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블랙박스’ 포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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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45억 년이 넘는 지구의 비밀을 밝히는 일은 광물학·퇴적학·고생물학·광상학 등 지질학자들의 몫이다. 지질학자들은 탄소연대 측정법과 방사성 물질의 양 및 반감기 등을 통해 지각 변동과 화산 폭발 시기는 물론 지구의 구성 물질과 형성 과정, 과거에 생존했던 생물 등에 관한 비밀을 알아낸다. 그런가 하면, 수목의 연륜연대학자들은 나무의 나이테, 곧 연륜(年輪)을 통해 여러 가지 사실(史實)을 구명한다. 나이테라고 해서 단순히 자란 햇수만 기록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이테가 촘촘하게 달라붙어 있으면 그 무렵에 가뭄이 심했고, 넓은 테가 연속되면 홍수를 겪었다는 뜻이다. 나이테는 나무의 비밀을 담은 블랙박스다.

지층의 구조나 암석의 성분, 또는 식물의 연륜보다 더 짧은, 몇 년에서 수십 년의 연대기는 동물에게서 얻을 수 있다. 특히, 물고기의 나이테는 등지느러미뼈와 귓돌(耳石·이석), 비늘에서 찾을 수 있다. 잉어나 멸치, 조피볼락 등 살아 있는 물고기의 한평생 이력은 등지느러미뼈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칼슘과 단백질이 주성분인 물고기의 귓돌도 출생 연월일과 수온 같은 물속 정보들을 담은 블랙박스다. 예전에는 비늘의 무늬로써 그 물고기의 나이를 추정했으나 부정확했다. 그래서 오늘날 생태학자들은 이사(耳沙)라고도 하는 귓돌에 새겨진 성장선에서 그 비밀을 캐낸다.

검찰이 지난 2일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압수한 수사관 A 씨의 휴대전화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물증 아이폰을 두고 검·경 간의 다툼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는 잠금장치를 푸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의 손전화는 청와대의 ‘6·13 지방선거 개입’ 여부를 말해줄 결정적 증거물이다. 현재로써는 시간의 문제일 뿐 암호 해독은 가능하다고 한다. 검찰 출두를 앞두고 고인이 된 A 수사관은 유서에서 ‘내 휴대폰을 초기화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한다. 비록 자신은 운명의 종언을 고하지만, 진실만은 파묻히지 않게 해 달라는 뜻일 것이다. CCTV와 PC, 휴대전화 등 ‘인간 블랙박스’에 대한 포렌식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 범법자를 법정에 세워야 하는 검찰의 어깨가 무겁다.

포렌식 수사의 창시자 프랑스의 에드몽 로카르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고 했다. 그의 명언처럼 사건은 흔적을 남기고 흔적엔 비밀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