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정의 생태학 Alive>‘흙수저’로 비하되기엔 너무 고귀한 흙… 오염물질 분해 등 생명체에 필수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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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래 정화해 식수 만들고
농작물·가축 성장에 절대적
‘흙 없는 지구’ 독성물질 천지

비료 남용 - 무분별 개발 여파
전세계 토양 3분의 1 황폐화

‘Silver spoon을 물고 태어나다’라는 영어 표현에서 ‘은수저’라는 말이 나왔고, 이를 우리식으로 변환해서 ‘금수저’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의 반대말로 ‘흙수저’라 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금’이나 ‘은’보다 못하다면 ‘동수저’가 나와야 할 것 같고, 이것도 충분히 부정적이지 못하다면 ‘동’을 경음(硬音)으로 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엉뚱하게 ‘흙수저’라는 말이 널리 쓰이니 말이다. 사람들이 ‘흙’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이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흙, 좀 더 어려운 말로 ‘토양’이라 불리는 지구 표면의 얇은 층은 우리의 푸대접과 달리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이다. 몇 년 전, 영화 ‘마션(The Martian)’에서, 화성에 홀로 남은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서 배설물로 농사가 가능한 토양을 만들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토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농작물과 가축의 성장에 필요할 뿐 아니라, 식수 공급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싼 값에 사 마시고 있는 지하암반수에서 얻은 생수는 땅 중심에서 지면으로 솟아난 물이 아니다. 지표면에 내린 비가 흙을 천천히 통과하면서 오랜 기간 정화돼 깨끗해진 물이다. 이뿐만 아니라, 토양 속에서는 우리가 배출한 온갖 오염물질이 분해돼 없어진다. 만일 토양이 없다면 우리 주위는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독성 물질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도 늘어나고 집약적인 농업을 하다 보니 이렇게 중요한 토양이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토양의 3분의 1은 이미 몹쓸 땅이 돼 버렸다. 지나친 비료와 농약의 사용, 토착 식물의 멸종, 산림 파괴와 개발로 인한 토양침식, 과도한 경운과 집중 농업 등이 그 이유로 꼽히고 있다. 이러다 보니, 황폐화된 토양을 다시 재생시키려는 노력도 여러 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휴농기에 토양이 침식되지 않도록 지표식물을 심거나, 토양을 갈지 않고 농사짓는 무경운 농업,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법 등이 있다. 열대 지방에서는 산림과 농업을 연계한 작법들도 시도되고 있다.

사실 대중이 토양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그리 나무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생태학이나 조경학을 전공한다는 사람들조차 토양을 우습게 보는 것은 매우 불편한 현실이다. 1991년에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생물권 2(Biosphere 2)’라 불리는 엄청난 규모의 생태연구 시설이 건설됐다. 외부 공기와 차단된 대규모 온실과 같은 설비로, 이 안에 사막이나 열대우림 등 지구상의 대표적인 ‘생물군계(Biome)’ 7개를 만들어 놓아, 지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복잡한 설계 과정과 엄청난 비용을 통해서 만든 시설이었지만 첫 번째 실험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공기 중의 CO2 농도가 너무 높아져서 안에 거주하는 생물들이 영향을 받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외부와 독립된 완전한 자연순환 지구 모사 장치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에는 CO2를 제거하는 기계장치를 몰래 설치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토양 속에 있는 미생물들이 숨을 쉬면서 내놓은 CO2 양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흙을 깔보다 일어난 일이다.

이 일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국립생태원’에 다양한 생물군계를 만들어 전시하고 연구하는 공간이 있다. 이 토양의 미생물 연구를 위해 시료를 좀 얻으려고 수년째 노력 중인데,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듣고 있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나 북극 툰드라는 물론 세계 곳곳의 시료를 얻어서 연구해온 나로서는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연구시설에서 토양을 얻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생태학자라고 하는 분들에게조차 ‘흙’은 ‘흙수저’의 흙일 뿐이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