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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13일(金)
흥망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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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성균관대 명예교수·유교철학

한국인들의 사랑은 희생
한강의 기적으로 나타나

화합 땐 기적, 분열 땐 멸망
지금 흥망 갈림길에 있어

우리 모두 하나임을 알고
희생과 용서하는 자세를


우리나라 대한민국. 참으로 기이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글자를 단숨에 만들어낸 유일한 나라다. 좁은 국토에서 자원도 없으면서 남의 나라를 침략해 빼앗지도 않았고,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삼지도 않았으면서 단숨에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유일한 나라다. 우리의 가수가 우리의 가사로 부른 노래가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한 유일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10개 중 7개가 있을 정도로 기독교가 가장 왕성한 나라이면서, 마르크스 이론을 가진 좌파 세력이 가장 극렬한 나라다. 이런 현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무의 가지와 잎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의 근본 원인은 뿌리에 있다. 뿌리를 알고 뿌리에서 보면 가지와 잎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의 뿌리는 단군 할아버지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옛 경전인 ‘천부경’은 일시무시(一始無始)로 시작한다. 하나에서 시작하지만, 시작함이 없다는 뜻이다. 호수에 떠 있는 많은 얼음덩어리는 눈에는 덩어리로 보이지만, 본질에서 보면 여전히 물이다. 물이라는 것을 알아서 물의 차원에서 보면 호수에 얼음덩어리가 많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물 하나만 가득하다. 아무리 얼음이 얼기 시작해도 시작한 것이 없고, 아무리 많은 얼음덩어리가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에는 모든 물체의 본질인 기(氣)라는 물질이 빈틈없이 있다. 그 기가 뭉쳐져 모양을 갖춘 것이 만물이다. 그러므로 본질에서 보면 아무리 많은 만물이 만들어져도 만들어진 게 없다.

우리 한국인은 태고 때부터 본질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다. 얼음덩어리들이 녹는 것은 없어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질에서 보면 얼기 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죽는 것을 ‘돌아가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일본인들이 죽는 것을 ‘없어지는 것’으로 표현하고, 미국인들이 ‘멀리 사라지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과 대조된다.

얼음덩어리를 물로 본다면 아무리 작은 얼음덩어리라도 무한한 물 그 자체이므로 작은 것이 아니다. 천부경에는 ‘사람이 하늘과 땅 가운데 있지만 여전히 하나’라는 설명이 있다. 나는 작은 존재다. 지구에서 보면 70억 분의 1에 해당하는 존재고, 우주에서 보면 점도 찍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작아 보여도, 본질에서 보면 하늘 그 자체고 우주 그 자체다. 그러므로 하늘을 품은 ‘나’고 우주를 품은 ‘나’다. 우리의 정원에 있는 연못은 땅을 상징하는 네모로 되어 있고 그 안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이 있다. 이는 하늘 품은 땅을 의미한다. 드라마 제목 중에 ‘해를 품은 달’도 있었고, ‘별에서 온 그대’라는 것도 있었다.

본질에서 보면 만물이 모두 하나고 사람이 모두 하늘이다. 이것이 한국의 인내천 사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나가 되면 하늘이 된다. 하늘은 어떤 기적도 일으킬 수 있다. 한국인들이 기적을 잘 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열두 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왜선을 무찌른 것도 병사들이 하나가 돼 일으킨 기적이고, 월드컵에서 세계 4강까지 간 것도 감독과 선수가 하나가 됐기 때문에 일으킨 기적이다.

하나가 되면 희생을 한다. 한강의 기적은 하나가 돼 희생한 대가로 이뤄낸 것이다. 누나들이 공장에서 모진 고생을 하면서 동생들을 공부시켰고, 형들이 먼 외국 땅에 가서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조국에 돈을 보냈다. 회사원들이 회사를 위해 조건 없이 일했고, 사장들은 사원들을 가족처럼 돌봤다. 한강의 기적은 이런 희생들이 일궈낸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희생정신이 문화예술 분야에서 발휘된다.

한국인들의 사랑은 하나 되는 사랑이다. 하나 되는 사랑은 희생하는 사랑이다. 가난한 집 딸이 부잣집의 아들을 사랑하면 영락없이 아들의 엄마가 나타나 말을 한다. “너 그 남자를 사랑하니?” “예.” “그럼 그 남자의 행복을 바라겠네?” “네. 그 남자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 남자는 너와 결혼하면 불행해진다. 그 남자는 큰살림을 살아야 되거든. 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가난한 집 딸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쌀쌀맞게 정떨어지는 소리를 하고 사라진다. 영문도 모르는 그 남자는 밤새 술을 마시고 온종일 찾아다닌다. 이런 희생적인 사랑에 외로워진 세상 사람들이 열광한다. 오늘날 한국의 문화예술이 세상을 움직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인내천 사상에서 보면 나는 본래 하늘이다. 본래 하늘인 내가 지금처럼 초라하게 살면 한이 맺혀 견디지 못한다. 한국문화에 한풀이문화가 깔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풀이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내가 하늘을 만나는 것이고 하늘처럼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로 인해 한국에 종교가 발달한다. 우리나라의 하나 사상에서는 ‘너=나’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이 등식이 잘못 적용되면 네가 나이므로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으로 왜곡된다. 네 돈이 내 돈인데 너는 돈이 많고 나는 돈이 없다면 배가 아프고, 한이 맺힌다. 배고픈 것은 견뎌도 배 아픈 것은 견디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우리들의 배 아픈 심리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푸는 해법을 찾기 위해 우리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빨리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희생하며 용서하고 화합해야 한다. 우리가 화합하면 기적을 일으키지만, 우리가 분열하면 멸망한다. 우리는 지금 흥망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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