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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19일(木)
‘휘핑보이(대통령 대신 매 맞는 小人)’ 전락하는 전직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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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경희대 교수·정치학 시장경제와민주주의硏 이사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차기 국무총리에 지명했다. 이는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그 전례가 없는 것으로, 참으로 부적절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장이고 군대의 최고사령관이다. 일정한 임기로 선출된다는 점만 다를 뿐 왕이나 진배없다. 이 선출된 왕은 언제라도 독재자로 돌변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의 이 같은 타락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있다. 연방제와 같은 수직적인 분권도 그중 하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을 통한 수평적 분권이다. 쇠솥의 세 발처럼 이 세 권력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안전장치다.

전임 국회의장을 총리로 기용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쇠솥의 한 발을 잘라내 급기야는 쓰러지게 할 위험한 행위다. 적어도, 헌법상 대통령과 대등한 지위에 있던 국회의장이 대통령의 매를 대신 맞는 사람(whipping boy)으로 전락하면 국회의 위상과 위신은 더 할 수 없이 크게 손상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에 행정부의 시녀 격이 된 국회가 어떻게 대등한 위치에서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더는 균형도, 견제도 없게 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위험을 문 대통령 자신도 분명히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입법부 수장을 지내신 분을 국무총리로 모시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시지 않았어야 옳다. 왜 알면서도 그랬을까? 삼권분립이 귀찮다는 뜻인가?

이런 심각한 문제에 비하면 대통령이 언급하는 정 전 의장의 장점들은 모두 빛이 바랜다. 실물경제를 잘 안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실물경제를 잘 아는 사람은 전국에 널리고 널렸다. 총리로 지명된 사람의 인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민주주의의 가치와 바꿀 만큼은 아니다.

게다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거명되던 김진표 의원이 배제된 것이 참여연대 등 진보 진영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의원과 달리 지명자가 이들의 ‘검증’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지명자가 또 하나의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임을 확인시킬 뿐이다. 대통령은 통합과 화합을 내세우지만, 지금껏 그것을 해쳐온 게 캠코더 인사임을 생각하면 그 자체로 부적격이다. 진영의 결속이 국민의 화합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새로운 인선에 나서야 한다.

총리직을 수락하는 과정에서 정 전 의장도 몇 차례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도 국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겠다고 나선 충정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행정부 공무원인 국무총리직을 맡는 것은 사실상 국회를 대통령의 하위 기관으로 만드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라의 민주주의 틀이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 전 의장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만약 이대로 임명 절차가 강행되는 경우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막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지명자 개인의 인물됨이나 당파의 이해득실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 위상과 위신에 관한 문제이고 우리나라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국회의원들 스스로 국회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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