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U.S. View >한국, 핵 확산 저지 책임 무겁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전인 월성1호기는 한국의 선진적 핵에너지 사용을 입증해 주는 상징물이다. 연합뉴스

존 울프스털 前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확산 담당 선임보좌관

트럼프시대 核 리더십 흔들려
핵 확산 방지 체제 덕분 韓성장
보유 유혹 넘어 저지 역할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네 명의 전직 원로가 지난 2007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핵위기를 경고하는 내용의 공동 칼럼을 기고했다.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접근법을 바꾸지 않는 한, 세계는 핵확산의 위기에 빠지고 궁극적으로 핵무기가 다시 사용되는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를 담았다. 현 국면은 다른 나라들이 이 같은 문제에 있어 좀 더 글로벌한 리더십을 발휘할 시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명한 핵 정책을 추구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동북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핵 질서가 유지되고, 핵 위협을 줄이는 데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당시 그 칼럼에서 전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와 조지 슐츠, 전 국방장관인 윌리엄 페리, 전 상원의원인 샘 넌은 미국이 화급히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새로운 핵무장 국가들이 핵 사용 위협을 증대시키는 새로운 핵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원로들의 이 같은 경고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기 중 핵 위협 감소를 위한 경이적 노력을 하는 계기가 됐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러시아·이란과의 핵 합의에 이어 북핵 위협을 줄이기 위해 국제적 압박을 효과적으로 높였고 핵안보정상회의도 4번 개최했다. 2014년 서울에서도 이 정상회의가 열린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는 한편, 어렵게 얻어낸 기존의 핵 합의를 파기하고 러시아와 중국, 이란과 갈등을 벌이며 핵 위협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 같은 행동은 핵 개발을 하려는 국가들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비핵국가들이 기존 입장을 재검토하도록 부추기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핵무기는 다른 어떤 무기와도 다르다. 핵무기 실제 사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 같은 위험은 모든 국가, 특히 196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핵무기 및 관련 위협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안보와 경제적 안정성이라는 혜택을 누려온 나라들에 해당된다. 차기 미국 대통령이 보다 전통적이고 건설적 방안을 제시할지는 불확실하지만, 현재와 같은 핵 균형 상태에서 혜택을 입은 나라들은 현재 시스템을 보호·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독일과 더불어 핵확산 방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대표적 나라다. 전쟁과 분단을 겪은 두 나라는 핵확산이 억제되고 핵무기 사용이 금지된 세계에서 혜택을 누려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미국이 리더십을 갖고 방어 의지를 보여온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핵무기로 인해 안보 위협을 받고 있다. 역대 한국 정부는 북핵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투자를 해왔다. 2014년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린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아울러 한국의 과학기술진은 핵확산을 막으면서 핵 에너지 사용은 확장하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중심적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은 어떤 나라보다도 핵무기 위협에 노출된 나라다. 왜 세계가 핵 위협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나라이기도 하다. 핵 보유가 안보를 증진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이 안전해지려면 핵 보유 유혹에서 벗어나 오히려 대량파괴무기(WMD) 확산 저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갖고 보다 강력하고 일관되며 효과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은 오는 4월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 50주년 기념회의에서 회원국들이 NPT 가치를 재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또 핵무기 확산 저지 조항을 강화하고 군축 및 다른 이슈들을 NPT 규범 속에서 해결토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NPT 규범을 이탈해 핵 경쟁에 나서려는 트럼프 행정부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 같은 행동이 한국에 편한 일은 아닐 것이고 리스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글로벌 커뮤니티는 한국이 현재 미 행정부의 정책에서 좀 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것을 기대하고 있다.

과거 5년마다 열린 NPT 회의에서 몇몇 나라가 연대해 건설적인 해법을 발전시켜온 예가 있다.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는 현안에 대해 컨센서스를 만들며 진전시키는 괄목할 만한 역할을 해왔다. 한국도 현재의 핵 시스템에서 핵무기 사용을 방지하고 핵확산 세력이 내외적 압력에 굴복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의 핵 규범과 통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세계의 성장과 번영을 이끄는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한국도 이런 시스템 안에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만큼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시스템은 지속되는 게 좋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한국은 자국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주체 중의 하나로 만들어준 이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적극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