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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02일(月)
박스석·시즌공연제·예술감독시스템…17세기 伊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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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디자이너 토렐리가 디자인한 만넬리 오페라 ‘안드로메데’(1637,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파리 초청을 위한 디자인.

■ 김학민의 오페라 문화사 - ③ 베네치아 오페라

- 예술 미학

초기 소수 후원자 대상 인문주의적 오페라→현란한 볼거리·성악가 기교 중심 대중예술로 변모
공중 플라이 장치·착시 효과·순간 장면 전환 기법까지 등장…오늘날 마술쇼와 같은 인기 스펙터클


오늘날 오페라는 일부 고급예술 향유층의 관심밖에 못 받는 소외 예술이지만, 과거 몇백 년 동안 오페라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큰 오락거리였다. 영화와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오페라는 왕과 귀족뿐 아니라 먹고살 만한 모든 유럽인에게 일상에서 일탈해 하루 저녁을 즐기는 공공 대중예술이자 호사 취미였다.

오페라의 확산과 대중화에 결정적 기여를 한 도시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인구 12만 명의 작은 도시, 베네치아였다. 곤돌라를 타고 다녀야 하는 수상도시가 홍수로 범람했다는 뉴스거리로도 유명한 이 도시는 바로크 시절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과 달리 왕이나 공작이 통치하지 않던 자유로운 공화국 형태인 데다 무역과 관광산업이 활발히 이루어져, 유럽 전 지역에서 부유한 상공업자나 귀족, 외교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자유롭고 활달한 도시에 오페라가 흘러들어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베네치아의 부유한 사업 가문이던 트론 가문이 투자하고 직접 운영하던 산 카시아노 극장은 원래 연극(코메디아 델 아르테)을 공연해왔는데, 다른 도시에서 순회오페라단 공연을 보고 감탄한 가문의 일가족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 이 극장을 오페라하우스로 개조했다. 이렇게 탄생된 최초의 오페라하우스, 산 카시아노 극장(1637)에 티켓을 사서 들어온 청중은 연극보다 더 재미있는 오페라의 모습에 경탄했다.

베네치아의 다른 부자 가문들은 앞다투어 오페라하우스를 세웠다. “산 모이세 극장, 산 살바토레 극장, 조반니&파올로 극장 등, 베네치아에서만 17세기 중반부터 말까지 무려 17개의 오페라하우스가 오픈했고… 총 388편의 오페라가 제작됐다.”(Grout, A Short History of Opera, 1965, 79) 베네치아 오페라들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오페라를 보기 위해 유럽 각 지역에서 외교관, 사절단을 위시한 귀족들뿐 아니라 평민 관광객들이 오페라의 도시, 베네치아에 몰려들었다.

오늘날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공연을 방불케 하는 베네치아 오페라의 인기는 몇백 년 동안 유행했던 ‘코메디아 델 아르테’의 점진적 쇠퇴를 가져왔다. 17세기 중·후반 베네치아의 오페라하우스들 중 9개의 신축극장을 제외한 나머지가 (산 카시아노 극장처럼) 코메디아 델 아르테를 주로 공연하던 연극 전용극장을 개조, 증축했다는 사실은 연극에 대한 오페라의 승리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베네치아 오페라의 인기는 수백 년 전통의 옛 코미디 연극의 인기를 완전히 잠식했다.”(C. Ivanovich, Memorie teatrali di Venenzia, 1681, 383∼4: Kimbell, 111에서 재인용)

▲  토렐리가 디자인한 파노 극장(이탈리아 우르비노) 설계 도면.
1. 무대미술의 마술쇼

오페라의 인기에는 무대디자인과 기술의 힘도 큰 몫을 해냈다. 베네치아의 공학 건축가이자 천재적 무대디자이너인 자코모 토렐리(1608∼1678)는 신과 용, 구름 등을 공중에서 날아다니게 하는 ‘채리어트’(공중 플라이 장치)와 무대 앞쪽에서 뒤쪽까지 여러 개의 다리막과 머리막을 놓아 삼차원적 공간을 구현해낸 원근법 무대로 착시 효과를 창출했다. 토렐리의 천재성은 밧줄과 도르래, 레버 장치를 통한 ‘순간 장면전환’ 기법과 무대 상부에서 덮개를 내려 구현한 ‘천장 덮개’ 장치에서 확연히 드러났다.(Kimbell, 129∼132) 원래 17명의 크루(무대 인력)를 총동원해서 구현하던 장면전환을 단 1명의 크루가 순간적으로 구현해내는 토렐리의 마술 같은 무대 기법은 오늘날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마술쇼에 준하는 인기 스펙터클이었다.

2. 전문 극장운영 시스템과 시즌 공연제

당시 베네치아 도시에 세워진 수많은 오페라하우스는 가문의 부와 위용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오페라 공연을 흥행시켜 돈을 벌려는 사업적 목적도 컸다. 그러다 보니 가문의 직접 운영체제에서 임프레사리오(흥행주)에 의한 전문 운영체제로 발전하게 됐다. 오늘날 유럽 오페라하우스들의 예술감독·극장장 시스템이 이때 도입된 것이다.

여름 농번기를 제외한 일 년 동안 상시적으로 공연을 하는 ‘시즌 공연제’도 베네치아에서 처음 시작됐다. 처음에는 2월 혹은 3월 초에 있던 카니발 축제 기간에 집중적으로 오페라를 공연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기존의 코메디아 델 아르테 공연을 주로 하였으나, 점차 제작비와 극장 운영비를 회수하기 위해 오페라 공연 기간이 확대됐다. 2∼3월 달 공연이 교회력이 허용하는 가장 이른 시기인 성 스테파노 축일(12월 26일)로 앞당겨지면서 온전한 겨울 시즌이 자리잡게 되었고, 17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가을 시즌이 생겨났으며, 18세기에는 봄 시즌이 부활절 이후 40일간에 걸친 예수승천기에 생겨났다.(Kimbell, 117∼8)

박스석도 베네치아에서 시작됐다. 베네치아의 오페라하우스들은 처음 건축하거나 증축할 때에 피트석(중앙의 객석)과 갤러리석(하인들이 머무는 장소)에 더해 홀의 양 측면과 무대 반대 편에 박스석을 만들었다. 규모가 작은 극장은 박스석이 3층에 걸쳐 있었고, 큰 극장은 5층에 걸쳐 박스석이 놓였다.

박스석은 공연별로 티켓판매를 하는 게 아니라, 극장 건축 설계 때부터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 오페라하우스를 건축할 때 부자들을 찾아다니며 박스석 구입 예약을 받았고, 이후에도 시즌별로 박스석 사용료를 받았다. 박스석은 돈만 계속 지불하면 상속도 되었다.(Ivanovich 1681, 402, Kimbell 119에서 재인용) 박스석은 오페라 관람의 재미와 더불어 사교장소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이곳에서 사업상 긴밀한 대화나 정치, 남녀의 은밀한 교제가 이루어졌고 감시관들은 사람을 고용해 박스석을 도청하기도 했다.

3. 대중 취향의 징후들

시즌 공연제와 박스석의 인기가 말해주듯,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는 소수의 예술 후원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철학적이고 품격 높던 오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었다. 돈 많은 절대 다수 후원자의 관심을 끌어야 하다 보니 초기 오페라의 인문주의적 사유나 진지한 실험성이 사라졌고, 그 빈 자리에 현란한 볼거리와 스타 성악가의 화려한 기교가 대신 들어서게 됐다. 스펙터클은 당시 베네치아 오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무릉도원의 모습이나 꿈, 신탁의 공간, 주술 장면, 혼령과 신의 출현, 배의 난파, 전투와 성의 함락”과 같은 무대 연출이 청중을 매료시켰다.(Grout, 79)

초기 오페라의 인기 테마였던 신과 영웅의 소재 대신 평범한 인간이 등장인물로 나오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중세 이탈리아 시절의 로망스 문학, 가령 아리오스토와 타소의 서사시 속 인물들과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들이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문학과 역사 속 인물들은 사랑의 함정과 모략 등 청중의 기대감에 부합하기 위해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됐다.

몬테베르디가 말년에 남긴 인류 최초의 팩션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은 픽션과 팩트를 적절히 섞어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와 코르티잔 포페아의 내면에 들끓는 정념과 욕망을 극화시켰다.

변장의 장치를 통한 신분위장과 계략의 테마도 유행했다. 가령, 안토니오 사르토리오의 ‘오르페오’(1672)는 유리디체를 유혹하기 위해 다른 남자가 변장 상태로 접근, 오르페오와 삼각관계를 이루어 오르페오 신화에 내재된 재생과 숭고한 사랑의 느낌이 변질됐다.(Parker 편, Oxford Illustrated History of Opera, 1994, 44)

▲  몬테베르디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1643, 베네치아)의 2014년 미국 오리건 주 리드오페라단 공연 모습.

4. 타락과 활력의 이중성

양식적 통일성이나 예술성보다 대중성을 좇다 보니, 당대 시인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17세기 중·후반 베네치아 오페라가 초기 오페라의 이상(理想)을 저버린 타락상에 대해 개탄했다. 시인 프란체스코 베르니는 “한때 음악적 영감에 원천이 되었던 시가 송장에 가까운 절름발이로 변질했음”을 비판했고, 대본작가 아우렐리오 아우렐리는 “오페라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 작가의 지성이 사라져버렸다”고 한숨지었다.(Varese, Storia della letteratura italiana, V, 1967, 543: Kimbell, 122에서 재인용)

하지만 베네치아 시절 오페라는 타락의 측면과 더불어 공공예술로서 대중 오페라가 지닌 건강한 활력이 함께 공존했다. 몬테베르디와 함께 베네치아 시절 스타 작곡가였던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지아소네’(1649)와 안토니오 체스티의 ‘오론테아’(1656) 등에 나타나는 다양한 신분과 변화무쌍한 캐릭터, 자연스러운 대화, 물 흐르듯 빠른 전개의 면면들은 오페라가 신화의 사변적 세계에서 이탈해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영역으로 이전했음을 말해준다.

수많은 오페라하우스와 시즌공연, 다른 나라에서 몰려든 많은 관광객, 마술에 가까운 무대미술, 다채로운 연극성 등으로 증명되는 베네치아 오페라의 인기는 앞으로 몇백 년 간에 걸쳐 유럽 전 지역의 도시들에서 펼쳐질 다채로운 오페라 문화의 파노라마들을 예견해준다.

경희대 교수


■ 용어설명

트론 가문 : 르네상스 말기부터 베네치아에서 물자조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대대로 상원의원과 외교관, 총독 등 요직들을 배출한 부유한 가문.

코메디아 델 아르테 : 이탈리아에서 16∼18세기에 유행한 코미디로, 욕심 많고 탐욕스러운 귀족남자, 꾀많은 하녀 등 정형화된 인물들을 통한 세태풍자로 큰 인기를 누렸다.

베네치아의 카니발 축제 : 부활절 이전 40일 동안의 금식기도(사순절)에 앞선 도시 전체의 대축제. 먹고 마시는 흥청망청 파티와 더불어 거리 매스커레이드 행렬과 춤, 노래, 코메디아 델 아르테 및 오페라 공연이 이루어졌다. 12세기에 시작돼 크게 성행하였으나 무절제와 잇단 사고로 1797년 오스트리아 당국에 의해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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