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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9년 12월 31일(火)
“연극은 조국이자 종교… 오늘도 내 모든 걸 짜내려 대본과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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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자 배우는 카리스마의 배우, 열정의 배우 같은 모든 수식어를 뒤로하고 ‘연극배우 박정자’로 불리길 원했다. 60년 가까이, 연극의 길을 걸어온 큰 배우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이름이다. 김낙중 기자

■ 연극배우 박정자

관객이 0순위…한 해도 쉬지않고 무대 오른 건 본능
훌륭한 연기보다 연습한 만큼만 하게 해달라고 늘 기도
60년 연기인생에 아직도 대사 까먹는 악몽에 시달려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가는 작품은 ‘19 그리고 80’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여든의 할머니가 나의 롤모델
80세 되는 내후년에 이 작품 다시 올리고 싶다


1962년 이화여대 2학년이던 스무 살, 연극 ‘페드라’로 데뷔해, 60년 가까이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선 열정과 카리스마의 배우 박정자(77). 그에겐 무대가 현실이고, 무대 밖 세상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연출가 임영웅의 말대로 ‘무대에서 체온 80도’인 뜨거운 배우지만, 연극이 끝나고 돌아온 36.5도 세상에선 그는 그저 하염없이 다음 무대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뿐이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연극이라는 하나의 신앙을 얻은 대신 나는 계절을 잃어버렸다. 장기 공연에 익숙했던 탓에 밀폐된 분장실에 갇혀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만져볼 기회조차 잃었다. 무대 위에 서면 봄·여름·가을·겨울이 순식간에 찾아왔다가 눈 깜짝할 새 밀려나곤 했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오는, 그래서 모두의 마음이 분주한 이 시간 안에서도 그는 계절이 지나는지,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한 해가 가는지 또 새해가 오는지 헤아리지 않는다. 그저 서울 삼성동 지하 연습실에서 동선을 그리고 대사를 고쳐가며 연습에 빠져 있을 뿐이다. 그가 기다리는 시간은 새해 2월 6일부터 1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박정자의 배우론-노래처럼 말해줘’(연출 이유리)이다. 그가 60년 가까이 연기해온 숱한 연극들, 그가 맡았던 역할들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직접 들려주는 특별한 무대이다. 자전적 이야기지만 사사로운 인간 박정자가 아니라 배우 박정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박정자를 넘어선 배우의 이야기다. 제목대로 ‘박정자의 배우론’이다. 이 무대에서 그는 특유의 매혹적인 목소리로 여섯 곡의 노래도 부른다. 사실 그는 1989년 ‘아직은 마흔 네살’이라는 음반을 내고 가수 최백호 씨가 ‘낭만에 대하여’를 나보다 더 잘 부른다고 말하는 ‘가수’이다. 1962년 데뷔 이후, 어쩌면 1950년 아홉 살, 서울 부민관에서 생애 처음으로 연극 원술랑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던 그 날 이후 연극으로 운명 지워진 지난 시간을 한곳에 모은 듯한 무대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삼성동 연습실을 찾아 그를 만났다. 60년 가까이 무대에 선 열정적이면서도 연극이라는 길 위에서 한없이 성실한 배우, 그의 말처럼 ‘연극이라는 나만의 조국’을 만든 큰 배우에게 삶의 비밀을 듣고 싶었다.

―‘박정자의 배우론’은 배우 박정자의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듯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오래전 ‘예술의전당’에서 배우의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명배우 시리즈’를 제안했었다. 자전적 이야기가 싫었고 관객들에게 너무 쓸데없는 정보를 주는 것 같아서 거절했다.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고 자전적인 이야기는 구질구질하다. 무대 위에 서는 사람은 너무 드러내 놓는 것보다 어느 정도 가리는 것이 좋다. 그렇게 거절했지만 어느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배우론 이야기는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이 작품을 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것을 느꼈다, 이렇게 배역에 접근해 들어갔다’는 것 같은 이야기….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지 않나.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하다가 ‘11월의 왈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내 사랑 히로시마’ 등의 극본을 쓴 나의 오랜 친구 이충걸 작가에게 써줄 수 있냐고 물었다. ‘무조건이죠’라는 답이 왔다. 그래서 텍스트가 나왔다.”

박정자 배우는 이 작가가 자기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도 이번 무대를 위해 둘은 수차례 만나 대화를 했다. 머리를 맞대고 여기에선 이런 말을, 여기서는 이런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가며 대본을 만들었다. 그럴 수밖에. 배우 박정자의 이야기이니.

―‘페드라’ 속 사랑의 테마, ‘아직은 마흔 네살’의 타이틀 곡 ‘검은 옷 빨간 장미’ ‘낭만에 대하여’ 등 여섯 곡을 직접 부르시네요.

“원래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임영웅 선생님이 연출한 뮤지컬 ‘춘향전’과 ‘상록수’, ‘지붕 위의 바이올린’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작품에 출연했다. 최근엔 ‘빌리 엘리어트’에도 출연했다. 할머니 역을 위해 생애 처음으로 오디션을 봤다. 한국 제작진이 송구해 했는데 그쪽 문법이 그렇다면 따라야 한다. 이제 거칠 게 없다. 하지만 이번 노래가 있는 무대는 (직접적으로는) 김성녀 씨의 부추김이 있었다.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최백호 씨의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는데 김성녀 씨가 ‘선생님, 노래 있는 연극을 꼭 하세요’라고 했다. 또 평소 가깝게 지내던 최백호 씨는 ‘선생님 이건 선생님 노래입니다’라며 ‘낭만에 대하여’와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두 곡의 MR를 만들어 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무대가 됐다.”

‘박정자의 배우론’ 무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한 생애는 음악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음악은 한 생애만으론 충분히 표현될 수 없어요. 나는 아직 부를 노래가 많이 남아 있어요.” 그는 노래로도 또 그다음 무대를 기약한 셈이다.

―이제까지 몇 편을 하셨나요. 140편, 150편, 200편으로 자료마다 제각각입니다.

“계산에 약하다. 아이들 나이도 언뜻 계산을 잘못하는데, 몇 편 했는지 어떻게 알겠나. 그거 계산할 시간 있으면 대사를 하나라도 더 외우겠다. 그냥 한 해도 쉬지 않고 연극을 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60년 가까이, 거의 전 생애를 한 가지 일에 바친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닌가요.

“연극이 일인가? 일이 아니다. 업은 업인데 직업은 아니다. 연극인으로 연극을 하면서 빵(생활)을 해결하고 살았다면, 연극으로 경제적 자립을 했다면 직업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연극을 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연극계 절친한 동료인) 손숙 씨는 2년, 윤석화 씨는 10년 아래인데 두 사람이 연극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연극을 그만두겠다고 했었다. 지금은 그런 말을 안 한다. 지금은 손숙 씨가 그래요. ‘이렇게 인내심을 갖고 지금까지 연극을 하게 한 형님에게 감사한다’고. 우리는 연극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다. 연극을 안 한다면 손숙도 윤석화도, 박정자도 무의미하다.”

―이화여대 문리대 시절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이후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섰습니다. 평소 개근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곤 하셨는데, 그럴 수 있었던 건 원칙인가요 아니면 본능인가요.

“둘 중이라면 본능에 가깝다. 연극만이 나를 숨 쉬게 했다. 극장 밖의 시간은 기다리는 인생이다. 나는 연극을 통해서 내 나라를 만들었다고 말하곤 한다. 거기엔 법도 있고, 규율도 있고, 지켜야 하는 도덕이 있다. 나라니, 조국이니 하는 말이 너무 거창하지만 그 나라가 꼭 클 필요는 없지 않나. 연극은 나에게 작은 조국이고 종교이고 기도다.”

그는 늘 기도한다고 한다. 하느님과 그에겐 근원적 고향인, 지금은 세상을 떠난 엄마에게. 훌륭한 연기를 하게 해달라고가 아니라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연습한 것만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60년 무대 오르면서 깨달은 삶의 비밀은 ‘기다림’ 이란 것”

선택한 것에 대해 기다리며 지치거나 낙오하면 안돼
배우의 삶을 지탱해온 하나의 기둥이자 원칙

최고의 연기파, 마성의 카리스마, 개성을 사랑한 배우…
이젠 모든 수식어 대신 ‘연극배우 박정자’면 족해

디지털 시대에도 나는 아날로그가 좋다
우리의 삶이 연극…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


―60년 베테랑 배우도 실수를 걱정하나요.

“무대 위에서 나는 여전히 실수를 한다. 나는 로봇이 아니다. 대사를 잊어버린다. 1988년 산울림 소극장에서 ‘웬일이세요, 당신’ 이틀째 공연에서 순간적으로 대사를 잊어버렸다. 그때 ‘죽고 싶다’ 따위의 사치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치욕스러운 참담함이 들었다. 그 뒤 도쿄(東京)에서 모노드라마 ‘그 여자 억척 어멈’을 공연하는데 필름이 딱 끊어지듯 대사를 까먹었다. 무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싶었다. 그 뒤로 대사를 잊어버리는 것이 트라우마가 됐다. 이 때문에 자주 악몽을 꾼다.”

그는 요즘도 악몽을 꾼다. 대사를 잊어버리는 꿈과 지각하는 꿈이다. 꿈에서 그는 극장을 찾아가는데 골목골목 뒤져도 극장을 찾을 수 없고 겨우 들어가 분장실에 앉았는데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 객석을 보니 관객이 꽉 차 있는데 의상도 대본도 없어 식은땀이 흐르고 ‘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깬다고 한다. 그는 무대에 수백 번 섰지만 트라우마와 강박은 여전하기만 하다.

―연극이 왜 그렇게 좋은가요. 가장 황홀한 순간은 언제인지요.

“왜 좋은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 가장 좋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 같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는 130명의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했다. 커튼콜을 할 때 어린 빌리부터 무용수, 앙상블 배우들이 모두 나왔고, 관객이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다. 그때 거기에 어느 한 사람, 불행한 사람이 없다. 관객과 배우, 스태프가 하나가 된 순간, 연극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내는 에너지다. 하지만 내 연극 인생에서 1순위, 0순위는 언제나 관객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를 존재하게 해주니까. 내 존재감은 관객에게서 비롯된다. 관객이 없다면 연극을 할 이유도 없다.”

배우라면 누구에게나 관객이 중요하겠지만 관객에 대한 박정자 배우의 사랑은 정말 특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연극 평론가 안치운은 “관객과의 만남, 그 기쁨을 의식 아니 무의식으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며 “박정자에게 희망은 연극이 아니라 관객”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박정자 배우는 관객 말고는 아무도 안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관객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이율배반인가.

―관객만을 믿지만 관객을 믿지 않는다니요, 어떤 의미인가요.

“배신감을 느낄 때도 있다. 정말 좋은 무대를 만들었는데 외면당할 때. 무대 위에서 발 뻗고 운 적도 있다.”

그는 관객에게 서운했던 날에 대한 기억 한 조각을 보여줬다. 몇 년 전 정동극장에서 ‘신의 아그네스’ 무대를 준비 중이던 그는 개막 전날 밤늦게 연습하고 뛰어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피투성이가 된 적이 있었다. 응급실에서 입안을 열두 바늘 꿰매고, 발엔 깁스를 했다. 하지만 연극은 관객과의 약속이기에 무대로 갔고, 수녀복으로 적당히 가리고 극 중 미리엄 원장으로 무대에 섰다. 그런데 1막 마지막 즈음, 꿈속에서도 줄줄 외울 정도였던 대사가 까맣게 생각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2막에 대본을 들고 공연을 해야 했다. 공연이 끝나고 아그네스 역을 맡았던 윤석화 씨가 “큰 사고를 당해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무대에 섰다”고 전했고,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현실은 훈훈하게 끝나지 않았다. 곧이어 수는 많지 않았지만 몇몇이 환불 소동을 일으켰다. 언제나 ‘배우는 아플 권리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그때 그 순간 이것이 내가 언제나 0순위로 생각했던 관객인가라는 생각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언제나 배우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잔인한 관객.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또 그렇다 해도 관객은 자신에겐 존재의 희망이라고 했다.

―연극 인생 60년, 최고의 위기랄까, 최고의 적수는요.

“언제나 위기다. 얼마 전 백건우 씨가 자신은 너무 음악하고 싸웠다고 이제는 편안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도 공감한다. 배역과의 싸움, 관객과의 싸움, 나와의 싸움이 있다. 이젠 내려놓고 싶다.” 그는 요즘 생활에서도 내려놓는 연습, 버리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지겨웠던 적은 없나요.

“직업이었으면 지겨웠겠지만 연극은 직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항상 즐겁고 기쁜 것은 아니었다. 대본과 씨름하고, 내 밑바닥의 모든 것을 길어 올려 쥐어짜야 한다. 잠을 자다가도 두 시고, 세 시고 깬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손숙 씨가 며칠 전 전화로 ‘형님 힘드시죠?’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렇지만 행복하죠?’라고 했다. 그게 우리다.”

―동아방송 성우로 뽑혀, “빨리 내 길을 걸어가고 싶다”며 이화여대 신문학과를 중퇴하셨지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동아방송국은 재학생은 안 된다고 하고, 학교는 일은 안 된다고 했다. 내 인생에서 결혼보다 더 어려웠던 결정의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기보다는 육감적으로 판단했다.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한다. 이 모자를 쓸까, 저 모자를 쓸까 같은 사소한 것부터 인생의 중요한 결정까지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에 있다. 하지만 선택엔 책임을 져야 한다. 인생은 빨주노초파남보, 여러 색이다. 늘 꽃피는 날만 있을 순 없다.”

―당시 집에서 반대하지 않으셨다는데 요즘 부모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나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말이 없다. 그때 난 고집이 셌다. 하겠다 하면 했다. 그랬기 때문에 집에서도 반대하지 않았다. 제 몫의 인생이다.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 부모는 자식을 못 꺾는다. 본인의 의지가 강하면 밀어줘야 하지 않겠나.”

―평소 많은 작품 중에서 ‘19 그리고 80’(원제 헤롤드&모드)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는데 여전히 그런가요.

“당연하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여든의 할머니 모드는 나의 롤 모델이다. (한국 나이로)80세가 되는 내후년(2021년)에 이 작품을 다시 올릴 것이다. 2003년 직접 기획해 올린 작품인데 한 번 공연하고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고, 나 스스로 작품을 하면서 힐링이 됐다. 배우가 점점 주인공의 나이에 접근해 드디어 주인공 모드와 같은 나이가 된다. 한 배우가 자신의 80을 향해 왔다. 박정자의 아름다운 프로젝트이다.”

―어머니, 노인, 무당 같은 강렬한 역할을 많이 맡으셨지요. 때론 주역이 아닌 삶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나는 오히려 그게 고맙다. 나의 첫 공연은 ‘페드라’의 시녀 역이었다. 페드라를 하고 싶었는데, 대사 열여섯 마디의 시녀 역을 했다. 두 번째 작품 ‘베르바다르 알바의 집’에서는 80대 노파였고, 그다음 ‘피의 결혼’에서는 어머니였다. 그때 주연은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예뻐야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늘 바보라고 생각한다. 너무 똑똑하면 다른 인물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굉장히 인내심도 많다. 어떤 역할이 와도 내가 감당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여겼다. 찬밥 더운밥 맛있는 것을 가리지 않았다. 나의 미련함, 나는 그런 것에 대해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낀다.”

―60년 가까이 오른 무대는 어떤가요. 이제 좀 편해졌나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여전히 겁이 난다.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무대에서 숱하게 많은 인생을 경험하면 더 성숙해지나요.

“천만에. 환상이다. 그 삶들을 살았다고 성인이 되지 않는다. 내 자리로 돌아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하지만 사는 동안 재미는 있었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고, 많은 삶을 들여다보았다. 다채롭긴 했다. 하지만 그 삶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모두 많은 갈등을 안고 산다. 그런 것이다. 모두가 즐겁고, 사랑하기만 하나. 행복한 날만 있나. 그렇지 않다. 무대에서도 삶에서도.”

―새로운 한 해가 왔습니다. 곧 80세이신데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빨리빨리 나이가 들고 싶다. 인생은 너무 버겁고 무겁다. 인생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등에 바위를 짊어지고 끊임없이 오르고 다시 굴러떨어지고 다시 올라가는 거다.”

―지혜로운 생활인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연극에 바친 벅찬 삶을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대중에 각인시킨 헬레나 루빈스타인 광고가 CF 감독인 남편의 작품이었지요.

“부부는 늘 기차 레일 같다. 슬쩍 엇갈리면서 평행선을 긋는 거다. 나는 항상 독립적으로 살았다. 나는 나, 너는 너, 나는 내 일, 남편은 남편 일. 남편은 지금도 영상 작업을 하며 자기 삶을 살고 있지만 배우로서 나를 칭찬해 준 적이 없다. 나도 안 한다. 언젠가 대학로에서 작은 집을 줘서 박정자 뮤지엄을 준비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남편이 ‘박정자 유물 전시할 일 있어?’라고 했다. 내 뒤통수를 때리는 말이었다. 섭섭하기보다는 정신이 확 들었다. 부부 사이엔 긴장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후한 점수를 주면 안 된다. 따로 또 같이. 서로를 몇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봐 주고. 가까이서 보면 흉이 다 보이니까.”

―디지털 시대 연극은.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은)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인터넷도 할 줄 모르고, 휴대전화로 전화, 카톡, 문자 그리고 제주도에서 만화작업을 하는 딸 때문에 인스타그램을 하지만, 딸 계정만 본다. 그래도 요즘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카카오 택시도 부를 수 있다. 나는 아날로그가 좋다. 적어도 디지털은 망해도 아날로그는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연극은 영원하다. 연극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이다. 우리의 삶 전체가 연극이다. 연극은 영원할 것이다.”

―한국 최고의 연기파, 마성의 카리스마, 열정의 배우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김정옥 연출가는 ‘철저하고 흐지부지가 없는 배우’, 안치운은 ‘고통스럽게 자신을 태워서 무대를 밝히는 배우’라고 했고요. 이제 어떤 배우로 불리고 싶으신가요.

“이제 그 모든 수식어가 싫다. 그냥 연극배우 박정자, 그거면 족하다.”

그렇다면 연극 배우 박정자가 60년 가까이 무대에서 그의 말대로 “나의 서정과 나의 육체로 사람들의 서정을 격동하게 만들며” 알게 된 삶의 비밀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머뭇거리다가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내놓았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우리는 항상 뭔가를 기다린다. 모든 순간이 선택인 것만큼 항상 기다려야 한다. 지치지 않고 낙오하지 않고.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다.” 어쩌면 기다림은, 그가 깨우친 삶의 비밀이라기보다는 이 큰 배우의 삶을 지탱해온 하나의 기둥이자 원칙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그는 다시 무대에 오른다.

‘노래처럼 말해줘’에서 배우 박정자는 이런 대사를 관객에게 보낸다. “사람들은 나이가 그 사람의 모든 걸 설명한다고 생각해요. 얼굴, 몸짓, 감정, 그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까지. 그렇다면 일흔아홉 살이 되면 선택은 두 가지예요. 죽든지 아니면 여든 살이 되든지. 틀어막을 게 하나도 없이 구멍 난 배에 타고 있는 나이 같지만, 여든 살의 연극배우가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때때로 나는 생각해요. 무대를 버리고 남은 재능 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계속 살아남아 끝없이 자신을 들어 올리는 것, 어느 쪽이 옳을까요.” 당연히 그는 계속 살아남아 자신의 무대에 오를 것이다.

인터뷰 = 최현미 문화부장 chm@munhwa.com
e-mail 최현미 기자 / 문화부 / 부장 최현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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