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역사… 그 위대한 순간들>파머, 1960년 첫 US오픈 우승… ‘골프 왕’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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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 호건·신성 니클라우스 꺾고
7타차 대역전승 최고스타 부상
잘 생긴 얼굴에 푸근한 미소로
이후 10여년 ‘더 킹’으로 군림

1950년대 벤 호건의 시대가 저물면서 미국은 또 다른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다. 그의 이름은 아널드 파머(사진).

때마침 가정에 TV가 보급되는 텔레비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파머는 순식간에 미국골프의 아이콘으로 부각된다. 슬림한 체격에 잘 생긴 얼굴, 그리고 푸근한 미소를 지닌 파머. 시가를 문 파머가 스윙하면 여성들은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쓰러진다.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TV를 켰고 그의 샷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그는 ‘킹’으로 불리면서 1960년대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1960년 6월 18일 콜로라도 덴버 인근의 체리힐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60회 US오픈 마지막 날. 선두는 기라성 같은 3명이었다. 전성기를 넘긴 노장 호건과 한창 뜨기 시작한 파머, 그리고 훗날 파머의 뒷덜미를 잡지만 당시 아마추어인 잭 니클라우스. 1950년대만 하더라도 메이저대회의 총 상금은 6만 달러, 우승 상금은 1만4400달러였다. 2019년 메이저대회의 우승 상금은 100배 이상 올라 200만 달러가 넘었다. 격세지감.

파머는 이미 두 달 전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여세를 몰아 메이저대회 2회 연속 우승에 도전했다.

당시 US오픈의 우승 후보 1순위는 마이크 서체크였다. 비록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체크는 3일 내내 선두를 지켰고 마지막 날 오후 라운드까지 5언더파로 선두였다.

파머는 이틀째까지는 선두 서체크에 8타나 뒤져있었고 마지막 날 오전 3라운드를 마쳤을 때까지 7타 뒤진 15위권이었다.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후가 되면서 골프장에 자리한 갤러리는 물론, 집에서 TV로 메이저대회 골프 중계를 지켜보는 시청자에게 놀라운 이변이 찾아온다.

파머의 기적은 4라운드 첫 홀부터 시작됐다. 첫째 홀의 파4를 버디로 돌파하더니 2번 홀에선 30m 칩 샷을 그대로 꽂아넣어 다시 버디. 버디 행진은 계속됐다. 파5인 3번 홀은 이글에 가까운 버디, 4번 홀에서도 5m 버디. 6, 7번 홀에서도 연속 버디를 낚아 7번 홀을 마친 가운데 이미 6언더파.

그렇게 4라운드를 마치면서 65타라는 경이적인 스코어로 합계 4언더파 280타로 선두그룹에 앞서 경기를 마쳤다. 65타는 60년 역사의 US오픈에서 기록된 두 번째로 낮은 타수.

파머의 승승장구와는 달리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한 니클라우스는 마지막 날 5번 홀에서 이글을 잡는 등 추격했지만 합계 2언더파 282타였다. 47세의 호건은 통산 5번째 US오픈 정상에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에겐 이미 경기를 마친 파머와 연장전에서 맞붙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호건이 버디를 잡으면 공동선두가 되는 상황이었다.

회심의 마지막 샷. 하지만 호건의 샷은 워터 해저드로 향해 트리플 보기를 범하면서 9위로 내려앉았다. 이제 남은 이는 3일 내내 선두를 지켰던 서체크. 하지만 서체크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75타로 무너지면서 합계 1언더파 283타, 3위가 됐다.

결국 파머가 우승하면서 생애 최초의 US오픈 타이틀을 차지한다. 그렇게 파머는 화려한 1960년대를 열게 된다. 이후 그는 1973년까지 10차례의 메이저대회 타이틀과 62차례의 PGA 우승을 작성했다. 파머는 호건과 샘 스니드에 이어 세 번째로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승리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영예를 안는다. 그 후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까지 골프 사상 오직 5명만이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2016년 타계한 파머는 평생 골프의 왕이라는 더 킹(THE KING)의 칭호를 얻었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