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황제 행세한 시진핑, 사드·北核 말도 못 꺼낸 文대통령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23일 방중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 주석을 만나고, 그 뒤에 청두로 가서 2인자인 리커창 총리와 이른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가졌다. 우선, 그 형식부터 굴욕적이며 ‘정상’회의도 아니다. 중국은 한국을 대등한 주권 국가로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봉건적 조공관계 시절처럼, 황제를 알현한 뒤 자리를 다른 데로 옮겨 실무자와 회담을 갖는 전형적 ‘종주국-조공국’ 행태다. 중국은 2008년 한·중·일 정상회의 시작 때부터 총리 참석을 고집해 오고 있다. 전형적인 패권 행태다. 정상적 관계라면, 시 주석이 3국 회의에 참석하는 게 당연하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면 한·일에 정중한 양해를 구하며, 리 총리가 ‘주석 대행’임을 밝히고, 시 주석과 한·일 정상과의 ‘면담’은 건너뛰는 게 낫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면담 내용은 더욱 문제다. 첫째, 시 주석이 “사드 문제의 타당한 해결”을 언급한 데 대해 문 대통령은 사드 보복 철회를 요구하지 못했다. 문 정부는 2017년 10월 ‘3불 합의’후 사드 문제 해결됐다고 했는데 안보 주권만 포기한 셈이다. 둘째, 문 대통령은 북핵 폐기 원칙에 대해선 언급 없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만 강조했다. 특히 시 주석이 언급한 “핵심 이익에 대한 배려”는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동아시아 배치 가능성에 대한 사전 경고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북핵 폐기가 한국의 핵심 안보이익”이라고 했어야 했다. 셋째, 문 대통령은 중·러 주도의 대북 제재 완화 시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고 밝혀 한국이 북·중·러 편에 섰다는 인상까지 줬다. 유엔 결의에 따른 중국의 북한 노동자 추방 시한이 지났음에도 거론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한·중 관계를 “공동운명체”라고 언급했다. 단순한 덕담을 넘어 한·미 동맹의 이탈로 읽힐 여지가 다분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해야 할 말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은 너무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