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윤석남 ‘벗들의 초상’

  • 문화일보
  • 입력 2019-12-0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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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내가 말하고 싶은 모성(母性)은 아이 낳고 키우며 희생하는, 그런 범주의 것이 아니다. 물질문명으로 파괴되고 있는 자연의 힘을 복원하고, 사랑하고, 보듬는 힘을 뜻한다. 모순적인 우주의 삶 자체를 보듬을 수 있는 힘이 바로 모성이다.” 40세이던 1979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代母)’로 일컬어지기에 이른 윤석남(80) 화백의 말이다. “36세이던 때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고 있었는데, 항상 내 안에는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있었다. 난 가짜야, 그런 느낌.” 그래서 그는 시인 박두진에게 4년 동안 서예를 배웠으나, 더 강렬한 자아 표현 욕구를 좇아 그림으로 바꿔 공부하며 ‘역사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한국 여성의 모습을 화폭에 끌어내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1923년 개봉된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를 연출한 영화감독 윤백남이 아버지였던 그는 중국 만주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귀국했으나 1954년 아버지가 남긴 재산 없이 병사(病死)한 뒤로, 그는 간난신고(艱難辛苦) 속에서도 7남매를 자긍심까지 북돋우며 혼자 키워내는 전업주부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과 힘’을 지켜봤다. 그의 1982년 첫 개인전부터 작품 주제도, 모델도 ‘어머니’였던 배경이다. 1993년 두 번째 개인전도 ‘어머니의 눈’이었다. 버려진 나무를 이용한 설치 작품들로, 그는 “어머니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말하면서 어머니의 일생을 조명하고 싶었다”며 이렇게도 덧붙인 바 있다.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에서 주운 감나무 가지를 깨끗이 씻어 조각칼로 깎으면서 사람 피부의 감촉이 느껴졌다. 저고리와 치마를 그려 넣어, 작품 ‘허난설헌’을 만들었다. 내 최초의 나무 작업이다.” 쓰던 빨래판, 낡은 의자 등 나무판의 독특한 질감에 어머니들이 헤쳐온 삶의 흔적을 표현하는 식인 그의 설치 작품은 1996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특별전 ‘어머니의 이야기’로도 이어졌다.

이제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초청 전시회를 열며 작품도 소장하는 그의 화업 40주년을 맞아 ‘윤석남-벗들의 초상을 그리다’ 전이 서울 수송동 OCI미술관에서 지난 11월 7일 개막해 오는 21일까지 이어진다. 살아온 이야기를 언젠가는 초상화로 꼭 남기고 싶었다는 그의 친구들 초상화 22점과 자화상 60여 점, 설치 3점 앞에 서면 누구나 가슴이 뭉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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