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더 잘하려고 힘쓰면 망해… 골프도 사업도 욕심 금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승겸 대표가 지난달 30일 경기 평택시 산단로 ㈜유니테크 집무실에서 이글 패를 들고 당시 이글 상황을 들려주고 있다.

김승겸 ㈜유니테크 대표

‘사교 위한 골프’ 필요성 절감
40세 갓 넘은 1996년 입문
근력운동덕 230m 장타 자랑
베스트 79타… 홀인원은 없어

사업상 ‘기러기 생활’ 25년째
아내·두 아들과 자주 라운드
“결혼시켜 사돈과도 즐겼으면”

김승겸(63) ㈜유니테크 대표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만학도’다. 김 대표는 교수가 돼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기업경영 경험을 강의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기 평택시 산단로에 위치한 ㈜유니테크 집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강물을 끌어 정수장에서 사용하는 약품,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나오는 폐수에 첨가된 불화수소나 불소를 처리하는 약품, 자동차 강판이 내부식성이나 내마모성을 갖게 하는 철판용 코팅제 등 각종 화학제품을 연간 7000t 정도 생산한다. 김 대표는 포스코에서 직장생활을 한 뒤 화학 회사로 옮겼고 27년 전 독립했다. 사업이 커져 평택 본사 연구개발센터 외에 전남 여수에 제2공장을 지었고 중국 칭다오(靑島)에 있던 제조공장은 최근 베트남 하노이로 옮겼다. 김 대표는 “중국에서 철수하고 하노이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700개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김 대표는 1995년부터 이곳 평택 산업단지에 입주했다. 그 덕분에 25년째 ‘기러기생활’을 하고 있다. 평일이면 회사 근처 사택에서 머물다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 가족과 함께 지낸다. 그는 서울공대 CEO 과정에서 여러 CEO와 만나면서 골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퇴근 후 마땅히 소일거리가 없어 지역 내 CEO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김 대표는 골프를 알고 난 뒤엔 인근 골프연습장에 다녔다. 40세를 갓 넘은 1996년에 골프를 시작했고, 골프가 사교라는 생각에서 배웠다. 나이가 들수록 골프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스크린골프장에서도 자주 모임을 했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몸을 다친 적은 있지만, 골프를 하면서 입은 부상은 없었다.

오래전부터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력을 다진 덕분에 장타자란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다. 드라이버 비거리는 230m쯤 되고, 5번 아이언으로도 180m를 보내다 보니 우드를 거의 잡지 않는다. 요즘엔 80대 초·중반 스코어를 작성한다. 김 대표는 오전에 근력운동을 하고 나면 드라이버 정확도가 확연히 떨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김 대표는 “가끔 골프에서 뜻하지 않은 운 덕분에 웃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오르막 지형의 포대 그린이 있던 파 4홀에서 경험했던 일. 흘러내린 공 앞에서 세 번째 샷을 쳤지만 토핑이 됐다. 그린을 훌쩍 넘어간 줄 알고 그린에 올라갔더니 공은 뜻밖에도 홀에 있었다. 그린 경사가 심해 이동하는 사이 굴러 내려와 행운의 버디를 안았던 것. 그는 “골프란 기대를 하고 가면 더 망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기대가 클수록 힘이 더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사교를 위해 대개 편안한 사람과 라운드했고, 이럴 땐 스코어가 좋았다. 하지만 처음 동반하는 사람과 라운드하면 더 잘 치려다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뭔가 보여주려다 보니 힘이 들어갔기 때문. 부드럽게 쳐야 하는데 마음의 컨트롤이 덜 됐던 결과였다. 그래서 그는 ‘골프는 사업과 같다’고 생각한다. 욕심내서는 안 될 일이 많다. 전반에 잘 치다가 후반에 기록 달성 욕심을 내다 무너지곤 했다.

김 대표는 “골프와 기업운영은 욕심내지 않아야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절박함은 기업 운영이 조금 더 크다”며 “골프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기에 ‘싱글’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8년 전 처음 경기 용인시 파인크리크 골프장에서 79타를 친 게 김 대표의 베스트 스코어다. 이곳은 페어웨이 중간마다 벙커가 많기로 소문난 곳으로, 다른 골프장보다 평균 5∼6타는 더 나오는 어려운 코스다. 김 대표는 경기 안성의 마에스트로CC에서 이글을 두 차례 경험했지만, 홀인원과는 아직 인연을 맺지 못했다. 김 대표는 지역 내 기업가인 친분이 두터운 골프친구와 몇 년 전 홀인원 내기를 걸었다. 모두 홀인원이 없기에 먼저 홀인원을 한 사람에게 1000만 원을 주기로 한 것. 그는 “아직은 골프에서 할 게 더 많지만 홀인원 행운만큼은 하루빨리 안고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다. 요즘 주말이면 아내와도 자주 골프장을 찾는다. 가끔 두 아들과도 팀을 이룬다. 아내는 김 대표보다 골프를 늦게 시작했지만 열성적이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자녀들을 키우느라 전업주부로 지낸 아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김 대표는 “두 아들이 결혼하면 사돈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리고 싶다”면서 “사돈과 함께 골프를 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사업이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요즘엔 주 2회 정도 골프모임에 나간다. 몇 해 전 부침이 있을 때마다 하나씩 사뒀던 드라이버 3개를 차에 넣어 두고 당일 컨디션에 따라 하나를 고른다. 이 때문에 간혹 위험한 코스에서 엉뚱한 곳으로 티샷이 가는 경우도 흔하다.

김 대표는 “문득 내가 가진 노하우나 경험을 많은 CEO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만학도로서 어려움은 많지만, 주 2일 정도 늦은 밤까지 40년 차이가 나는 젊은 학생들과 공부하는 게 즐겁고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이론을 배우면서 몰랐던 부분을 깨닫는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평택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