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중국에 해야 할 말도 못하는 文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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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연구센터장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5년 만에 한국을 다녀갔다.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발표한 2016년 7월 이후 중국은 한류나 한국 기업의 활동과 교류 등을 제한하는 ‘비공식적’인 한한령(限韓令)을 발동했고, 이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때 왕 부장의 방한으로 한한령의 실질적 해제와 경색된 양국 관계의 돌파구가 되길 바랐다. 또, 2014년 7월 이후 방한을 미루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을 추진해 복원된 북·중 관계에 대한 균형추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왕 부장의 방한은 상징적 의미 이상의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엔 크게 부족했다. 왕 부장의 방한 목적은 복합적이다. 표면적으로는 경제 교류·우호·신뢰 등을 강조했지만, 한국이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고, 미국과는 방위비 협상 문제로 곤경에 처해 있으며, 북한은 연일 ‘새로운 길’을 강조하면서 비핵화 협상 궤도를 이탈해 남북 대화도 실종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곤경에 처해 있는 한국 상황은, 중국으로서는 한·미·일 삼각 안보 구조의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적어도 ‘중립화’하면서 영향력을 배가할 수 있는 적기이다.

왕 부장은 3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이번 방문의 목적이 군사적 의제를 강하게 포함하는 의미의 ‘전략적 소통’임을 밝히면서 ‘사드 문제의 적절한 처리’를 강조했다. 이는 5월 7일 국회의장 방중과 6월 27일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언급됐고, 올해 중국 국방백서에도 ‘미군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것은 아·태 지역의 전략 균형과 안보 이익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등 입장 변화가 없음을 확고히 하고 있다.

또, 한·중 양국 간 서로의 핵심 이익과 정당한 관심사를 존중해야 함을 강조해 기존의 대(對)한반도 전략에 변화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게다가 일방주의·패권주의가 세계 안정과 평화의 최대 위협 요인이라며 미국을 겨냥한 발언을 계속하면서 한국이 미국의 편에 서지 말 것을 실질적으로 주문했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 간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파기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거리 미사일의 괌과 일본·한국 배치 가능성을 천명하자, 사드 문제도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향후 한·미 협력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은 2017년 10월 31일, 이른바 한·중 사드 ‘소통’에서 한국이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MD) 시스템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不) 원칙을 약속했음을 이유로 든다.

문제는, 이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는데도 중국은 사드 합의가 무색하게 민간 부문의 자발적 행동이라는 이유로 ‘한한령’에 대한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 자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참여를 강조하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에 제동을 걸어 결국 북한뿐 아니라 한국도 자국 영향권으로 경사시키겠다는 메시지까지 보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왕 부장의 발언 언간에 중국의 의도가 명확히 나타나는데도 우리의 적절한 대응이 실종됐다는 데 있다. 사드 발언이나 그 이상의 논의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 양국 외교부의 발표문에 다르게 나타나거나, 우리의 기대대로 발언을 해석하는 우를 계속 범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을 겨냥해 강조하는 ‘자신의 힘만 믿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은 한·중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원칙을 세우고 분명한 의견을 강력히 제시해야 한국의 전략 가치도 제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