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무늬만 혁신으로 유니콘 되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민종 경제산업부 부장

“벤처기술을 대학생이 만든 앱 정도로 생각해요. 좋은 기술에 좋은 대가를 지불하는 시장이 없어 창업 제2라운드 정말 어둡습니다. ”(기업 A), “쌀 가게에서 세계적 자동차 회사를 일군 정주영 신화는 옛이야기가 되는 듯합니다. 포화상태인 시장, 짙게 깔린 불확실성, 계단을 오를 때마다 턱턱 막히는 보이지 않는 장벽….”(기업 B)

2년 9개월 전 사례다. 2017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제19대 대선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에 포함됐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주요 정당에 직접 경제 재도약을 위한 3대 틀을 담아 전달했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4월 14일 대선후보 초청강연에서 이 제언집을 손에 들고 집권 시 청사진에 대한 사자후를 토했다.

시간이 좀 흘러 서랍에 묵혀 뒀던 제언집을 뜯어봤다. 집권 반환점을 1개월여 전 돌았는데 세밑에 이 ‘작은 사례’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왜일까 자문(自問)했다. 바뀐 게 없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경제체질 개선 체감도가 극히 낮다는 자답(自答) 외에는 이해가 힘들었다.

시계를 돌려 다시 올해 12월, 기획재정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2020년 경제정책 방향’에는 유니콘 기업 활성화 계획이 제시됐다. 유니콘 기업은 기업가치가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를 넘는 비상장 소규모 신생기업이다. ‘혁신생태계의 선순환 강화’를 통해 그동안 6년 이상 걸려 11개를 확보한 유니콘 기업을 내년에 20개로 늘리겠다는 게 요지다. 한 해 6개 더하겠다는 것으로, 지난 3월 초 이미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제2의 벤처 붐 확산’을 내걸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위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내년에 목표 달성, 할 수도 있다. 다만 전제는 분명하다. 혁신의 장착, 패기에 넘친 창업기업의 출현, 산업 동력의 강화 노력이 정교하게 맞아떨어지기 위해서는 창업환경부터 개선되고 조성돼야 하는 게 ‘ABC’다. 그런데 경제계 분석을 보면 허언(虛言), 장밋빛 청사진에 그칠 수 있다. ‘총선에서 자리 보전하려고 신산업, 한국 미래의 밥줄을 차단했다’는 거센 논란에 휘말린 ‘타다 금지법’만 떠올려도 앞뒤가 맞는 것인지 기이하다. 스타트업 혁신의 보장과 출현에 얼마나 불이 붙을지 우려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드러난 지표만 봐도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준비도는 45개국 중 25위에 불과하다(스위스 은행 UBS). 기반 기술 수준은 낮은데 규제의 올가미는 숨통을 조일 듯 단단하다. 정부 지원은 호언(豪言)과 달리 선진국에 비해 극히 낮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신생 스타트 기업들은 이미 길든 듯하다. ‘한국 유니콘 기업들이 규제에 구애받지 않고 이해집단과 갈등이 적은 화장품, 게임 등 단독적인 사업모델에 투자를 집중한다’(윤병훈 KDB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연구원)는 분석은 시사점이 크다. 글로벌 유니콘 기업들이 공유경제, 클라우드, 인공지능(AI)에서 질주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 치 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혁신의 물결을 거슬러서는 창업 후 10년 생존율 15.8%라는 고난의 데스밸리(Death valley) 현실은 영원히 피할 수 없다. 한국 경제, 산업 전반의 혁신 노력을 방기했다가 제 배꼽을 물어뜯는 ‘사향노루’의 최후를 맞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