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군고구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겨울 풍경은 여럿인데 거리에 등장하는 먹거리도 그중 하나다. 고소하고 달콤한 붕어빵을 굽는 수레가 나타난다면, 커다란 드럼통에 불을 지펴 고구마를 굽는 수레가 나타난다면 틀림없는 겨울이다. 군고구마의 사촌인 군밤도 있는데 불에 구워서 만든 것이니 ‘구운 고구마’나 ‘구운 밤’이 변해서 된 말임을 알 수 있다. ‘군밤타령’이란 민요도 있으니 그 연원이 꽤 오래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불을 쓸 줄 아는 것이 인간의 특징 중 하나인데 불을 쓰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음식 문화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익혀서 먹는 것도 큰 변화지만 그 과정에 조리(調理)를 하게 되면서 실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조리법이 있지만, 최초의 조리법은 역시 불에 굽는 것일 수밖에 없다. 삶고 찌고 볶고 튀기는 조리법도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릇도 필요하고 물과 기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조리법은 음식 이름에도 반영되는데 ‘찜’ ‘볶음’ ‘튀김’이 그것이다. 여기에 ‘조림’ ‘지짐’ ‘데침’까지 더해져 다양한 조리법이 수많은 음식 이름에도 기여하고 있다. 삶는 조리법도 흔하지만 ‘삶음’은 없고 ‘보리곱삶이’에서 ‘삶이’ 정도만 확인된다. 가장 원초적인 조리법인 굽는 방법은 앞에 쓰일 때는 ‘구운’으로, 뒤에 쓰일 때는 ‘구이’로 나타난다.

삼겹살이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 ‘로스구이’라는 정체불명의 말이 잠시 나타나기도 했다. 아마도 ‘굽다’란 뜻의 영어 ‘로스트(roast)’를 일본식으로 적당히 잘라내 ‘구이’와 결합한 말일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이 말이 잘 들리지 않으니 언중의 현명한 선택이 고맙다. 튀긴 옥수수를 뜻하는 ‘팝콘’이나 튀긴 감자를 뜻하는 ‘프라이드 포테이토’가 아무리 유행해도 ‘군고구마’의 자리는 넘보지 못할 듯하다. ‘구운’이 줄어든 ‘군’이 주는 구수함과 푸근함 때문이리라.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