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14년만에 다시 불붙은 ‘사학 개혁’ 논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국 자율형사립고·외고·국제고교장연합회와 학부모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외고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정부의 자사고·외고·국제고 일괄 폐지 방침을 규탄하며 헌법소원 제기 방침을 알리고 있다. 뉴시스

개방이사에 설립자·친인척 제외… 비리임원 ‘당연퇴임’조항도 신설
사학 “학교 자율성 침해·과잉입법” 반발 vs 與 “투명성 여전히 미흡”

교육부, 투명성 내걸고 혁신안
상임이사도 업무추진비 공개
학교운영위, 심의기구로 격상
비리 교직원 감독 강화
사무직 직원도 공개채용케

사학 “비리의 온상처럼 매도
교육 신뢰책임을 전가시켜”
‘사학 말살 정책’ 우려도

교육부가 지난 18일 사학법인 설립자의 친·인척 등은 개방이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사학 혁신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2005년 말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이면서 불붙었던 사학개혁 논란이 14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 이사회에 외부 인사 선임을 의무화한 사학법 개정을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에서 강행 처리했지만, 사학들의 반발에 부딪혀 1년 6개월 만에 완화해 재개정을 했었다. ‘족벌 경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사학재단의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취지지만 일각에선 사학을 ‘적폐’로 규정해온 현 정부가 ‘본격적인 사학 손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사학들은 즉각 “헌법에 보장된 사학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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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 정신 부정 논란 가열

사학계는 이번 사학 혁신 방안에 대해 헌법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는 ‘사립학교는 설립자의 의사와 재산으로 독자적인 교육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므로 사립학교 설립의 자유와 운영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적 요체’라는 취지로, 대법원은 ‘학교법인에는 헌법상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가 인정되므로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자주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과 사립학교법의 입법목적에 부합한다’는 취지로 판결한 바 있다. 이번 사학 혁신 추진 방안은 헌법에서 인정하는 사학 운영의 본질적 요소를 배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사학법인협의회)는 임원 간 친족관계 공시, 설립자·친족 등의 개방이사 선임 대상 제외 등에 대해 “학교법인의 자율적 이사 선임권 침해는 물론 이사회 구성과 운영에 있어 헌법이 정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 없이 사적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사학 무력화’ 조치”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② 사학 비리 정말 심각한가

사학계는 일부 대학의 사학 비리를 마치 전체가 그런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매년 약 14조 원에 달하는 재정 지원을 사립학교에 지원하면서 밀착 감시를 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사학 비리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데도, 사학계를 마치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돈 한 푼을 써도 교육부가 수시로 사립대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이는 시절이어서 과거처럼 사학 비리가 심하지 않다”면서 “사학은 기본적으로 비영리법인이고, 사적 이익을 취하면 형사 처분을 받게 돼 있다”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청산 한다며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면 결국 권력과 학교의 유착관계가 재연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물갈이되면 결국 사상적 획일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학계는 특히 비리 임원 퇴출 방안에 대해선 “현행 법률 내에서도 비리에 대해 일벌백계의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며 “강화된 규제입법 위주의 방안을 내세우는 것은 과잉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일부 사학 비리일지라도 우리 교육 전체의 신뢰를 훼손하는 경우가 더 많고 비리 유형이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경우가 많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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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교육 불신 호도 의혹

사학법인협의회는 이번 사학 혁신 방안에 대해 “협의 절차도 없이 혁신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것은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 절차에 따른 행정 행위”라며 “교육부의 잦은 교육정책 변경으로 인해 추락한 교육 신뢰를 사학 공공성 강화 방안으로 회복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바닥에 떨어진 교육 신뢰의 책임을 애꿎은 사학계에 전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하윤수 회장은 최근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잘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면서 혹평한 바 있다.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교육정책이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해 불협화음과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통령 말 한마디에 주요 교육정책 방향과 대학 입시제도가 수시로 바뀌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④ “사학 말살” vs “여전히 미흡”

여야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자유한국당 측은 이에 대해 “사학의 공공성·투명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데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사학 말살’이라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교육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웅동학원 비리 같은 것을 미연에 막을 수 있었고 지금이라도 해야 할 조치가 있는데, 여기에는 손을 놓고 있으면서 사학 혁신을 이야기하니 국민이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비리·부정을 단속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자율성을 다 빼앗아버리면 공립학교와 사학의 차이가 없게 되므로 원칙에서 벗어나는 제도에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것이다. 시행령 개정도 국회와 논의해야 하는데, 전혀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측은 “사학의 투명성·공공성이 그동안 높아진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국민적 눈높이로 봤을 때 미흡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⑤ 역대 사학개혁 논란

사학개혁 논란은 2005년 12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주장한 사학법 개정안은 학교법인 이사 중 3분의 1과 감사 2인 중 1인을 교수회·교사회·학교운영위 등이 참여하는 사학구성원 단체가 추천해 선임하는 ‘개방형 이사제’ 및 ‘공익 감사제’를 도입하고, 학교법인 임원 간 친인척 비율을 3분의 1에서 4분의 1로 대폭 축소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사학법 무효 투쟁’으로 17대 국회 출범 후 기독교재단 등과 첫 등원거부 장외투쟁을 벌였다. 반발이 거세지면서 한국교총은 시행유예를 교육부에 요청했다. 사태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이듬해인 2007년 7월 논란의 중심이었던 ‘개방형 이사제’를 학교운영위·교수회 대신 별도의 추천위에 부여하는 사학법 재개정안이 통과됐다. 사학들은 경영권 방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시민단체들은 사학법의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며 정치권을 비난했다.


⑥ 현 정부의 사학 때리기

현 정부는 올해 초부터 사립학교 관련 정책들을 쏟아내며 정부의 개입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1∼8월에는 자율형 사립고 재지정 평가를 통해 자사고 10곳을 지정 취소했다. 현재 이 학교들은 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지난 6월 정부는 16개 사립대에 대해 첫 종합감사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7월부터 연세대, 홍익대가 종합감사를 받았다. 이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학생부종합전형 관련 문제가 불거지자 9월 주요 대학 학종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사학을 겨냥한 정부의 영향력 확대는 11월 두드러졌다. 당시 정부는 학종과 관련해 주요 대학에 대한 특정 감사를 실시하고, 자사고·외고·국제고에 대해 2025년부터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어 서울 16개 주요 대학 정시 40% 이상 확대를 담은 대입 개편안을 발표해 교육현장이 들썩이기도 했다.


⑦ 이번 사학 혁신 핵심 내용

사학 재단을 견제하기 위한 사립학교법인의 책무성 강화가 핵심이다. 특히 ‘개방이사’에 설립자와 그 친족, 해당 법인 임원 경력자나 학교장 등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개방이사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학교법인의 임원·설립자와 친족관계인 교직원 수도 공시하기로 했다. 비리 임원은 복귀를 제한하는 등 결격사유가 강화되고, 이에 따른 당연 퇴임 조항도 신설된다. 교육부는 개방이사의 경우 기업의 사외이사와 같이 학교법인 이사 중 일부를 외부 인사로 채워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도입됐기에 설립자 등이 해당 직을 맡으면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른바 ‘족벌 경영’의 폐해를 바로잡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사학 측은 이사장 직계 존비속이 이사회 2분의 1을 못 넘게 돼 있는 현행 규정을 들며 “과도한 이중규제”라는 견해를 굽히지 않고 있다.


⑧ 채용 및 중대 비리도 처벌 강화

사립학교 사무직의 경우 앞으로 공모를 통한 공개채용으로 전환된다. 교육부는 “사립학교에는 대규모 국가 재정이 투입되므로 공공성 강화 노력이 요구된다”면서 이를 통해 채용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매년 사립 초·중·고·대학교에 총 14조4000억 원 규모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부의 중대 비리 처벌 권한도 강화된다. 교육청에 ‘교원징계심의위원회’가 신설, 비리를 저지른 사립학교 직원에 대한 징계를 감독하게 된다. 중대 비리 발생 시 교직원에 대한 재심의도 위원회가 맡는다. 이 밖에도 사무직원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고, 학교법인 임원·교직원 행동강령이 신설된다. 사립학교운영위원회는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될 예정이다.


⑨ 회계 투명성 제고

이번에 발표된 ‘사학 혁신 방안’은 사학 회계 투명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현행 총장으로 규정된 업무 추진비 공개 대상을 이사장과 상임이사로까지 확대키로 했다. 현재 회계 부정임원 승인을 취소할 수 있는 기준도 깐깐해진다. 현재는 교육 당국의 시정요구 없이 ‘학교법인의 재산을 횡령한 경우’로 돼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1000만 원 이상 재산의 배임·횡령’ 등을 한 경우로 구체화된다. 사립대 적립금 공개 범위도 확대된다. 현재는 정립액과 사용액만 공개하지만, 혁신 방안에 따라 앞으로는 사용 계획도 밝혀야 한다. 적립금 기금운용심의회에 교직원과 학생 3분의 1 이상이 참여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새로 시행된다. 또 ‘셀프 감사’ 논란을 줄이기 위해 회계 부정이 확인된 대학은 교육부 장관이 최대 2년간 외부 회계감사 기관을 지정하기로 했다.


⑩ 교육부 자체 혁신 방안도

‘사학 혁신 방안’에는 교육부 자체 혁신 방안도 포함됐다. 교육부는 사립대학에 대한 상시감사체계를 구축, 회계·채용 비리와 입시·학사·연구 부정 등 취약 분야에 선제 대응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감사 처분 양정 기준을 마련, 행정제재 수위도 높아진다. 감사결과는 전문으로 확대 공개할 방침이다. 사립학교 관련 부서의 인사운영도 개선키로 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 내 사학 관련 부서 직원 간 인사이동도 일정 기간 제한된다. 공익 신고자 보호도 강화된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관련 부처와의 협업을 통한 법률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또 퇴직 공직자의 사학 취업 제한기관을 사립대학 무보직 교원까지 확대, 정부는 교육 공무원과 사학이 유착하는 이른바 ‘교피아(교육 마피아)’도 불식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대해 사학법인협의회는 “협의 절차도 없이 혁신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것은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 절차에 따른 행정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관범·정선형·김성훈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