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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02일(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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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지역 가운데 하나인 남부 앨라배마 주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젊은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한 흑인 청년을 백인 변호사가 변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법정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건전해야만 건전할 수 있습니다. 법정은 오직 배심원단이 건전한 만큼 건전하고, 배심원단은 그 구성원이 건전한 만큼 건전합니다.”

최근 대법원이 영상물 ‘백년 전쟁’에 대한 소송 사건에서 방송위 제재와 1·2심의 원심을 깨고 다시 재판하라고 내려보냈다. 하급심에서 명백한 사실 왜곡과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한 것을 대법원이 뒤집은 것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백년 전쟁’은 좌파 시민단체가 만든 것으로 한숨 나올 정도의 수준 낮은 선전·선동물이다. 이 작품은 아시아 대륙을 휩쓸던 공산주의에 대항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축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을 오늘날 12∼14위의 경제대국으로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을 심형래 버전의 갱스터나 꼭두각시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1960∼1970년대 수출주도 공업화 전략은 박정희가 아니라 미국 케네디 정부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은 먹던 밥풀이 튀어나올 정도의 사실 왜곡이다. 미국은 한국을 농업 위주의 1차산업국 내지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를 갖추도록 함으로써 일본 제조업의 소비 시장으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에 끝까지 저항하면서 밀어붙인 것이 바로 수출주도형 공업화였다. 당시 박정희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더라면 한국의 경제발전은 수십 년 이상 뒤처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백년 전쟁’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사실 왜곡이나 편향적 전달 등 객관성과 공정성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까지 두둔했다.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합의는 무엇인가. 국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 대법원은 우리를 향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대한민국 파괴의 자유’를 주라고 속삭인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이렇게 망가져 가고 있다. 사실을 이념에 꿰맞추려는 지식인들의 배반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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