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아들 하나 가슴에 묻고… 근심 사라질 날 없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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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주(1911∼1987)

33년 전, 그날의 꿈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형버스 사고가 나서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하고 사고 수습이 한창이었는데 ‘내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해서 ‘이거, 큰일 났네’ 하며 애태우고 있는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보름 전, 직장암 말기로 위중한 상태로 고향인 충남 천안 큰 형님 댁으로 모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갈이었지요. 어머니 살아생전 불효했다는 뜻으로 꾼 꿈으로 해석합니다.

17살 나이에 산골의 가난한 농부한테 시집와서 11남매를 낳아 키우신 어머니. 먹거리가 턱없이 부족해 쌀밥 한 사발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던 그 시절, ‘자식 많은 부모 걱정 잘 날 없다’고 새싹이 자라듯 쑥쑥 자라나는 자식들 배고플까, 탈이라도 날까, 수건 질끈 동여매고 바랭이, 억새에 손 베이는 줄 모르고 밭에서 일만 하면서도 근심이 사라질 날 없던 어머니.

돈이 없어 단칸 월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이 아들이 안쓰럽다며 형님, 누님, 사위들이 준 용돈을 꼬깃꼬깃 손수건 속에 숨겼다가 우리 집에 와서 펼쳐 내놓으시던 어머니. 전국 공모전에서 문학상을 몇 개나 받을 수 있는 글 쓰는 재주를 주신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떠나신 지 33년이지만 다시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맨날 업어주던 손주는 이제 결혼을 앞둔 35살의 든든하고 대견한 청년으로 자라 서울서 직장생활 잘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조용필 노래가 TV에 나오면 눈을 떼지 않으시고, 아내가 차린 밥상의 반찬과 타 드린 커피가 ‘입에 딱 맞는다’고, 아내가 목욕탕에라도 모시고 갔다 온 날은 ‘딸 같은 막내며느리’라고 아내를 칭찬하던 어머니였는데 무서운 암만은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열 명이 넘는 자식을 낳아 아들 하나를 가슴에 묻고 77세를 일기로 떠나신 어머니.

최근 모 기관에서 조사한 통계를 보면 부모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냈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높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문득 행방이 묘연해진 다섯째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안으로 삭이면서도 눈물을 자주 흘리셨습니다. 이제 나도 자식을 키운 아비가 되고 보니 그 눈물의 의미를 백번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가슴에 묻은 아들

돈 벌어 오겠다고/ 열여덟에 객지로 나가/ 소식 없는 다섯째 아들/ 약주만 드시면/ 생이별은 있을 수 없다고/ 그 아들 잊지 못해/ 눈시울 붉히시던/ 어머니.

부모는 청산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행여나 나타날까봐/ 동구 밖을 향해/ 눈도 못 감고 돌아가신…/ 그 아픔, 그 한(恨)/ 제가 압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이 마흔여섯에 막내아들로, 그것도 약골로 태어나 잔병치레가 많았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어머니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나. 이 아들은 철이 없어 천년만년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던 어머니가 어느 날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 가실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어머니께서 자식들에게 베푼 그 큰 사랑의 10분의 1도 돌려드리지 못한 이 아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만, 떠나가신 뒤 이렇게 가슴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저승에서도 이 못난 자식을 염려하고 계실 어머니께 속죄하는 마음에 절을 올립니다.

막내아들 박민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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