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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20일(金)
고요한 밤 거룩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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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스님 남해 염불암 주지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라는 것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마음 바꾸면 삶이 달라짐을…
우리는 별 대신 진흙만 볼 뿐

시차 적응하느라 잠 못드는 밤
나에게는 발원과 창작의 시간


다른 시간 속의 나라를 다녀왔다. 14시간의 시차가 나는 미국. 이 글을 쓰는 오늘은 한국에 돌아온 첫날 밤이다. 시차 때문에 잠을 못 잘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괜찮을 거라고 했다. 워낙 잠을 잘 자는 편이라 시차에 걸리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자리에 누우니 눈만 선명하게 떠지고 잠은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웃었다. 그 많았던 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깊은 밤인데도 잠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긴 이 시간이면 뉴욕은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 아니던가. 어제만 해도 이 시간에는 뉴욕의 거리를 걷고 손안의 지도를 보며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찾아다니던 시간이었다. 뉴욕에서의 보름간 삶이 내 평생을 익혀온 잠자는 시간을 이렇게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육신이 지켜오던 습관이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 습관이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은 어떻게 우리에게 진리처럼 인식될 수 있었을까. 잠 못 드는 밤에 그 말은 그다지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견고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습관에 갇혀 살아가므로 스스로 그렇게 규정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브라이언 뱅크스’라는 영화였는데, 가슴에 남는 장면과 대사들이 있어 두 번을 연이어 보았다. 브라이언은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였다. 그는 강간하지 않았는데 강간죄로 복역하게 된다. 그는 감옥에서 한 명상가의 강의를 듣게 된다.

“똑같이 감옥의 창밖을 내다봐도 어떤 사람은 진흙을 보고 또 다른 사람은 하늘의 별을 본다. 이것은 삶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다. 우리 삶에서 유일하게 통제가 가능한 것은 삶을 대하는 방식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의 시작과 끝은 마음에 있다. 여러분의 마음을 찾아라. 그러면 모두 자기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삶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바꿈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사실 어떠한 불행이나 고난도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문제일 뿐이다. ‘법구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되며 마음이 주인이 되어 마음이 시키나니 마음으로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이 곧 악하게 되어 허물과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마치 수레의 자국이 수레바퀴 뒤에 남듯이.’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마음을 바꾸면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또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마음을 바꾸기보다는 언제나 대상 세계를 바꾸려고만 노력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별 대신 진흙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는 브라이언의 어깨를 잡으며 말한다.

“너는 미식축구 선수가 되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몸이 감옥을 떠나기 전 정신이 먼저 떠나지 않으면 너는 언제나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네가 어떤 짐을 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짐을 전부 내려놔. 아니면 너는 그 짐 때문에 가라앉고야 말 거야.”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그 이루지 못한 꿈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이루어야 할 꿈에는 희망이 자리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에는 절망이 자리한다. 이루지 못한 꿈의 무게로 사람들은 열등감에 젖고 절망하고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이루지 못한 꿈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이루지 못한 꿈은 이미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 꿈을 안고 산다. 그것은 마치 삼을 지고 가다가 금을 발견해도 지고 온 삼이 아까워 삼을 버리지 못하는 담마기금(擔麻棄金)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도 같다.

잠이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 나에게는 단잠이라는 꿈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단잠이라는 꿈을 버린다. 대신 뒤척이지 않고 앉아서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일생을 장좌불와(長坐不臥) 하셨던 은사 스님을 떠올린다. 스님은 주무시며 살지 않으셨다. 그의 일생은 잠이 없는 일생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스님의 장좌불와에 대해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여쭈어보았다. “스님께서는 정말 주무시지 않습니까? 온 밤을 좌복에 앉아 새우십니까?” 스님은 잔잔히 웃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앉기보다 눕기가 어렵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게는 일주일도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해인사 학인 시절 안거 때마다 선원에 올라가 칠일 밤낮을 철야 정진했었다. 길이 흔들리고 몸이 흔들리는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스승은 마치 ‘잠깐’처럼 사셨던 거다. 스님의 모든 밤은 거룩하고 고요한 밤이었다. 그 마음이 일념(一念)이니 번뇌의 짐이 없어 고요하고, 보리수 아래 부처님처럼 그렇게 자리하고 앉았으니 그것은 또한 얼마나 거룩한가.

잠 못 드는 이에게 밤은 길고, 지친 나그네에게는 지척도 천 리다. 긴 밤이었다. 그러나 뒤척이지 않았다. 불면에 매이는 대신 글을 썼고 스승의 고요하고 거룩한 밤을 향해 발원했다. 내일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은 불면이지만 지금만 생각하면 이 시간은 발원과 창작의 시간이기도 하다. 불면은 대상이고 발원은 마음이다. 나는 기꺼이 마음의 시간을 택한다.

모든 생명의 평화를 위한 새벽 범종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새벽 예불을 나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별에까지 들릴 것만 같다. 이 깊은 고요가 산사의 새벽이다. 이 시간 속에서는 무엇이든 빛난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을 위한 발원들이 새벽 산사에 울려 퍼진다.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을 바쳐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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