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2019 문화 코드 ‘오나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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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장

올 한 해 한국 사회는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내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에 비해 문화 쪽은 꽤 성과를 거뒀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위 조작과 악성 댓글의 비극이 있기는 했지만, 방탄소년단(BTS)은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3번째 달성하며 K-팝 역사를 새로 썼다. 영화 관객은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상까지 기다리고 있다. 이 같은 선전으로 최근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 콘텐츠를 계기로 한국 문화와 한국 상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는 응답이 77%에 이르렀다. 한국 드라마 시청이 5년 이상 됐다는 응답도 50%를 넘었으니 한국 문화의 글로벌 경쟁력은 꽤 탄탄하게 뿌리를 내린 것 같다.

이 같은 눈에 보이는 성과와 함께 올 한 해 문화가 준 선물이라면 ‘위로’라고 할 수 있다. ‘위로’는 올 한 해 문화를 가로지른 키워드였다. 문화 전 영역을 휩쓴 ‘뉴트로’ 열풍은 속도의 시대, 시간을 넘어선 오래된 것들이 주는 안정감으로 우리를 위로했다. BTS의 노래는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저 어둠도 달빛도 아닌 우리 때문”이라고, “우리 그 자체로 빛나고 있다”며 우리 모두의 삶을 위로했다. 미니시리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남의 눈으로 재단할 수 없는 자기 삶의 당당함을 응원하며 많은 이를 품었다. 각종 조사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연습생 펭수는 또 어떤가. “알아서 할 테니 잔소리하지 말라”고,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라”는 펭수의 말은 답답한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괴로움을 덜어주고 슬픔을 달래는 위로란 문화의 본래적 속성이지만 위로가 문화적 키워드로 분명하게 떠오른 것은 1990년대 말, 험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빠졌을 때였다. 그 뒤로 우리 사회가 부대낄 때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위로 코드’는 얼굴을 내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말로만 떠드는 값싼 위로에 대한 거부도 있었고 현실적 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위로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그래도 올해 한국 사회를 관통한 위로는 좀 더 건강한 위로인 듯하다.

한 대형서점은 올해 출판 키워드를 ‘오나나나!’로 꼽았다. ‘오롯이 나를 향한,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삶’의 줄임말이다. 유난히 에세이가 인기를 끈 올해, 타인의 섣부른 위로에 기대지 않고 많은 이가 자신에게 집중해 스스로 책을 썼고, 그런 책을 읽으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뉴트로도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복고(레트로)가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의미 있는 새로운 유행(new + retro)으로 만들었고, ‘동백꽃 필 무렵’도 자신에게 당당한 삶과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품어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랑의 새로운 해석을 전해줬다. 한편에선 ‘오나나나!’를 두고 각박한 세상에서 위로도 ‘각자도생’일 수밖에 없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그 아래엔 ‘남 탓’보다는 스스로 자기만의 해결책을 마련해 좀 더 단단해지려는 흐름이 버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위로를 만들고, 위로하고, 위로받은 2019년이 저물어 간다. 새해엔 이 단단함의 힘으로 새 시간을 향해 힘차게 한 발 내딛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