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수의 지식카페>은하수도 하나의 은하일 뿐…‘대우주’ 깨달음 100년밖에 안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우주과학사

이관수의 멀티버스 - ⑤ 은하수

‘은하수는 우주인가, 우주의 일부인가’ 1920년 첫 논쟁… 망원경 발달로 은하수밖 별무리 발견 ‘우주관 대변화’
7만6000여개 다른 은하 잇따라 찾아내… 우리 은하속의 15억개 별 탐사도 이제야 첫걸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은하수를 보기가 무척 어렵다. 2016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광공해가 제일 심한 나라이다. 두 나라 모두 면적의 90%가 광공해 때문에 밤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지역이다. 바다로 나가도 사정이 썩 좋아지지 않는다. 상하이(上海)에서 인천, 부산을 거쳐 도쿄(東京)까지 밤바다도 밝게 붐빈다. 양평, 화천, 양구 등지에 멋진 은하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들이 있기는 한데, 맨눈으로 보는 은하수는 언제나 사진과 다르다. 눈과 달리 카메라는 노출 시간을 늘려 빛을 누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맨눈으로 은하수를 본 경험은 특별하다. 도시인들은 밤하늘에 어쩌다 보이는 희멀건 자국을 보고 은하수인가 싶어 하다가, 은하수에서 쏟아지는 별빛에 시간이 멈춘 듯이 아득해진 경험을 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옛사람들이 보았을 최고의 은하수는 정말 보기 힘들다. 지평선 저 너머까지 깜깜한 오지에서 시리도록 맑은 공기가 고요히 내려앉아 산들바람도 잠든 그믐밤에 나타나는 은하수. 이제는 인류의 태반이 그런 은하수를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다고 한다. 은하수가 무엇인지, 우주가 얼마나 광활한지 어렴풋이 눈치챈 지 올해로 1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1920년 4월 은하수와 우주의 크기에 대한 ‘대논쟁’이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강당에서 벌어졌다. 기존 견해는 우주란 곧 우리 은하수이며, 10만 광년 남짓한 은하수가 우주의 전부라는 것이었다. 신진 견해는 최소한 안드로메다 성운만큼은 은하수 바깥 저 멀리에 있고, 크기도 은하수 전체만 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주 전체는 생각보다 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인류 최초로 우주와 은하수, 은하수와 은하를 어렴풋이 구별하기 시작한 중요한 논쟁이었지만, 논쟁 내용은 짐작과 추정으로 점철돼 있었다. 안드로메다 성운에 대한 논쟁을 봐도 그렇다. 보통 별은 보이지 않고(망원경 성능이 못 따라갔다), 갑자기 밝아졌다 사라지는 신성들만 종종 관측됐다. 매우 드물게 안드로메다 성운 전체만큼 밝은 신성도 관측됐다. 기존 견해를 대표한 섀플리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그렇게 멀다면, 밝은 신성의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뜻인데, 그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반면에 신진 견해 측의 커티스는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관찰되는 신성의 개수가 은하수 나머지 부분에서 관찰되는 신성의 개수보다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니 안드로메다 성운이 은하수의 일부라면 부분이 전체보다 크다는 모순이라고 대응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785년 윌리엄 허셜이 발표한 은하수(우주)의 형태.

성운은 천체망원경의 등장과 함께 발견됐다. 1610년 봄 갈릴레오는 은하수를 망원경으로 보니 맨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작은 별이 무수히 많다고 발표했다. 천체망원경 붐이 일었고, 같은 해 말 프랑스의 드 페렉은 후원자가 구해준 망원경으로 오리온 별자리에서 별이 아닌 이상한 천체를 발견했다. 별들은 짙고 굵은 점이나 옅고 가는 점으로 보였는데, 불규칙하게 뿌연 구름 같은 것이 보였던 것이다. 뒤이어 비슷한 것들이 속속 발견됐다. 별보다는 개수가 적지만 망원경이 보여주는 새로운 천체가 흥미를 끌었다. 뿌옇게 퍼진 타원이나 불규칙하게 생긴 것들을 성운이라고 이름 붙였다. 17세기 중반에는 공처럼 둥근 성운도 확인됐다. 성운 발견은 기술 진보로 이룩한 발전의 상징이었다.

은하수가 많은 별과 일부 성운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 우주에 별과 성운이 어떤 모양으로 모여 있을까? 18세기 말 영국의 윌리엄 허셜은 이 문제도 망원경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별들은 당연히 은하수에 모여 있고, 은하수 안에는 같은 부피당 별의 개수가 대체로 일정하리라고 짐작했다. 따라서 한 방향을 따라 망원경으로 보이는 시야에 별의 개수가 많으면, 그 방향으로 은하수가 멀리까지 펴져 있을 것이고, 별의 개수가 적으면 그 방향으로는 은하수의 두께가 얇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얻은 은하수 모습은 납작한 아메바 같았다. 윌리엄 허셜에 따르면 태양은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나 있고, 별들 사이에 군데군데 성운이 끼어 있었다.

그런데 망원경 시야에 보이는 별의 개수는 망원경 성능이 좋아질수록 더 늘어난다. 게다가 공 모양 성운 중 일부는 좋은 망원경으로 보면 별로 분해된다는 것이 18세기 중반에 확인됐다. 19세기 전반 윌리엄의 아들 존 허셜은 별보다는 성운을 더 찾고 정밀 관측하는 데 주력했다. 성운은 모양과 특성 모두 다양했다. 어떤 성운은 좀 멀리 있는 별 무리(성단)였고, 도저히 별로 분해되지 않는 성운은 아무래도 가스와 먼지 덩어리였다. 남반부에서 잘 보이는 대소마젤란 성운은 별과 가스의 혼합물이었다.

1851년 대영제국 아일랜드의 3대 로스백작이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가스’가 소용돌이치는 나선 구조를 발견했다. 수준 높은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백작은 사비로 당시 세계 최대인 72인치 망원경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런 망원경으로도 안드로메다 성운은 별로 분해되지 않았다. 1900년 네덜란드의 이스턴은 기존 자료를 종합해서 은하수도 나름 나선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럴듯한 분석으로 수용됐지만, 독학한 기자 출신 명예박사라서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까지는 여겨지지 않았다. 몇몇 나선형 가스 덩어리가 거대한 나선형 별 무리 사이에 끼어 있다는 정도였다. 게다가 나선형이라고 밝혀진 성운은 알려진 수천 개의 성운 중 일부에 불과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25년 1월 에드윈 허블의 학회발표를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 은하수, 은하, 우주를 구별하지 않고 ‘우주’라고만 부르고 있다. 허블의 수치는 계속 바뀌었다.

1920년 4월의 대논쟁은 논리적으로 교착상태로 끝났지만, 이를 타개할 방증들은 섀플리가 재직하던 윌슨산 천문대에 계속 쌓이고 있었다. 1917년 100인치 망원경이 설치된 것이다. 1919년부터 관측원인 휴메이슨은 섀플리에게 안드로메다 성운을 별로 분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알렸다. 휴메이슨은 중학교 정도까지만 학교를 마치고 배달부로 윌슨산 천문대에 드나들다가 관측원으로 발탁된 사람이었다. 사진이 뚜렷하지도 않았고 기존 관측 결과와 너무 달랐기 때문에 섀플리는 이 정보를 무시하고 하버드대 천문대장으로 부임했다. 반면 섀플리와 사이가 나빴던 에드윈 허블은 안드로메다 성운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1923년 10월 6일 40분 노출로 찍은 사진에서 굵고 짙은 점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곧 사라질 신성이라고 여겼지만 며칠 후 같은 점이 다시 나왔다. 주기적으로 밝아지는 세페이드 변광성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910년대 후반 섀플리가 세페이드 변광성을 이용해서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완성해뒀다(섀플리는 그 방법으로 구상성단이 은하수 안에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에 따라 허블이 계산한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는 90만 광년쯤이었다(실제로는 280만 광년 내외). 삼각형 자리 성운까지의 거리는 조금 더 멀었다. 그렇게나 멀리 있다면, 두 성운은 은하수에 버금가는 거대한 별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이 발견은 한 세대 안에서 인류의 우주관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그 이전까지는 은하수와 은하라는 구별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우주와 은하수도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우주가 아주 거대하고 그 안에 은하수 같은 은하가 아주 많다니. 이 내용을 이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지만, 당시로는 적응하기 힘든 개념 전환이었다. 아인슈타인조차 1930년대 초까지 “은하 밖 성운”이란 말을 사용했다. 2차 대전 직전에야 은하수(Milky Way)를 고유명사로 은하(Galaxy)를 일반명사로 사용하는 용법이 가닥을 잡았고, 20세기 후반에 교육과정에 반영됐다. 원래 갤럭시란 단어는 그리스인들이 은하수를 부르던 고유명사 ‘galaxias’에서 왔다. 논문이나 현학적인 글에서 사용하던 말이었지만, 이제는 상품명에도 널리 쓰일 만큼 흔한 말이 됐다.

20세기 후반까지, 어쩌면 지금까지도 은하수보다 다른 은하가 더 많은 것이 알려졌다. 수만 년 전부터 보이던 은하수보다는 새롭게 ‘발견’된 은하들이 흥미로운 것은 자연스럽다. 재빨리 태세를 전환한 섀플리는 하버드 천문대를 이끄는 동안 7만6000개의 은하를 확인했다. 허블은 휴메이슨의 도움으로 보편적색편이를 발견하고 은하들의 형태를 나선은하, 타원은하, 불규칙은하로 대별했다. 허블답게 모든 중요 발견이 조금씩 어긋났지만, 큰 줄거리는 현대 우주론의 토대로 여전히 유효하다.

사실 은하수 은하에 대해 현재 알고 있는 주요 사항은 30년도 안 된 것이 많다. 남의 모습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만 자기 얼굴은 거울을 봐야 보이듯이 다른 은하들은 관찰할 수 있지만, 태양계 안에서 은하수 은하의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없는 탓이 제일 크다. 1994년에야 은하수 은하에 충돌하는 궁수자리 왜소은하를 발견했다. 이 왜소은하는 일단 은하수를 뚫고 지나갔다가 한참 후에 은하수와 합쳐질 것이다. 2002년에는 은하수 은하가 허블이 주장한 정상나선은하가 아니라 막대나선은하라는 것이 확인됐다. 다음 해 소위 큰개자리 왜소은하가 은하수 은하와 합병 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논란은 있지만 왜소은하급 질량이 은하수 은하에 들어오는 중인 것은 확실한 듯하다.

2008년경부터 2010년대 초까지 새로운 발견과 확신이 연달아 쏟아져 나왔다. 은하수 은하 중심부에 태양보다 400만 배쯤 무거운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다는 확증을 얻었다. 은하수 은하가 왜소은하나 작은 별 무리 또는 그들이 합쳐져서 나름 거대하게 성장한 것이라는 오래된 추정도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은하수 은하의 구상성단이 과거에는 왜소은하급으로 거대했었다는 증거를 발견한 이재우 세종대 교수팀의 연구도 기여했다.

현재는 유럽우주국(ESA)이 발사한 가이아 탐사선이 은하수 은하의 별과 성단을 집중적으로 관측하고 있다. 약 15억 개의 별의 밝기와 위치, 거리를 촬영해서 은하수 은하에 대한 이해를 몇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기대가 달성돼도 은하수 은하는 모든 별의 1% 내외에 불과하다. 밤하늘의 은하수가 사라지는 이 시대에야 은하수 은하를 간신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 용어설명

은하수 은하 : 통상적으로 지름 10만 광년에, 별을 2000억∼4000억 개 포함한다고 여겨지는 대형은하. 관측 가능한 우주에 2조 개 있다고 추정되는 은하 중에서는 무거운 편이지만, 별을 수십조 개 규모로 지닌 초대형 은하도 다수 있다.

왜소은하 : 별을 1억 개 내지 수억 개 갖고 있는 소형은하. 대부분 바둑돌 형태의 타원은하이지만 나선은하도 일부 있다. 별 300억 개에 지름 1만4000광년 규모인 대마젤란 성운은 아주 큰 왜소은하인지 작은 은하수급 은하인지 모호하다. 은하수 은하는 20개 내외의 왜소은하를 위성은하로 거느리고 있다.

구상성단 : 몇십만에서 몇백만 개의 별이 100광년 이내에 공 모양으로 모여 있는 별 무리. 200개 내외가 은하수 은하 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외견상 타원은하와 비슷하지만 은하수 은하에 비하면 별의 개수가 100만 분의 1, 왜소은하의 1000분의 1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