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대우재단 학술총서 672권

  • 문화일보
  • 입력 2019-12-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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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오늘 12월 19일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생일이다. 생일을 열흘 앞두고 지난 9일 타계한 그의 공적(公的) 생애는 거대했다.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우리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가 누구나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 연명 치료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니, 거인답게 마무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부 기자 시각에서 볼 때 김 전 회장의 생애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사업가인 그가 당대의 빼어난 학자들과 교우했다는 것이다. 광복군 출신 사학자인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총장은 ‘고사 총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역대 정권의 관직 제의를 10여 차례 사양했고, 특히 노태우 정부가 제안한 국무총리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1988년 대우재단 지원을 받는 사회과학원 창립 이사장을 맡았다. 김 전 회장이 사재를 들여 대우재단을 만들어 기초학술 발전을 후원하는 것에 신뢰가 있었던 까닭이다.

사회과학원은 학문적 교조주의를 벗어나 실용적 이슈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김 전 총장은 대우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인연을 지속하며 2011년 타계 때까지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정치, 경제 상황 탓에 관계가 굴절할 위기가 있었음에도 신의를 지킨 것이다.

요즘 강연과 방송 등에서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 김용옥 씨도 김 전 회장과 교우했다. 1990년대 세계 각국을 함께 다니며 나눈 대화 내용을 책으로 내며 기업가 정신을 극찬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김 전 회장 상가에 조문하지 않았다. 조의를 표했다는 소식도 없다. 이런저런 사안에 거침없이 발언하는 그가 김 전 회장 타계엔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 정서상 아쉬운 대목이다.

김 씨의 친형인 화학자 김용준 선생도 김 전 회장과 인연이 있다. 김용준은 김 씨가 “종교와 철학과 과학 사이에 다리를 놓은 한국 최초의 사상가”라고 칭했던 인물이다. 대우재단이 설립한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을 수년간 맡아 학술서 발간 및 연구지원 사업에 힘을 쏟았다.

대우재단은 김 전 회장이 1978년부터 두 차례 250억 원을 출연해 만들었다. 청년 장학, 낙도 의료복지, 문화예술 후원 사업을 펼쳐왔다. 기초학술 연구와 저서 발간을 지원한 것은,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단연 빛나는 대목이다. 대우총서라는 이름으로 학술서적이 672권 나왔다. 학계는 이 책 한 권 한 권이 보물처럼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우재단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바람직한 모델이다. 따져보니, 김 전 회장이 이 재단을 만들 때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다. 사업에 열중하던 시기에 그런 뜻을 펼친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였다. 김 전 회장은 말년에 자신의 생일이 되면 대우 전직 사우들을 만났는데, 그때마다 청년사업가 양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후세대 길을 환하게 열어주고 싶은 열망을 생애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업 방식을 비판하는 이들도 그 꿈만큼은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대우재단은 그룹이 해체된 2000년 이후에도 보유자산 매각 등으로 재원을 확보해 사업을 이어왔다. 재정 후원자가 없는 독립재단이니 안정적 사업 추진이 쉽지 않겠으나, 그 아름다운 뜻이 지속되길 바란다.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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