으켰듯이, 전 세계에 불어닥친 사상의 첨단 흐름이 국내 학계에도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번 주만 해도 영국 인류학자 메릴린 스트래선의 ‘부분적인 연결들’과 미국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의 ‘쿼드러플 오브젝트’가 나왔다. 두 책은 각각 인류학과 철학 두 분야에서 거대한 방향 전환을 일으킨 두 학자의 사상을 핵심적으로 요약해 보여 준다.

‘부분적인 연결들’은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를 이끈 저서다. 1991년 처음 출간될 때만 해도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04년에 독자들 요청에 따라 다시 출간됐을 때에는 이미 인류학의 중심에 있었다. 그사이 인류학에 존재론적 전회라는 결정적 변화가 나타났고, 학자들이 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자 이 책이 오롯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존재론적 전회는 이 세계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인식’되는 유일하고 전체적인 실재가 아니라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서구인이 보는 세계가 다르고, 한국인이 보는 세계가 다르다. 네가 생각하는 세계가 다르고, 내가 생각하는 세계가 다르다. 인간만은 아니다.

표범이나 나무 같은 ‘존재’들도 나름대로 자신에게 적합한 세계를 구축한다. 따라서 세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의 전체로 통합되거나 환원될 수 없다. 차라리 이 각각의 세계들이 연결과 단절을 거듭하는 형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유의 중심이 ‘전체의 인식’에서 ‘개별 존재들의 관계’로 옮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전통 서구 사상, 특히 근대 유럽의 철학은 세계를 신 중심, 이성 중심, 남성 중심, 서구 중심의 하나의 전체로 상상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이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포스트모던 다원주의도 전체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다양한 존재의 수많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라는 틀에 갇혀 그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결국 전체 속의 다양성이라는 관념에 떨어지고 만다.

스트래선은 이 책에서 어떻게든 전체성을 생각하려는 서구 인류학의 사고 습관을 산산이 조각낸다. 우리는 전체를 내려다보는 초월적 시야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우리가 전체라고 부르는 것은 부분을 무시하거나 생략하거나 누락함으로써 생성한 또 다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항상 ‘전체로 회수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트래선은 이를 성찰하는 것을, 생물학의 ‘부분할’ 개념을 빌려 메로그래피(merography)라고 부른다. ‘mero-’는 희랍어로 ‘부분’을, ‘graphy’는 ‘기록 또는 기술’을 뜻한다.

메로그래피 사유는 어떠한 전체도 상정하지 않은 채 부분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부분들을 모으고 묶은 전체를 창출하는 것을 사유의 목표로 삼지 않고, 닫힌 전체를 절단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출현시키는 창조적 힘에 주목한다. 존재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전체를 생성하려 하는 유혹을 무찌르고, 매순간 마주치는 ‘다른’ 세계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로부터 무엇을 생성할 것인가에 욕망을 투자한다. 가령, 멜라네시아 사람들은 어머니 형제들이 누이 아들들과 부분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전체를 쪼갠 부분들이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사유, 즉 현대 서구사회의 특징인 전체주의적 관계성이 아닌 새로운 관계성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전체(사회, 국가, 회사 등)로 수렴될 수 없는, 아니 수렴되기를 거부하는 부분들(개체들)의 희망이 된다. 전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쿼드러플 오브젝트’는 철학의 ‘객체론적 전회’를 잘 보여준다. 소박하게 생각하면 의식 저 바깥에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철학은 이러한 객체를 그 자체로 다루지 않는다. 사과를 사과 자체로 다루지 않고, 사과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실재(가령 유전자)가 드러날 때까지 파고드는 ‘하부채굴’을 행하거나 빨강, 둥글다, 꼭지, 맛있다 등 경험에서 도출한 몇몇 속성을 묶어서 사과로 간주하는 ‘상부채굴’을 행한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객체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과 유전자는 사과가 아니고, 성질을 아무리 덧붙여도 눈앞의 사과와 같지는 않다.

하먼은 철학의 중심에 객체(사물, 대상)를 복권시킨다. 먼저, 후설의 지향성 개념을 이어받아 인간이 의식 바깥의 존재를 지향할 때 감각되는 감각 객체와 그때 파악되는 감각 성질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감각하지 못하는 객체도 있다. 가령, 인류 출현 이전의 사건인 빅뱅처럼, 인간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대상을 하먼은 실재 객체, 그 속성을 실재 성질이라고 한다. 객체는 물리적 실재 여부와 관련이 없는데, 가령 유령은 존재하지 않아도 사회에 일정한 행위자로 관계하므로 실재 객체는 아니지만 감각 객체라 할 수 있다.

객체의 이 네 가지 극점 사이의 긴장은 시간, 공간, 본질, 형상으로 나타나며 이들은 대면, 매혹, 인과, 이론, 방사, 접합 등 열 가지 축도로 관계를 맺는다. 하먼에 따르면, 객체들이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의 감각은 어떤 특권도 갖지 못한다. 사물인터넷이 보여주듯 객체-객체 관계는 인간 없이 성립한다.

바다-구름-비의 관계를 의미 없이 생각하고, 온실가스를 무한정 배출함으로써 인간은 지속 가능성을 파괴해 왔다. 하지만 객체의 상호작용이 인간 없이 이루어져 왔음을 인식한다면, 인류의 행동도 조금은 달라질지 모른다. ‘객체 지향 존재론’이라고 불리는 하먼의 사상이 ‘인류세 시대의 철학’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두 책에서 살펴본 것처럼 21세기 사상들은 낡아빠진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비인간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는 ‘비인간주의적 사유’로 전환 중이다. 인간 능력에 대한 과신 탓에 스스로 미래를 닫아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돌이켜볼 때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각 권 368쪽·2만2000원, 280쪽·1만8000원.

장은수 이감문해력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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