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靑에 절실한 ‘악마의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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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영 정치부 차장

1962년 10월 16일 오전 9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후일 미·소 냉전 시대에 3차 세계대전이 가장 임박했던 것으로 평가됐던 ‘쿠바 미사일 위기’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소집한 ‘엑스콤(ExComm)’이라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 구성 지시였다. 처음에는 ‘제한적 선제공격’ 옵션이 우세했다. 하지만 ‘엑스콤’ 회의가 거듭될수록 ‘해상봉쇄’파가 힘을 얻어 승리하면서 결국 쿠바 위기는 극적으로 해소됐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케네디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엑스콤에 적용한 규칙은 3개였다. 먼저, 자유로운 논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대통령 본인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둘째, 회의 중에는 기존 서열이나 절차는 잊어라. 마지막은, 최측근이었던 남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과 테드 소런슨 대통령 고문에게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집중적으로 제시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맡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신년인사회, 지난 7일 신년사에 이어 14일 신년 기자회견까지 3차례에 걸쳐 내놓은 신년 메시지는 케네디 전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쳐 내린 결론처럼 보인다. 반대 여론이 상당했던 부동산 규제부터 검찰 개혁, 경제정책 기조까지 변한 게 하나 없었다.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최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문 대통령이 “절차를 중시하고, 찬반 의견을 다 경청한다”고 평가했지만, 윤 전 실장은 “이미 마음속에서 결정이 끝났지만”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는 의견수렴이 아니라, 결론을 뒷받침하거나 반대 의견을 미리 달래주기 위한 요식 행위일 뿐이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는 심각하다. 지난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이어, 올해 신년사에서 발표한 ‘남북관계 우선론’까지 일련의 결정을 보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인사는 한 명도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문 대통령이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생일 축하 인사를 ‘긴급’ 전달했다가 북한으로부터 ‘설레발’이라는 공개 면박을 당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신년 기자회견에서 두둔하기까지 했다. 오히려 연일 문 대통령의 신년 남북협력 사업 제안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 비판하고 있는 북한이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 예일대 교수는 오랜 연구 끝에 “아무리 개인의 지적 수준이 높아도 동질성이 높은 사람이 모이면 의사 결정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질적인 의견을 기탄없이 낼 수 있는 ‘악마의 대변인’이다. 미·북 비핵화 협상이 경색 국면인 데다, 북한이 연초 핵·미사일 시험 도발까지 위협하는 2020년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이를 제대로 진화하려면 먼저 문 대통령은 청와대뿐 아니라 정부 부처에 의도적으로라도 ‘악마의 대변인’을 심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