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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 게재 일자 : 2020년 01월 20일(月)
“니, 가 봤나?”… 맨주먹 현장경영으로 일궈낸 ‘기업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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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혈단신으로 대한해협을 건너 100조 원이 넘는 롯데그룹을 일궈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8세. 고인은 불모지였던 한국의 유통·호텔·관광 산업을 개척해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사진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1980년대 고인의 모습. 롯데그룹 제공

해외사업 보고 받을 때마다
“가 봤나?” 몇번이고 되물어
“해봤어?” 정주영과 자주 교류
혈혈단신 신문 등 배달하며
100조원 그룹 만든 원동력

국내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호텔업·유통업서 사업 키워


“니, 가 봤나?”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생전에 계열사 대표들의 보고를 받을 때마다 이렇게 몇 번씩 물었다고 한다. 대표가 사업 현장을 직접 가 보고 상황을 알아야 사업을 제대로 꾸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중국이나 베트남 사업을 보고할 때마다 고인은 현장에 가 봤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셨다. 가 봤다고 하면 몇 번 가 봤냐고 또 물으신다”며 “대표가 직접 현장을 가 보고 상황을 알아야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철학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특히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지역의 전통시장을 꼭 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현지인들의 특성과 성향 등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전통시장이라는 것이다.

생전에 신 명예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골프 등을 자주 치는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 1990년대 초 겨울에 두 사람이 라운드할 때 골프장이 흰 눈에 덮여 공이 보이지 않자 빨갛게 칠한 공을 갖고 나왔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경험과 시도를 중시하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이봐, 해 봤어?”라는 말로 유명하다면, “니, 가 봤나?”라는 말은 현장을 중시하는 신 명예회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셈이다.

맨주먹으로 혈혈단신 대한해협을 건너 신문과 우유 배달 등을 하며 사업을 시작해 100조 원이 넘는 재계 서열 5위의 롯데그룹을 일군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영면했다.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오후 입원해 있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고 20일 밝혔다. 올해 98세로, 사인은 노환과 폐렴 합병증이다.

▲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롯데그룹을 키웠다. 왼쪽 사진은 일본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 여사와 함께한 모습. 가운데 사진은 1986년 7월 서울 근교 골프장에서 유찬우(사진 왼쪽부터) 풍산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골프 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2011년 6월 서울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을 방문한 모습. 롯데그룹 제공

신 명예회장은 1922년(주민등록상 출생년, 실제 출생은 1921년) 경남 울산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 5녀 중 맏이로 출생했다. 문학도의 꿈을 키우던 고인은 1942년 관부 연락선을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갔다. 우유와 신문 배달로 어려운 생활을 해 나가던 신 명예회장은 특유의 성실함으로 일본인 재력가의 도움을 받아 1948년 6월 종업원 10명과 함께 ‘롯데’를 설립하고 풍선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서양인의 상징’이라며 껌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던 일본인들이었지만, 신 명예회장은 오히려 풍선껌에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기발한 마케팅으로 일본 열도에 ‘껌 열풍’을 불러왔다. 풍선껌을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어 풍선처럼 만들어 노는 재미가 당시 변변한 장난감이 없었던 일본 아이들에게 장난감 대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껌 포장지 안에 추첨권을 넣고 당첨된 사람에게 1000만 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게 한 이야기는 신 명예회장의 천재적인 마케팅 능력을 잘 보여준다. 이후 제과업계의 ‘중공업’이라고 불리는 초콜릿 사업 등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신 명예회장은 한·일 수교 이후인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후 계열사들을 잇달아 설립하거나 인수하며 국내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호텔업과 유통업에서 사업을 키워 나갔다.

신 명예회장의 꿈은 2017년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타워가 문을 열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롯데월드타워는 ‘한국판 디즈니 월드’를 꿈꿨던 고인의 결정판이었다.

롯데그룹을 재계 서열 5위의 대기업으로 키운 신 명예회장이었지만 말년은 씁쓸했다.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신 명예회장의 명예도 땅에 떨어졌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mail 임대환 기자 / 경제산업부 / 차장 임대환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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