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사랑해요” 이제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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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남(1906∼1993)

나와 같은 말띠였던 외할머니, 50대가 되고 보니 부쩍 할머니 생각이 더 나네요. 초등학생 시절, 밀양 할머니 댁에서 보냈던 여름방학이 눈에 선합니다. 넓은 마당 평상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나는 여기저기 흩어져 다니는 닭들이 무서워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요. 그러면 할머니는 달걀프라이로 내 관심을 끌곤 하셨어요.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한지 바른 방문에 나뭇가지 그늘이 어른거리는 게 마치 귀신 같아 보여 할머니 품을 파고들었던 기억도 나요.

한 번씩 부산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시면 한 달가량 머무시면서 엄마 쉬게 하려고 컵 하나, 숟가락 하나만 나와도 부엌에서 설거지하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그렇게 딸네들이 사는 부산과 고향인 밀양을 오가며 사셨으면 더 오래 건강하게 사셨을 텐데 서울 사는 큰아들 집으로 이사 가시면서 할머닌 아파트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셨어요. 지금만 같았어도 말렸을 텐데, 그때만 해도 할머니가 밀양에 혼자 사시는 것보다 서울 큰아들 집으로 가는 게 다들 좋은 일인 줄만 알았어요. 처음 한두 번 길을 잃어버리셨을 때는 시골에서 사시다 복잡한 서울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할머니는 30년 전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 계속 밀양 집을 찾으러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찾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급격히 노쇠해지셨어요.

밀양에 사실 때만해도 결혼한 딸들에게 ‘김실(엄마), 안실(이모) 보아라’로 시작하는 편지를 가끔 보내셨지요. 마치 붓글씨 쓰듯 죽 이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로 써서 보내신 할머니 편지를 해독(?)하느라 엄마, 아버지, 제가 돌려가며 읽고 서로 해독한 부분을 맞춰 내용을 꿰맞추고 나면 마치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박수치며 기뻐하곤 했어요.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요.

할머니, 그때는 제가 어려서 할머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요. 이제 와 생각하니 할머니께 너무 불효만 한 것 같아요. 살아계실 때 한 번도 하지 못한 말, 지면으로나마 할게요. 할머니, 사랑해요. 하늘나라에선 편안하시지요? 꿈속으로라도 한번 다니러 오세요. 할머니 외손녀 잘 살고 있어요.

외손녀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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