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은 왜 시각적美 추구않는가…832쪽 미학書 번역하려 5년간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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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폄하’ 번역 전영백 교수

베르그송, 바타유,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푸코, 라캉, 알튀세르, 데리다…. 세계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은 현대미술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버클리대 명예교수 마틴 제이(Martin Jay)의 역작 ‘눈의 폄하(Downcast Eyes)’(서광사)가 번역 출간됐다.

“한 명의 학자가 어떻게 이토록 많은 내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경외감이 들 정도입니다. 일본에서도 최근에서야 출간될 정도로 번역하기 어렵다고 알려진 책인데 철학과 미술을 함께 연구해온 박사 제자들과 5년간 씨름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번역을 주도한 전영백 홍익대 미대 예술학과 교수는 “좋은 번역에는 내용에 대한 전문적 이해력, 외국어 역량, 그리고 국어 능력이 필요하다.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번역에는 전 교수 외에 이승현, 안선미, 최정은, 강인혜, 김정아, 황기엽 씨 등이 참여했다. 장장 832쪽에 이르는 이 책은 미술과 연관되는 철학이론의 ‘결정판’으로, 플라톤에서 시작해 데카르트부터 본격화되는 시각중심주의를 한 축, 그리고 그에 반하는 포스트모던 철학을 또 다른 축으로 하고 있다.

“책을 보면 196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며 현대미술이 왜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가를 알 수 있어요. 포스트모던 아트가 미적 숭고를 지향한 눈의 미학에 반(反)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근거를 사상적으로 알려주지요. 포스트모던 철학이 비판한 것은 시각의 특권화지 시각성 자체가 아닙니다. 시각과 반시각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떼려야 뗄 수 없죠.”

연세대 사회학과와 홍익대 미술사학과 석사를 마치고 영국 리즈대에서 미술사학과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전 교수는 대학에서 20년째 교편을 잡으며 홍익대 박물관장 및 현대미술관장을 지냈고 미술사학연구회 회장도 거쳤다. 대표 저서로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 전시가 이즘ism을 만들다’(한길사, 2019), ‘코끼리의 방: 현대미술 거장들의 공간’(두성북스, 2016), ‘세잔의 사과: 현대 사상가들의 세잔 읽기’(한길아트, 2008) 등이 있다.

전 교수는 서구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한국미술 세계화를 위해서는 우리의 작가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얼마나 한국적 인식체계와 문화적 차이가 녹아 있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구의 그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야 우리에게 유리하다. 서구의 사상을 공부하고 철학을 미술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예술 철학 박사이기도 한 서울대 김병종 교수는 이 책을 아널드 하우저 이래 명저라며 “방대한 내용으로 인해 읽어내기에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지만 일본에서도 번역돼 인문과 시각예술 전반에 걸쳐 좋은 책으로 알려져 스테디셀러가 됐다”며 “모처럼 훌륭한 책이 우리 학계와 미술계에 주어졌으니 오래 읽혔으면 한다”고 추천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