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과학은 자유시장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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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 경제산업부 부장

최근 과학기자협회 송년회에서 올해의 과학자 3명이 상 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훌륭한 후보 중에서 과학기자들이 1년간 우리 과학계를 대표할 만한 연구자로 추천한 소수만 수상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진심으로 축하했고 탈락한 과학자도 섭섭해 하지 않았다. 과학동네에서는 우수한 아이디어가 더 많은 동료의 추천을 받는 일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교육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월성(秀越性) 공표 금지의 이상한 풍경과는 대조된다. 그 전 주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2019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CR)’ 발표가 있었다. 논문 피인용 횟수가 가장 많은 상위 1%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를 공개하는 연례행사다. 올해 중국이 영국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처음 올랐는데, 한국은 전년 18위에서 19위로 떨어졌다. 2017년 15위에서 네 계단이나 미끄러진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8년 말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 4곳에 블라인드 채용지침을 내렸다. 이 탓에 카이스트는 올해 문을 연 인공지능 대학원 교수 채용 때 출신 대학, 지도교수 등 학력과 인적 사항도 모른 채 선발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부터 전 정권의 채용 비리를 근절하고 공정성을 기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깜깜이 선발의 절정이다. 지원서류 가리기의 이면에는 선발자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사람을 못 믿으니 기계 면접이 판을 친다. 하지만 인공지능 알고리즘에도 편견이 숨어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끝이 없다. 아무리 공정한 제도를 설계해도 불신에 기초한 장막 치기는 오히려 어둠을 불러온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커튼을 젖히고 밝은 빛 아래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사상의 자유시장’이라 한다.

과학자들은 세 가지 방법으로 연구 성과를 검증받는다. 첫째, 동료 평가다. 동료 학자 논문에서 많이 인용된 논문은 그만큼 새로운 과학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보증이 된다. 피인용 횟수가 많다고 해서 동료들이 칭찬만 하는 건 아니다. 틀렸음을 입증하려고 눈에 불을 켠다. 반박에 재반박이 이어진다. 이런 경쟁과정에서 개인 저자의 편견은 자연스레 걸러진다. 투명한 경쟁은 가장 좋은 협력의 시작이다. 바로 선의의 경쟁이다. 둘째, 논문심사와 학술지 게재다. 그 분야의 권위 있는 원로에게 평가받는다. 선배 평가는 신뢰공동체의 증표이다. 위 세대의 성취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신사회에선 불가능하다. 셋째는 재현(replication)이다. 논문에서 주장한 이론과 실험을 따라가면 다른 학자가 해도 같은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시공을 초월한 진리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세 관문을 통과해 불변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탐험가들이 과학자다. 인공지능 과학자를 블라인드 면접으로 뽑는다고? 이 정부가 말하는 공정의 가치는 무엇인가. ‘경쟁은 나쁜 것’이란 도식이 평등의 이름으로 진리를 억압하는 건 아닌가. 우수함이 우수하게 드러나고 그 투명성을 바탕으로 전체 무리의 번영을 도모하는 게 자연과학, 아니 자연의 이치 아니던가. 자유경쟁을 통한 최적화는 인공지능의 원리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정부 만들겠다고 다짐한 분은 과학책을 좀 더 읽어보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