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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美國에서 본 한반도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04일(水)
탈한국 행렬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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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여행객뿐 아니라 이민자들도 급증하면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은 늘 북적인다. 뉴시스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팰로앨토 골프장의 중국인들
脫중국 러시에 집값까지 급등
文정부 출범 뒤 한국인도 가세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의 고급 골프장은 매 주말 중국인들로 붐빈다. 실리콘 밸리에 자리 잡은 중국계 미국인들도 있지만, 중국에 기반을 둔 토종 중국인이 많다. 회사 창업자나 투자 전문가가 대부분이고, 회사를 뉴욕에 상장시킨 기업인들도 있다. 나이는 50대로 중국 개방 이후 정보통신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성장을 이끈 기업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론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성공했으나 중국의 미래, 특히 정치적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언제 기업과 재산이 정부에 의해 침탈당할지 몰라 불안해한다. 가족들은 이미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본인들은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일한다. 아예 중국을 떠나 제2의 커리어와 삶을 모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팰로앨토는 미국에서도 집값이 가장 비싼 곳에 속한다. 조그마한 방 한 칸짜리 콘도미니엄이 100만 달러를 넘는다. 필자가 스탠퍼드대에 부임한 지난 2001년 이후 이곳 부동산 가격이 3차례 크게 올랐다. 처음 두 번은 구글과 페이스북이 상장되면서 벼락부자가 된 실리콘 밸리의 젊은이들이 집값을 올렸다. 그런데 세 번째 급등의 원인은 위와 같은 중국인들과 관련이 있다. 이른바 ‘현찰’로 집들을 마구 사들였기 때문이다. 급기야 2017년 여름에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외환 반출을 금지하고 나섰지만 이들에게는 이미 한발 늦은 뒷북 정책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조짐이 한국에서도 엿보인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 중견기업인이나 자산가 중에서 한국의 미래에 대해 회의를 토로하는 것을 종종 접한다. “상속세, 증여세 등 낼 것 다 내고 난 후 여생은 편하게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자산가, “자식들은 나처럼 힘들게 사업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아 한국을 떠나겠다”는 중견 기업인을 쉽게 만난다.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고 있다며 목청을 높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과거에도 정치·경제적 이유로 이민을 선택하거나, 자녀 교육을 위해 ‘기러기 가족’이 된 중산층, 지나친 학구열과 취업난에 지친 젊은이들의 엑소더스 현상은 있었지만, 소위 기득권층의 ‘탈(脫)한국’ 움직임은 처음 보는 일이다.

외교부 자료에 의하면 2018년 한 해 해외 이주 신고자 수는 2200명으로 200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네 자릿수 인원을 기록한 것도 9년 만이라고 한다. 중산층은 환경·교육 문제를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지만 자산가는 국내 정치·경제적 상황을 들었다. 국내 거주자가 해외 부동산을 사들이는 데 지출한 돈의 규모도 급증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해외 부동산 매입에 쓰인 자금도 2016년 3억800만 달러에서 지난해에 6억2500만 달러로 두 배가량으로 증가했다. 대형 금융법인이 투자 목적으로 송금하는 돈과 일반 법인의 영업소·해외지사 설치를 위한 송금액은 제외한 수치이므로 주로 개인적인 목적으로 지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2년 전 출간한 ‘슈퍼피셜 코리아’에서 우리 세대엔 중국이 결코 미국을 추월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의 하나로 성공한 중국인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현상을 꼽았다. 미국에 부동산을 구입하고 가족을 이주시키고 자녀들을 미국 대학에 보낸다. 중국에서 번 돈을 유출해 미국에 투자하고 소비하는 셈이다. 중국보다 미국이 낫다는 것을 이들 스스로 인정하는 증거다. 중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이러한 기회를 활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중국 상류층조차 중국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득권층의 한국 탈출 행렬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그만큼 한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경유착, 부정부패, 갑질 등 그동안 한국 기득권층이 갖고 있던 많은 문제점이나,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 고착화와 같은 구조적 불합리를 고치려는 노력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기업의 윤리나 사회적 책임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점점 중요시되는 덕목이다. 하지만 무조건 가진 자를 적대시하거나,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경제와 안보를 망칠 위험성이 더 크다.

돈과 인재가 떠나는 나라에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 특히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기득권층까지 가세하면 나라는 무너진다. ‘남미병’의 전형적인 증세다. 더 늦기 전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치권은 물론 기업, 노동, 청년, 지식인계를 중심으로 한국이 지향하는 체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 한국의 미래는 자유민주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 제3의 체제인가. 문재인 정부의 지향점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기득권의 투정이나 매국적 행태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불안한 안보 상황에 더해 국가 정체성에 대한 확신마저 옅어지면 탈한국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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