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실감나게… 홍콩의 밤거리, LED로 되살리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뮤지컬 ‘영웅본색’은 무대에 1000여 장의 LED 패널을 설치해 홍콩 거리의 밤 풍경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래 사진은 극 중 자걸 역을 맡은 한지상의 모습.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 영화보다 화려해진 뮤지컬 ‘영웅본색’

1000여장 패널 입체적 영상
배경으로 들어가듯 몰입감
중장년 관객까지 끌어들여

이엄지 무대 디자이너
“경찰서 문이 교도소 문으로
영화처럼 공간 전환 빠르게
‘1초의 매직’ 통했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엄지 디자이너

최근 한국 뮤지컬은 LED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무대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존 뮤지컬 무대에서는 영상을 배경으로만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스트’ ‘젠틀맨스 가이드’ ‘그림자를 판 사나이’ 등에서 보듯 무대의 공간, 시간 제약을 넘어서는 효과적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상연 중인 뮤지컬 ‘영웅본색’은 LED 영상을 통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작품은 뮤지컬 팬의 주류인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장년 관객까지 유인하고 있다. 원작 영화 1, 2편을 합친 스토리가 낯익고, 극 중 넘버들이 영화 OST의 향수를 자극하는 감정선을 지키고 있어서다. 주연 배우들(유준상, 민우혁, 한지상, 이장우, 박영수, 최대철, 박민성 등)도 개성을 뿜어내되 원작 캐릭터의 자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뮤지컬의 가장 큰 특징은, 1000여 장의 LED 패널을 설치해 다채롭게 구현한 무대가 영화처럼 입체적 영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배우의 동선과 시점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영상은 관객에게 그 배경으로 들어가는 듯한 실감을 선사한다.

“이번에 ‘영웅본색’에서 영상을 무대로 적극 사용하는 일은 무대디자이너인 제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세트만 디자인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장면을 그리는 시노그래퍼(Scenographer)로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엄지 무대디자이너는 연출(왕용범), 영상디자이너(송승규)와 자주 ‘비주얼 미팅’을 하며 배우들의 연기에 맞는 영상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했다고 전했다. 관객 반응을 볼 때 LED 영상 구현은 성공적이지만, 준비 과정에서는 무대 공간에서 실제로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도전을 한 것은, 2020년에 관객을 만나는 ‘영웅본색’은 융복합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무대여야 한다는 데 제작진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뮤지컬은 영화와 달리 무대 전체 공간이 관객 시선에 바로 노출된다는 것이 제약으로 여겨졌습니다. 무대 세트는 물리적으로 전환하는 시간이 발생하는데, 저희는 LED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영화처럼 빠른 공간 전환과 시각 변화를 이룸으로써 그 제약을 극복했습니다. 그걸 저희는 ‘1초의 매직’이라 했는데요, 경찰서 문이 순간적으로 교도소 문이 되고, 레스토랑의 엘리베이터가 곧바로 병원 복도의 엘리베이터로 바뀌도록 한 것이지요.”

‘영웅본색’은 관객이 연기자의 시선에 따라 홍콩 거리에서 건물을 올려다보거나 반대로 옥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디자이너는 “3D 기술을 활용하지 않고도 LED 밝기 조절, 실사 이미지 활용, 카메라 각도 변화 등을 통해 입체감을 살렸다”며 “송승규 영상디자이너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 덕분에 퀄리티를 높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처럼 ‘영웅본색’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LED 스크린 혁신은 우리 뮤지컬 무대에서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디자이너는 “현재 미국 브로드웨이는 영상 활용을 줄이고 아날로그 무대로 관객을 만나려는 추세인데, 우리는 관객이 다채로운 무대를 보기 위해 영상을 선호하기 때문에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 관객이 요구하는 영상 수준이 높은 편이라며, 융복합 시대에 각 영역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그 수준에 맞는 무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뮤지컬 무대 혁신에 앞장서 온 오필영 디자이너도 “LED 패널과 영상 제작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무대의 시공간 제약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소스가 됐다”고 했다. ‘웃는 남자’ ‘스위니 토드’ 등의 무대를 꾸민 오 디자이너는 예그린뮤지컬어워드(2018)와 한국뮤지컬어워즈(2019)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국내 대표적 무대디자이너로 떠올랐다.

그는 LED 스크린의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무대 구성 요소 중 하나로써 꼭 필요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연 예술은 살아있는 배우와 그들이 움직이는 세계를 무대를 통해 보는 것인데, 디지털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는 극 중 인물이 그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을 관객에게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