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스펙트럼>성적 100여 개 항목 꼼꼼히… 연봉 ‘극적 타결’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밀당’ 연봉 협상
드라마 ‘스토브리그’ 비교하니

단장 등 5 ~ 6명 모여 연봉산정
기록 외 ‘정성평가’ 비중 늘려
보이지 않는 공헌도 적극반영
훈련자세·생활태도 등도 살펴

SK 하재훈 연봉 1억5000만원
인상률 무려 455.6% 역대 1위
자기관리 철저·미래 가치 인정

최근 TV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화제다. 프로야구를 생생하게 묘사하며, 스토브리그 기간에 방영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프로야구 연봉협상 과정에서 매년 더 달라, 더 깎자는 선수와 구단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합리적인 선에서 절충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신경전이 연출되는 건 기본.

특히 드라마에서 그린 연봉협상 과정은 자극적이었다. 드림즈의 단장 백승수(남궁민)는 연봉산정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칼을 휘둘렀다. 그는 오로지 지난해 성적을 기준으로 새 시즌 연봉을 산정하겠다고 선언하고 실행했다.

그에 부합하는 사례는 있다. SK의 하재훈이 대표적이다. 하재훈은 지난해 데뷔, 마무리투수로 세이브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연봉은 2700만 원이었지만 올해는 무려 1억2300만 원이나 인상된 1억5000만 원을 받는다. 하재훈의 연봉인상률은 455.6%. 하재훈은 종전 400%를 뛰어넘은 역대 최고 인상률의 주인공이 됐다. 연봉 1억5000만 원은 역대 2년 차 최고 연봉이다.

그런데 하재훈의 연봉이 크게 인상된 건 지난해 성적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SK 구단은 그의 미래 가치를 인정했고, 나아가 깔끔한 자기관리에도 후한 점수를 매겨 큰 폭의 연봉 인상이란 선물을 안겼다.

프로의 가치는 연봉으로 환산된다. 연봉은 프로선수의 자존심이자 존재감의 바로미터인 셈. 프로야구는 비활동 기간인 12월부터 연봉협상을 시작한다.

구단은 단장을 중심으로 운영팀장, 전력분석팀장, 스카우트팀장, 1∼2군 기록원 등 5∼6명으로 이뤄진 연봉평가위원회를 두고 연봉을 산정한다.

A 구단은 자체 고과 60%, 정규시즌 기록 20%, 경기 출전 수(타석·투구 이닝) 10%, 코칭스태프 평가 10%를 반영한다. B 구단은 자체 고과 비중이 70%가 넘는다. 구단 자체 고과가 연봉 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구체적인 연봉 고과 산정 방식은 대외비. 구단 자체 고과 산정은 100개가 넘는 항목으로 세분돼 있다.

최근의 트렌드는 자체 고과에 ‘정성평가’의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 기록, 숫자로 입증되는 정량평가에 기울지 않고 공헌도 등 보이지 않는 부분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C 선수가 타율 0.300, 20홈런, 80타점이었고 D 선수는 0.270, 10홈런, 50타점이었다. 그런데 C 선수는 병살타를 10개 이상 남겼고, D 선수는 결승홈런이 7개였다. 이렇다면 C 선수는 고과에서 마이너스, D 선수에겐 플러스 점수가 주어진다.

작전수행 능력도 고과에 적극 반영된다. 작전수행 능력은 구단 기록원이 시즌 동안 누적된 정보로 반영한다. E 구단의 경우엔 코치 고과의 비중이 20%가 넘는다. 코치 고과는 훈련자세, 생활태도 등을 면밀히 살펴 부여된다. 일종의 ‘생활기록부’인 셈. 구단은 새 시즌을 앞두고 연봉 고과와 관련된 소식을 선수단에 전한다. 고과 산정 방식이 바뀔 경우, 상세하게 달라진 부분을 설명한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선 고세혁(이준혁)이 드림즈 선수들의 에이전트로, 백 단장과 팽팽하게 맞선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특정팀 선수들만 대리하는 에이전트는 없다. 게다가 실제 프로야구에서 에이전트의 조력을 받는 선수는 전체의 16%밖에 되지 않는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선 계약하지 않는 선수들을 압박하는 장면도 그려졌다. 드림즈의 백 단장은 펠리컨즈, 바이킹스의 단장을 만나 미계약 선수들의 포지션 대체자를 구한다는 뜻을 밝힌다. 드림즈의 미계약 선수들에게 계약하지 않으면 펠리컨즈나 바이킹스로 트레이드될 수 있다는 암시를 건넨 것. 미계약선수들은 펠리컨즈나 바이킹스로 넘어가면 주전은커녕 출장 기회를 못 잡을 수도 있다며 흔들린다.

정도의 차이,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제 프로야구 현장에서도 선수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술을 활용하곤 한다. 그 과정에서 연봉협상 실무자인 운영팀장은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선수들을 달래며 계약서에 사인을 받는 스타일부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윽박지르는 유형까지 다양하다. “코치직을 줄 테니 옷을 벗자”고 유혹하는 사례도 있다. 구단에서 연봉 협상을 차일피일 미루다 은퇴시킨 경우도 있다.

그런데 선수들도 ‘진화’했다. 특히 꼼꼼하게 연구하는 선수는 구단이 설득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F 구단의 관계자는 “G 선수는 공지된 연봉 고과 산정 방식을 직접 엑셀 파일로 담아, 자신은 물론 다른 선수들의 데이터까지 다 작성해 돌렸다”면서 “이런 선수와의 협상은 힘들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구단과 선수가 매년 1월 10일 이전까지 연봉 계약에 합의하지 못하면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연봉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만 3년 이상 프로야구에서 뛴 선수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올해는 마감일이 지났고, 연봉 조정 신청자는 없다.

한편 1990시즌까지 연봉 25% 인상 상한선이 유지됐다. 연봉 인상에 제한이 있다 보니 선동열 등 특급스타들은 모기업 광고에 등장하고 출연료를 받는 편법을 통해 실제 연봉을 보장받았다.

1984년 정규리그 27승과 한국시리즈 4승을 올린 당시 롯데의 에이스 최동원은 구단과 끝까지 맞서 연봉 인상 상한선을 깼다. 롯데는 연봉 인상 상한선에 맞춰 3472만5000원과 보너스 3000만 원을 제시했지만, 최동원은 6500만 원에 합의했다. 하지만 KBO에는 당시 규정대로 딱 25% 오른 금액으로 연봉이 등록됐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