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경제 허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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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논설위원

엄중한 상황에서의 말 한마디는 역경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흉기가 될 때도 있다. 국민 사이에서 “견디고 버텼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2019년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은 다르다.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아 지난 5월 9일 KBS와 가진 대담에서 한 말이다. 올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으로 떨어진 직후에 나온 발언이다.

올해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국내외 전망이 쏟아지던 10월 16일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 ‘정신 승리’라는 촌평을 받기도 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8월 15일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이 “남북 평화경제 실현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선언은 또 다른 충격을 줬다. 김기림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는 호소는 이후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로 바뀌어 비판받는 빌미가 됐다. 사실을 아전인수로 해석해 말하고, 그런 왜곡을 다시 진실이라고 스스로 확신하게 되는 현상을 심리학에선 공상허언증(mythomania)이라고 한다.

한국경제를 향한 해외의 경고도 유난히 많았다. 특히 블룸버그 통신의 아시아 경제 담당 칼럼니스트 슐리 렌이 지난 7월 18일 자 칼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사회주의 실험(socialist experiments)이, 한때 활기가 넘쳤던 한국경제의 야성(animal spirits)을 앗아갔다”는 일침은 너무 통렬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9월 18일 ‘2019년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서 쏟아낸 “우리 경제는 버려지고 잊어진 자식이 된 것 같다”는 하소연은 2019년을 힘들게 버틴 기업 현실을 대변한다. 이런 와중에 “재정을 쌓아두기만 하면 썩는다”는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의 11월 11일 인터뷰도 역대급 발언으로 꼽힌다. 특히, 퍼주기식 재정정책으로 올 1∼3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액이 무려 57조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발표 직후 나온 이 같은 발언으로 인해 ‘국민 등골 브레이커 정권’이란 원성을 들어야 했다. 2019년, 남은 20일 동안 한국경제에 희망의 불씨라도 살릴 수 있는 말을 들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