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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20년 01월 08일(水)
김병익 “과거 지우는 건 歷史 혐오 …‘관용’없는 적폐청산 지혜롭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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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비평가, 출판인, 그리고 독서가로 살아온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은 책이 고리가 된 갖가지 일에 매여 한 생애를 보냈다며 자신의 운명에 감사한다고 했다. 김선규 기자

■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

어느 민족도 잘못없는 역사 없고
개인 삶도 완전히 깨끗하지 않아
그래도 우리역사 자긍심 가져야

戰後 빈곤시대 살던 4·19세대
존재에 대한 성찰·사유로 견뎌
586은 사회적 저항 성공했지만
자기사유 부족해 부끄러움 몰라

‘광장’‘당신들의 천국’ 등
문학사에 전환점 이룬 책들
창업한 지 3~4년 사이 출간
자유·평등 위한 투쟁 단초돼


문학평론가 김병익(82)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이 좋아하는 단어는 ‘성찰’이다. 그가 말하는 성찰은 자신의 사유가 옳은지에 대한 성찰, 자신의 생각이 바른지에 대한 사유다. 다른 말로는 ‘되풀이-생각하기’다. “사람이든 글이든 사건이든 더 나아가 역사에 대해서든 되풀이해서 묻고 따지며 그의 편에서 해석하고 이해해 보려 했다”는 그는 평생 주장하기보다 듣는 것을 좋아했고, 스스로 ‘차하(次下)자’로 자리매김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버리려 무던히 애썼다. 그렇게 마련된 사유의 빈자리에 다른 사람들의 지식과 의견을 채우려 노력해왔다.

듣기보다 말하는 것이 빠르고, 입장이 선명할수록 환호받고, 이념과 진영의 말들이 부딪치는 시대, 이 원로 평론가가 ‘유연하고 균형 잡힌 지식인’이라는 수식어를 여전히 유지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균형 잡힌 지식인이라는 단어에 손사래를 치던 그는 “보수는 진보의 말을, 진보는 보수의 말에 귀를 막는 시대에 선생님의 말에 귀를 막는 쪽은 없지 않냐”는 말에 ‘차하자 추구 정체성’답게 그건 그만큼 어떤 입장도 없다는 뜻이라며 웃었다. 우리 시대 귀한 균형 감각에 대한 말을 듣기 위해 김 고문을 찾아갔다. 마침 올해는 그가 1970년 문학평론가 김현, 김치수, 김주연과 함께 만든 계간 ‘문학과지성’이 출범한 지 50년 되는 해다. 이들과 함께 문지 4K로 불리며 한국 문학사와 사상사 그리고 이와 맞물려 돌아간 한국 사회에 수고로운 역할을 한 김 고문을 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났다. 이야기는 계간 ‘창작과비평’과 양대 산맥을 이루며 우리의 한 시대를 이끌어온 계간 ‘문학과지성’ 50년에 대한 소감에서 시작됐다.

―올해는 계간 ‘문학과지성’ 50주년이 되는 해인데 남다른 느낌이겠습니다.

“50년은 엄청난 시간이고, 한 사람의 생애로 보더라도 짧은 시간이 아니고 사회적으로도 긴 시간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지난 50년은 근대에서 현대로, 현대에서 첨단으로 나아가며 너무나 많은 일이 빠르게 벌어진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한 잡지가 폐간과 복간(계간 ‘문학과사회’로 복간)을 거치며 자신의 소명을 해왔다는 점에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가 엄청난 진폭으로 움직인 50년, 책과 함께 작은 테두리 안에서 되도록 조용하게 살아온 것 같다. 문학 하는 친구들, 좋은 친구들과 함께했다. 과분한 행운이다. 돌아보면 개인적으로 참 운이 좋았다.”

―어느 책에선가 “평생 책이 그어준 테두리 속에서 바깥으로는 거의 나와 보지 못한 채 책이 고리가 된 갖가지 일에 매여 한 생애를 보내야 했다”고 하셨는데요.

“3남 2녀 중 막내였기에 어려서부터 6년 위 작은 형과 4년 위 누이의 책들을 일찍부터 접했다. 내가 사거나 구할 필요도 없이, 내 수준 이상의 상급생 책들이 널려 있었다. 그땐 몰랐는데 책을 보면서 또래에 비해 머리가 상당히 일찍 트였다. 개인적인 행운이다. 젊은 시절엔 카뮈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실존주의에 빠졌고, 10년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문학, 학술, 출판 기사를 썼다. 그 뒤 출판사를 열었고, 25년간 대표로 일했다. 책이 고리가 된 일에 매여 한 생애를 보내야 했던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하지만 정작 김 고문은 언론자유 운동으로 해직된 뒤 문학과지성사를 여는 것을 망설였다고 한다. 기자 시절 출판사 경영의 어려움을 본 데다 장사란 것이 암담했고 그걸 경영할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김현 등 친구들의 권유와 격려, 강요에 밀려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그의 말대로 운명이었다. 문지 4K와 황인철 변호사가 각각 200만 원씩, 1000만 원을 자본금으로 1975년 12월 청진동 해장국 골목 건물 2층에 문학과지성사를 열었다. 첫 책은 조해일의 ‘겨울여자’와 홍성원의 ‘주말 여행’.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첫 권으로 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계간 ‘문학과지성’이 강제 폐간된 뒤 8년 만에 이름을 바꿔 복간한 계간 ‘문학과사회’, 그리고 최인훈의 ‘광장’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이 이어졌다.

―뒤돌아보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책은 무엇인가요.

“황인철 변호사, 평론가 김현·김치수, 정치학자 정문길, 문학과지성을 만들고 운영하고 발전시켜온 먼저 간 친구들이 떠오른다. 가장 인간적인 기억이라면 동아일보 사태를 겪고 실업자가 됐다가 문학과지성을 창업하던 1974년에서 1975년 그 1년 사이의 일들이다. 권력과 자유가 충돌하는 그 싸움 현장에 있었고 문학 하는 친구들과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갔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그렇고, 내 인생의 전환기였다. 책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정문길의 ‘소외론 연구’ 같은 책들, 1970년대 후반 문학과지성을 창업한 지 3, 4년 사이에 나온 책들이다. 한국 사회 정신·문화사의 전환점을 이룬 책이다. 그 뒤 우리 사회가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을 벌였는데 그 단초는 문학적으로는 이 책들로부터 출발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당시 평론가 김현이 ‘창간호를 내면서’에서 ‘이 시대의 병폐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 시대를 사는 힌국인의 의식을 참담하게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한국 사회의 근원적인 병원을 패배주의와 샤머니즘으로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 정신의 확대를 제시했습니다. 이 질문은 지금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국인이 느끼는 참담함은 무엇인가요.

“김현이 던진 질문은 어느 시대든 유효하다. 21세기가 된 지 20년이 됐다. 20년 전, 60대였던 나는 새로 맞을 21세기에 대해 굉장한 기대를 가졌다. 나에게는 21세기는 과학기술,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 과학으로 인한 생활의 편리, 풍요의 시대로 여겨졌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리던 2000년 (25년간의) 문학과지성사 대표직을 후배에게 물려줬다. 이유는 기대하는 21세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난과 전근대를 통과해온 세대가 아니라 21세기 문명을 감당할 수 있는 세대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좀 멀리 떨어져 그 시대를 즐겁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집도 서울에서 일산으로 옮겼다. 하지만 지금, 풍요로워졌지만 문명과 부가 선의와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우울하다. 미국은 느닷없이 이란 사령관을 폭살했다. 국가 테러다. 사람들은 오히려 더 심한 고민에 빠졌고, 우리 사회는 혐오와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갈등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넘어 많이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의 갈등으로 확대됐고, 증오감은 오히려 ‘같은 부류’ 안에서 미세한 차이 때문에 증폭됐다고 말했다. “같은 진보주의 간 갈등, 같은 보수주의 간 갈등, 좀 더 가진 사람과 좀 덜 가진 사람의 갈등과 혐오가 더 커지고 있다”는 그는 “약간의 차이가 오히려 더 심각하게 양쪽의 관계를 결렬의 상태로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은 회의가 없는 신념, 반성이 없는 삶은 맹목이라며 역사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사건과 사태에 대해서든 예의와 관용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그만그만한 사람들끼리 다퉈… 정치가 졸아들고 잔망스러워졌다”

“파벌·당파 뛰어넘는 관록·권위 가진 이들 없어
어떻게 하면 상대방 무참하게 윽박지를까 몰두
상스럽게 말하니 행동도 정책도 상스러워져…
폭력·단식·삭발 아닌 토론으로 품위있게 논의해야”

“같은 부류내 미세한 차이로 증오 증폭… 갈등 더 커져
약간의 차이가 되레 심각한 관계 결렬 상태로 만들어”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그 밖의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
이편에 있다고 저편 부인해선 안돼… 이편의 한계 의식해야”


―원인이 뭘까요.

“군부 독재 시절, 그때는 권력의 억압과 자유를 향한 열망, 둘이 부딪쳤다. 대상이 분명했다. 1990년대 그 문제가 해소되고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성, 장애인, 외국인, 성소수자 등이 자유로운 삶을 요구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당연한 요구인데 한국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은근히 억압을 가한다. 예전엔 자유와 평등 같은 개념적인 용어 몇 마디로 그 사회문제를 뚜렷하게 제시하고, 싸우고 이를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제는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옳은데 화해를 못하는 사태에 부딪혀 있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그런데 정치는 더 잔망스러워졌다.”

―잔망스러운 정치라면.

“어디선가 ‘정치가란 자기들 때문에 일어난 일, 자신들이 일으킨 일을 해결하겠다고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다. 전 시대에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같은 정계의 어른들이 있었다. 파벌이든, 당파든, 그것을 뛰어넘어 정치의 무게, 권위를 보여주는 이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우열을 다툰다. 정치가 졸아들고, 싸움판이 됐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은 자기 파벌, 자기 집단 쪽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려 한다. 인격과 권위, 관록이 없는 인물들끼리 뒤엉키다 보니 잔망스러워졌다.”

정치학과를 나왔지만 정치를 안 하길 천만다행이라는 그는 정치인의 품위, 언어의 품위에 대해서도 짚었다. “정치인들이 말의 품위를 찾아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가장 무참하게 윽박지를 수 있을지, 그런 말을 골라서 한다. 그렇게 상스럽게 말하니 행동도 상스러워지고, 정책까지도 상스러워진다. 국회의원은 거리나 광장에서가 아니라 의사당에서, 폭력이나 단식, 삭발이 아니라 말과 토론으로 품위 있게 논의하기를 바란다.”

―어떤 길로 가면 되나요.

“관용이 아닐까 한다. 언제가 창가에 서서 문득, 내가 여기 이 안에 있다는 것은 내가 저기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는 생각에 미치면서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그 밖의 것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깨달음을 가진 적이 있다. 내가 이편에 있다는 것으로 저편에 있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되며 내가 이편에 있음을 확인하면 이편에 있음의 한계도 분명히 의식해야 한다. 나와의 다름을,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는 것. 그러면 차이가 해소될 수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그런 여유를 못 가진 것 같다.”

―신념이란 가장 해독을 끼치는 것이고, 확인은 위험한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회의가 없는 신념, 반성이 없는 삶은 맹목이다.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자기 사유가 옳은지 그른지 바라봐야 한다.”

이어 그는 며칠 전의 ‘친일 군가’ 뉴스를 거론하며 ‘역사에 대한 관용’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도 인디언, 흑인 차별 등 숨길 수 없는 잘못을 했다. 어떤 민족이든 잘못이 없는 역사란 없다. 우리는 2000년 동안 중국 영향권 아래 있었고 30년 넘게 일본 식민지였다. 그 안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잘못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모든 것을 부정하지 말고 우리 잘못이라고 반성하면서 그 역사를 우리 것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역사 자체를 없애거나 지우려 한다. 지워버리고 없는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 우리가 가지는 역사에 대한 혐오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친일파와 군사정권, 성추행 문인에 대해서도 몰아가기식, 마녀사냥식 집단적 평가가 아니라 보다 다면적이고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던 그는 “역사에 대한 관용이 없으면 역사에 대한 깊이가 생기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생애도 완전히 깨끗하지만은 않지 않은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역사에서 잘못을 지울 것이 아니라 일단 받아들일 때, 우리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든든한 자세를 취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역사를 지우게 되면 우리의 타락한 상태마저도 지워버리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과오와 실패,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적폐청산은 어떤가.

“그 역시 여유를 가지고 바라봤으면 한다. 적폐는 어느 시대든 있었다. 전통적으로 굳어진 폐단이 있기 마련이고 끝없는 갱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갱신이 혁명적이거나 파격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뇌물만 해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액수가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개방적이고 열려 있으면 고쳐 나갈 수 있다. 오래전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 기자가 한국은 ‘청산’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요즘 많이 난다. 정리한다고 당장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지 않는다. 적폐청산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 아닌가. 이 때문에 중국 문화가 20∼30년 후퇴했다. 적폐청산보다는 개선, 개혁이었으면 좋겠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한다며 적폐란 이름으로 정부나 사회를 개혁하려는데, 서둘다가는 오히려 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위 세대가 남겨놓은 유산과 아래 세대의 새로운 의식이 결합하면 보다 창조적인 변증을 이룩할 수 있다는 세대 연대론을 말해 왔는데요. 우리 시대 세대도 연대할 수 있을까요.

“세대 갈등은 언제나 있었다. 세대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부모와 자식 세대가 가장 큰 갈등을 겪은 시기는 개화기였다. 이광수가 그전 시대, 유교 문명을 비판하면서 근대화를 설교했던 그때, 세계사적으로도 러시아에서 혁명 전 세대와 혁명 후 세대가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세대 갈등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 예의와 존경이 함께했다. 지금은 형제간 재산 갈등이 흔하고, 서로 예의를 모른다. 그런 점에서 더 심각하다. 서로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에게, 위 세대는 아래 세대에게, 우리 역사에 대해서든 조상에 대해서든 사건·사태에 대해서든 관용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 생활 수준이나 문화 수준이 충분히 그럴 때가 됐다.”

―4·19세대 비평가로, 386(586) 비판과 퇴진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4·19 한글세대가 자기 세대의 정체성을 찾는 세대였다면 586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준 역사적으로 참 중요한 세대다. 진보주의, 마르크시즘을 수용하며 우리의 인식과 사유의 지평을 열어줬고, 사회적으로 권력 혹은 자본과 투쟁하며 사회적 저항운동도 성공했다. 하지만 권력과 대항해서 싸우고,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온 세대의 경우 자기 소신이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 실존적 사유를 할 시간이 없었기에 부끄러움 같은 것을 잘 모르는 세대가 아닌가 한다. 가령 법무장관 임명 사태의 경우, 우리 세대가 그런 입장이었다면 얼른 그만두었을 것이다. 장관 지명자는 끝까지 버티다 물러났다. 내면적 성찰을 한다면 많은 이의 입에 오르는 것 자체에서 오는 부끄러움을 알 텐데….” 김 고문은 품위 있고 타협적인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새로운 미래를 열 젊은 기수론이 선언된다면 두 손 들어 환영한다고 했다. 인터뷰는 다시 그의 책 읽기로 돌아갔다.

―요즘은 어떤 책을 보나요. 여전히 ‘마지널리아(marginalia)’ 독서법을 하고 있나요.

“도덕 책, 불경이나 종교 책 등 교훈적인 책은 별로 안 본다. 그것은 우리가 실행하든 못하든 이미 좋은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나이 드니 오히려 경제, 과학, 역사라든지 알지 못한 새로운 지식에 대한 책을 많이 본다. 보고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읽는다. 재밌겠다 싶으면 본다. 자유 독서다.”

‘마지널리아’는 김 고문의 독서법이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예전만 못해져 10여 년 전부터 궁리 끝에 책을 읽으며 아름다운 문장이나 처음 안 사실, 인상적인 주장 등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가 나중에 컴퓨터에 옮겨놓는 방식이다. 책 본문을 편하게 옮기며 자기 생각과 느낌을 덧붙이는 독서법이다. 그는 요즘도 메모하는 마음으로 한다고 했다.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책 읽기의 마무리 같은 의례다. 필요할 때 찾아볼 수 있고, 누가 볼 것은 아니지만 기록해 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이제는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치는 일이 힘들어져서 내년에는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가요.

“‘만들어진 성장’이라는 책을 보고 있다. 나는 늘 경제 성장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하지만 성장을 포기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성장 없는 행복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늘 품었다. 이 책을 보면서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돈을 주고받지 않는 관계가 많을수록 더 행복할 수 있다. 양적인 성장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수치에 환상을 갖고 덤벼들지 않고 수로 반영되지 않는 인간적인 관계, 생활, 이런 현실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이가 드니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자유롭게.”

파이낸셜타임스 컬럼니스트가 쓴 이 책은 지난 70여 년 동안, 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지표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맹신을 멈추고 제대로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책이다.

―건강은 어떤가요.

“특별히 건강을 위해 하는 것은 없다. 아침에 일어나 맨손체조를 하는 정도다. 다만 나이가 70대 중반 이후가 되면서 한 해가 갈수록 어디가 나빠진다는 것을 느낀다.”

―뒤돌아 보아 가장 생각 나는 순간은.

“군대 갔을 때 부대 배치를 받기 전 네댓 날 동안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때 연병장 하늘에서 운명의 베 짜는 소리를 들었다. 내 운명을 거기에 맡기고 초연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살아가면서 당황하고 다급한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올 테면 오라. 순순히 받아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대 중반에 그런 내면적인 침잠, 실존의 침묵, 한순간에라도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그 뒤 어려움과 사태를 견뎌낼 수 있었다”는 그는 평생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이제는 자신의 목표를 자유주의자라고 했다.


■ 김병익 고문과 책

고교때부터 헤세·카뮈에 매료
도스토옙스키 읽고 또 읽어
실존주의 심취… 사상적 뿌리


독서가 김병익의 책 읽기는 ‘자유 방임적 책 읽기’로, 이미 ‘소학교’ 시절부터 만들어졌다. 3남 2녀 중 막내로 형과 누나들이 보던 책이 널려 있는 환경에서 그에게 책 읽기는 일상의 놀이였다. 일제강점기 지도 읽기부터 김성칠의 ‘조선역사’, 국문학자 신명균의 ‘시조전집’, 정비석의 장편소설, 김내성의 ‘진주탑’까지 마음 내키는 대로 읽었다. ‘소학생’과 ‘소년’ 잡지를 탐독했고, 한 달에 두 권의 잡지를 보며 책상에 용돈만 있으면 사던 ‘사랑의 선물’ 같은 동화책과 나란히 꽂아두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고 화장실 가는 일 이외엔 책만 보는 독서인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은 헤르만 헤세의 ‘크눌트’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었다. 서울대 정치학과에 수석 입학해 이제는 사회과학책을 읽겠다며 문학책을 멀리하던 그를 다시 돌려놓은 작품은 ‘사상계’에 실린 선우휘의 중편 ‘불꽃’이었다. 한 젊은 지식인이 6·25전쟁 속에서 어떻게 좌절하고 삶을 선택하는가를 읽으며 느낀 깊은 마음속 울림과 함께 다시 문학책을 들기 시작했다. 청춘 시절부터 평생을 함께한 책은 도스토옙스키다. 대학생 시절 도스토옙스키, 카뮈를 읽으며 본격적으로 실존주의 철학에 심취하면서 실존주의는 그의 사상적 뿌리가 됐다. 군대 시절 보초를 설 때 황동규에게 빌린 영어판 ‘악령’과 ‘백치’를 읽었고,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연휴 때면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읽으려 했다. 그는 음울하고 비관적이며 세계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을 드러낸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음울과 비관주의를 벗고,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듯 세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얻는 데 도달했다고 했다. 공식 직함에서 모두 물러난 만년에 다시 도스토옙스키 전집 25권을 완독했다.

한편 정문길의 ‘소외론 연구’ 등을 통해 젊은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을 알게 됐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을 통해 자본주의의 물신성에 공감을 갖게 됐다. 에드가 모랭의 ‘20세기를 벗어나기 위하여’의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가져야 한다’는 대목은 그로 하여금 복잡한 현상과 구조를 단언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는 지금도 자유로운 책 읽기를 지속하고 있다.

인터뷰 = 최현미 문화부장 chm@munhwa.com
e-mail 최현미 기자 / 문화부 / 부장 최현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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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검사냐” 항의한 ‘강골’… 52세 삼성 스마트폰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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