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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16일(月)
직접 세운 연구소만 70곳… 입버릇처럼 “인재를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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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그룹 2대 회장을 지낸 구자경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구 명예회장이 여생을 보낸 천안 농장을 바라보고 있다. 작은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구 명예회장이 1970년 제2대 럭키금성 회장으로 취임한 모습, 생산 현장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198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제18대 회장으로 취임한 뒤 전임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현역에서 은퇴한 뒤 버섯 재배 연구를 하는 모습. LG 제공

■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타계… 그가 남긴 5가지 가치

② 민간 첫 기업공개 ‘정도경영’
③ 현지법인 50개‘답은 해외에’
④ 70세 되던 해‘아름다운 퇴진’
⑤ 은퇴 뒤엔 농부로‘검소한 삶’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발자취는 ‘정도(正道)경영’과 ‘인화’로 요약된다. 그는 LG가 외형 성장뿐만 아니라 선진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투명경영의 기준을 세웠다. 평생 기술개발과 인재양성에도 천착했다. 구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국토는 작지만 기술경쟁력이 뛰어난 나라)’이란 경영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사람과 기술에 대한 그의 투자는 한국 전자·화학 산업의 기틀을 닦는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 ‘글로벌 LG’의 초석을 다진 구 명예회장이 강조한 5대 가치가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인재를 키워라= 구 명예회장은 “연구·개발(R&D)이 기업 성장의 요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가장 애정을 쏟았던 분야도 R&D다. 1970년 LG그룹(당시 럭키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며 R&D 활동을 전폭 지원했다. 당시 제조에 급급했던 한국 산업계는 R&D 투자에 별반 관심을 쏟지 않았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대 럭키 울산공장과 여천공장에는 가동을 하기 전에 연구실부터 만들었다. 1976년 국내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금성사에 전사적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재임 기간 동안 설립된 연구소만 70여 개다. 그 결과 LG는 국내 최초로 19인치 컬러TV, 공랭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영상 카세트 녹화기(VCR), 프로젝션 TV, CD 플레이어를 개발했다. LG 인재육성의 요람인 ‘인화원’도 개원했다.

◇한발 앞선 정도경영= 1970년 2월 LG그룹 모체인 락희화학은 민간 기업 최초로 기업공개를 통해 증시에 상장했다. 곧이어 전자업계 최초로 금성사의 기업공개도 진행했다. 당시만 해도 기업공개는 기업을 팔아넘기는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반대가 극심했다. 그는 “기업공개는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자 선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 코스가 될 것”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LG는 한국 최초로 주력사를 모두 기업 공개한 그룹이 됐다. 총수 권한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겨 자율경영 체제의 기반도 닦았다. 1988년 ‘자율경영’을 선포해 수직적 리더십에서 탈피해 계열사 사장들에게 사업 전권을 위임하고 그룹 경영의 대원칙으로 제시했다.

◇해외에서 답을 찾아라= 구 명예회장은 해외 진출 1세대다. 재임 기간에 해외 법인 50여 개를 세웠다. 1982년 미국 앨라배마에 세운 컬러TV 공장은 국내 기업 최초의 해외 생산기지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한국 기업이 미국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독일 지멘스와 금성통신의 합작에서 선진기술을 배웠고 일본 히타치, 미국 AT&T, 칼텍스 등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합작경영을 했다.

◇검소한 삶=그는 20년간 공장에서 기름밥을 먹으며 부친인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에게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흙먼지와 기름이 묻어 있던 야전 점퍼를 입고 다니던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현장 근로자였다. 회장에 오른 후에도 늘 검소하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20년 된 카디건과 뿔테 안경은 그의 상징이다. 신발을 선물 받으면 손님맞이용으로만 썼다. 작은 사무실에는 옛 식당에서나 볼 법한 탁자가 놓여 있을 정도로 절약이 몸에 뱄다. 장남인 구본무 회장(2018년 별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후에는 충남 천안 연암대 농장에서 버섯을 키우고 된장을 연구하는 ‘농부’로 여생을 보냈다.

◇떠날 때를 아는 지혜=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월 스스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국내 대기업 최초의 ‘무고(無故·아무런 사고 없음) 승계’였다. 창업세대 원로 회장단도 동반 퇴진했다. 새로 취임하는 회장과 젊은 경영진이 소신 있게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3대에 걸쳐 57년간 이어진 구 씨와 허 씨(GS그룹) 일가의 동업도 아름다운 이별로 마무리했다. 계열 분리는 구본무 전 회장 때 이뤄졌지만 집안 큰 어른 격이었던 구 명예회장이 동업 관계 정리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가 ‘인화’를 철저히 지키고 상호 신뢰로 사업을 이끌어왔기에 가능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mail 권도경 기자 / 경제산업부 / 차장 권도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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