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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11일(水)
공전궤도 변하고 충돌로 분리되고… 영원불변한 ‘행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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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바타의 첫 장면. 배경의 거대한 행성은 따뜻한 목성형 행성 폴리페모스이고, 가운데 지구를 닮은 천체가 드라마의 무대인 판도라 위성이다. 자료사진

■ 우주과학사

이관수의 멀티버스 - ④ 행성의 비밀

금성의 역방향 자전·지구서 분리된 달… 태양계 초기 충돌과 변화의 흔적들
‘뜨거운 목성’ 발견으로 행성의 궤도 이주 확인… 우주는 언제나 상상 이상의 공간


2019년 노벨 물리학상의 절반은 1995년 한 외계 행성을 탐지한 미셸 마요르와 디디에 쿠엘로에게 돌아갔다. 외계 행성 최초 확인은 1992년에 다른 팀이 해냈는데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은 투표로 명왕성을 행성 목록에서 제외했다. 과학은 다수결이 아니라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 30여 년간 행성에 대한 이해는 여러 측면에서 크게 달라졌다. 이 격류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명왕성 퇴출은 격류가 튀긴 작은 물방울인 셈이다. 먼 조상들이 품었던 행성 개념, 즉 뭔가 우주적으로 중요한, 소수의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은 완전히 무너졌다. 행성은 별 주변에서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무수히 많은 물체 중 ‘조금 큰 부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행성의 정의가 달라졌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무엇이 행성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대략의 기준을 제대로 의논한 것은 2006년 국제천문연맹 총회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머나먼 고대부터 2006년까지 ‘행성’이란 명찰은 관례와 상황에 따라 적당히 붙였다 뗐다 하는 것이었다.

몇 천 년 전부터 고대인들은 밤하늘의 배경 별들에 비해 위치가 자꾸 달라지는 ‘별’들을 특별하게 여겼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행성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 planetes는 움직인다, 방랑한다는 뜻에서 나온 명칭이었다. 17세기 초 천체망원경 발명 이후 목성과 토성의 위성들을 발견한, 갈릴레오 갈릴레이,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조반니 카시니는 자신들이 행성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움직이는 ‘별’을 모두 행성이라고 부른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서야 행성과 위성이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여전히 측정값은 불분명했지만 목성과 토성 근처에서 새로 발견된 행성들은 아무래도 꽤 작았다. 개수도 목성에서 4개, 토성에서 5개 등 모두 9개로 오행성의 5개보다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일찍이 요하네스 케플러가 던진 제안이 다시 주목받았다. 케플러는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 주변의 행성들이 목성을 따라다니니 수행원 행성(satellite planet)이라고 부르자고 했었다. 갈릴레오는 이 제안을 무시했지만 18세기 천문학자들은 새로 발견한 행성들을 수행원 행성이라고 길게 부르다가 점차 위성(satellite)으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행성은 수·금·지·화·목·토 6개로 개수가 줄었다. 일반교양 수준에서는 19세기 말에야 행성과 위성의 구별이 확실해졌다. 그때까지는 수행원 행성 또는 2차 행성(secondary planet)이란 용어가 대중 교양서에 남아 있었다(요즘에는 이 말뜻도 달라지고 있다. 인공위성을 satellite로, 자연적 위성은 소문자 moon으로 표현하는 추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1781년 토성 바깥에서 천왕성이, 그리고 1801년부터 1807년에 걸쳐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행성 4개가 연달아 발견됐다.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의 개수는 11개로 늘었다. 1846년 천왕성 바깥에서 해왕성이 발견됐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는 1845년부터 1849년까지 6개가 더 발견됐다. 이들이 모두 태양을 공전하니 행성이라면 행성인데, 태양계 행성이 모두 18개라고 말하기에는 개수가 너무 많았다. 마침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발견된 10개는 서로 궤도도 비슷하고 크기도 작았다. 이런 점들을 빌미로 이심전심 천문학자들은 구별을 두기 시작했다. 즉 작고 몰려 있으면 소행성, 좀 무겁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으면 행성으로 나누기로 한 셈이다.

매년 다수의 소행성이 발견되면서도 행성은 8개뿐인 상황은 1930년까지 계속됐다. 그해 지름과 질량이 지구만 한 것으로 여겨지는 명왕성이 해왕성 너머에서 발견된 것이다. 해왕성 너머에 다른 물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크기도 적당하니 별 고민 없이 제9 행성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관측 정밀도가 올라갈수록 명왕성의 지름과 질량이 계속 쪼그라들었다. 질량 기준으로 1948년에는 화성 정도(지구의 10%), 1976년에는 지구의 1% 미만으로 추정됐다(최신값은 0.2%). 자연히 이렇게 가벼운 것도 행성일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소행성들처럼 명왕성 근처에 비슷한 것이 여럿 있으면 행성이 아니라고 하기 딱 좋았는데, 그러기에는 해왕성 너머에 다른 물체가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1980년대 말에 근 200년 만에 행성 형성 시나리오의 퍼즐 조각들이 들어맞기 시작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원시 성운에서 원시 태양이 만들어질 때 둘레에 납작한 원시 원반이 형성된다. 원반의 물질은 98% 정도가 수소와 헬륨 가스, 1.4%가 물이나 메탄, 암모니아 같은 수소화합물들, 0.4%가 암석 성분, 0.2%가 금속 성분들이다. 수소화합물이 얼어붙는 바깥에서는 암석과 금속 성분은 물론 수소화합물들까지 뭉쳐서 큰 목성형 행성들이 자라난다. 서리선 안쪽에서는 암석과 금속 성분이 고체화된 먼지들이 모여 작은 지구형 행성이 만들어진다. 소행성대에는 목성형 행성의 조석력(潮汐力) 때문에 물질들이 흩어져 기껏해야 작은 소행성들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해왕성 바깥에서는? 역시 목성형 행성들의 조석력 때문에 작은 것들만 가능할 것이었다. 1992년부터 명왕성 바깥에서 소행성급 천체들이 드문드문 발견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명왕성급 천체인 에리스도 발견됐다. 발견자는 제10 행성 후보로 밀었지만, 드디어 명왕성을 행성의 지위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고 희망을 품은 천문학자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 마요르와 쿠엘로가 발견한 페가수스자리 51 b는 큰 충격이었다. 엄마별인 페가수스자리 51 항성은 크기, 밝기, 온도 모두 태양과 흡사한 별이다. 그런데 발견된 행성의 궤도 반지름은 태양계 수성의 궤도 반지름의 8분의 1 정도로 엄마별에 바짝 붙어 있으면서도 질량은 지구의 150배로 목성의 절반, 토성의 1.5배가량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행성은 암석과 금속만으로는 재료가 부족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 하지만 목성형으로 거대하게 자라나려면 적어도 화성 너머 소행성대 바깥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200년 만에 맞아떨어진 행성 형성 시나리오가 틀린 것일까? 아니면 우주적 우연이 겹쳐 발생한 특이한 사례일까? 후속 발견들은 목성처럼 무겁고 수성보다 더 엄마별에 붙어 있는 ‘뜨거운 목성’들이 아주 흔하다고 확인했다.

모순의 원인을 찾던 천문학자들은 행성 형성 시나리오에서 너무나 자명한 원인을 간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용과 반작용 법칙. 목성형 행성들이 다른 물체들을 흩어 놓는다면, 그 반작용은 목성형 행성에 가해진다. 작은 물체 하나를 흩어 버리면 반작용은 무시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수히 많은 물체를 흩어버리면 반작용의 총합은 당연히 크다. 목성형 행성으로 거대하게 자라난 다음에도 그 여파를 무시할 수 없다면, 그렇게 자라나는 동안에는 어떨 것인가? 중력과 조석력, 작용과 반작용은 언제나 작동하니까 나름 큰 영향이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부터 거듭된 시뮬레이션들은 목성형 행성들이 성장하는 동안 궤도가 작아졌다 커졌다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뜨거운 목성들은 서리선 바깥에서 성장하다가 안쪽으로 들어온 것들이다. 궤도가 줄어들다가 아예 엄마별에 빠져 버려 사라진 것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엄마별에서 멀리 밀려나 아예 별과 별 사이를 떠돌게 된 떠돌이 행성들도 가능하다. 요즘 추정으로는 은하수 은하에는 별 하나당 1∼3개 정도의 떠돌이 행성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태양계의 목성과 토성은 안쪽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서리선 바깥으로 돌아간 경우다. 즉 행성들은 궤도를 바꾼다.


거대한 목성형 행성들이 궤도 이주하면 작은 물체들의 궤도는 당연히 엄청나게 교란당한다. 태양계에서는 지구형 행성들이 명왕성급 천체들에 대충돌당했다. 대충돌 때문에 수성은 원래 갖고 있던 암석의 3분의 2 정도를 잃었고, 금성은 역방향으로 자전하게 됐다. 지구의 달은 대충돌 때 튕겨 나간 물질들이 다시 뭉쳐서 형성된 위성이다. 화성 표면의 5분의 2 정도를 차지하는 화성의 ‘바다’는 금속핵이 일시적으로 노출될 정도로 심한 충돌을 겪은 흔적이다. 극초기 태양계는 극도로 역동적인 세계였다.

2006년의 투표는 행성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처음으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된 결과였다. 행성 궤도 이주의 맥락에서 직관적으로는 명왕성은 궤도 이주를 당한 물체인 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태양계 지구형 행성들과 목성형 행성들 모두 궤도가 바뀐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엄마별 주변에 형성되는 물체들이 겪은 다양한 과정들이 다 밝혀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투표가 진행됐다.

2009년 대히트한 영화 ‘아바타’에도 행성 궤도 이주가 담겨 있다. 대부분 관객은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지만, 영화의 무대인 판도라는 행성이 아니라 위성이었다. 판도라가 공전하는 행성 폴리페모스는 서리선 안쪽으로 들어와 고착된 따뜻한 목성이다. 위성인데도 풍부한 공기가 있을 수 있냐고? 태양계 토성의 위성 타이탄의 대기는 1.4기압이다. 서리선 바깥에서 수소화합물들이 대부분 얼어붙어 있는데도 그렇다. 만일 서리선 안쪽으로 들어와 수소화합물들이 기화된다면, 대기권에 훨씬 더 많은 기체 분자가 풀려나게 된다. 이미 공기에 버금가게 가벼운 실리콘 단열재 에어로겔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대기의 밀도가 높다면 공기에 뜨는 암석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바타의 설정에 딱 맞는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나름 개연성을 갖춘 셈이다.

행성들이 이렇게 격변을 겪는다면, 더 작은 물체들은? 2017년 뜻하지 않게 발견한 1I/2017 오무아무아나 지금 이 순간 지구에서 점차 멀어지는 2I/보리소프 같은 물체들은 외계 행성계에서 튕겨 나온 물체들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주는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과학사학자


■ 용어설명

서리선 : 태양의 열과 빛이 약해져서, 압력이 극도로 낮은 우주 공간에서도 수소화합물 등이 고체화하는 경계선. 얼음선으로도 부른다. 원시 태양계에서는 지금의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혜성이 서리선 안쪽으로 들어오면 수소화합물이 기화돼 코마(일시적인 혜성 대기)와 혜성 꼬리가 형성됐다가, 바깥으로 나가면 사라진다.

뜨거운 목성 : 서리선 바깥에서 형성된 목성형 행성이 모항성에 매우 가깝게 궤도 이주한 경우. 유사한 경우로 뜨거운 해왕성도 있다. 서리선 안쪽으로 궤도 이주했지만, 너무 뜨겁지 않으면 따뜻한 목성, 따뜻한 해왕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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