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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Leadership 게재 일자 : 2020년 01월 21일(火)
스타보다 팀 우선…‘플랜 Z’까지 내다보는 ‘萬手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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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이 지난 12월 15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KCC와의 경기 도중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유 감독은 국내 최고의 지략가이며, 과감하고 빈틈없는 전술전략을 펼친다. KBL 제공

■ ‘농구코트의 智將’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지략 뛰어나고 두뇌회전 빨라…‘판’ 읽는 시야 정확
농구 두뇌 타고났지만 ‘手’ 떠오르면 언제나 메모

예전엔 선수단 쥐고 흔드는 ‘중앙집권’ 스타일
최근엔 선수들과 ‘밀당’… 방향 정하면 코치 일임


유재학(57) 현대모비스 감독의 별명은 만수(萬手)다. 전략전술의 패턴, 즉 계책이 풍부하기 때문에 붙여진 애칭. 그렇기에 국내 스포츠계에선 대표적인 지장(智將)으로 꼽힌다. 농구는 게임 전개 속도가 무척 빠르고 변화가 많은 종목. 5명이 미리 약속한 패턴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변수가 많고,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그래서 플랜A는 물론 플랜B, C까지 마련하곤 하는데, 유 감독은 ‘플랜Z’까지 준비한다. 지략이 뛰어나고 두뇌 회전이 빠르며, ‘판’을 읽는 시야가 넓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농구사에서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꼽히는 유 감독이 ‘스타 출신은 지도자로 대성하지 못한다’는 속설을 깨고 젊은 시절부터 사령탑으로 승승장구한 이유.

유 감독이 프로농구에서 작성한 기록,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 감독은 35세이던 1998년 5월 당시 대우 지휘봉을 잡아 역대 최연소 사령탑으로 등록됐다. 이후 신세기, SK, 전자랜드를 거쳐 2004∼2005시즌부터 현대모비스를 이끌고 있다. 정규리그 통산 659승(481패). 한국농구연맹(KBL) 최다승이자 유일한 600승을 돌파한 사령탑이다. 사령탑으로 정규리그 600승을 거둔 건 한 시즌에 82경기(KBL 54경기)를 치르는 74년 전통의 미국프로농구(NBA)에서도 26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유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역대 최다인 6회 우승을 자랑한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12년 만에 한국 남자농구 금메달을 이끌었다.

농구에 특화된 명석한 두뇌를 타고났지만 유 감독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메모광.’ 밥을 먹다가, 산책하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떠오른 ‘구상’을 잊지 않고 저장하고 언젠가는 활용한다. ‘만수’라는 별명은 유 감독의 연세대 후배이자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코치로 보좌했던 이상범(51) DB 감독이 붙여준 별명. 이 감독은 “유재학 선배의 머릿속에는 항상 농구가 살아 꿈틀거린다”면서 “샘 솟는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적용하는 능력까지 뛰어난 분”이라고 귀띔했다. 역시 연세대 후배이자 연세대 재학 시절 당시 유재학 코치의 지도를 받았던 문경은(49) SK 감독은 “유 감독께선 무척 세밀하고 늘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지략가”라면서 “항상 유 감독께서 계산한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오기에 그분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 감독은 중앙집권제를 선호한다. 선수단을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스타일. 코트 안팎에서 ‘간섭’이 무척 많은 편이다. 운동을 잘하더라도 자기관리에서 허점이 드러나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마련. 그런데 일탈의 현장을 찾아내는데도 귀신 같은 감각을 발휘한다. 문경은 감독이 전하는 연세대 선수 시절 에피소드. 문 감독은 “하루는 숙소를 몰래 빠져나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강남으로 가서 놀았다. 그곳은 처음 가는 곳이기에 우리는 ‘(유 코치가) 여기는 절대 찾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유 코치가 나타났다. 그 이후 우린 (유 코치의) 손아귀에서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프로 지도자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다. 선수로서의 기본을 잃거나, 팀이란 조직에 해를 끼치는 꼴을 못 본다. “당장 짐 싸서 집에 가라”는 호통이 쩌렁쩌렁 울린다. 유 감독은 “잘 못하는 여러 명이 힘을 모으면,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한 명을 이길 수 있다”면서 “단체 종목이기에 특정 인물이 조직을 좌지우지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체’가 유 감독이 지향하는 절대가치. 그래서 그는 학연과 지연을 철저히 배제한다. 오로지 경쟁을 통해 기회를 준다. 평등과 공정이 선수단 운영 방침. 현대모비스의 훈련에서 고참, 스타에게 ‘특혜’가 없는 것도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스타, 고참이 훈련에 앞장선다. 현역 시절 유재학도 그랬다. 실업팀 기아의 코치, 감독을 지낸 최인선(70) 전 감독은 “유재학 감독은 선수 시절 엄청난 스타였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맨 먼저 훈련장에 도착한 뒤 가장 열심히 트레이닝했다”면서 “유재학은 솔선수범이 몸에 밴 ‘작은 거인’”이라고 기억했다. 가드였던 유재학의 키는 180㎝다.

그리고 지도자의 덕목 중 하나인 옥석을 가리는 데 탁월하다. 특히 숨어 있는 장점을 발굴하는 혜안을 갖췄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박하다는 평가를 받던 한양대의 양동근(39)을 전체 1순위로 지명했다. 양동근은 가드치고는 세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유 감독은 단점이 아닌 장점에 주목했다. 양동근은 체력이 강하고, 근성이 뛰어나다. 특히 수비벽은 최상이다. 볼 배급이나 득점보다는 수비에 초점을 맞춰 양동근을 뽑았고, 유 감독의 의도는 적중했다. 양동근은 이른바 현대모비스의 ‘질식수비’ 선봉에 섰고 역대 최다인 챔피언반지 6개를 수집했다.

유 감독은 2007년엔 1라운드 끝 순위(10번)로 함지훈(36)을 뽑았다. 당시 드래프트를 앞두고 중앙대의 포워드 함지훈 역시 박한 점수를 받았다. 포워드치고는 점프력이 떨어졌기 때문. 그의 점프력은 여전히 한 뼘 수준이다. 유 감독은 그러나 함지훈의 발놀림을 눈여겨봤다. 점프력은 없지만, 그 단점을 빠르고 경쾌한 발놀림으로 상쇄하기에 충분히 대형 포워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도박은 대박이 됐고, 함지훈은 양동근과 더불어 현대모비스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챔피언반지를 5개 모았다.

유 감독은 “양동근은 김선형(32·SK), 김태술(36·DB) 등 정통가드와는 다르다”면서 “기술로 보자면 양동근이 아래겠지만, 궂은일을 도맡고 수비 등 보이지 않는 공헌도에선 양동근을 따라올 가드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 감독은 “함지훈은 탄력이 없지만 영리하고 스텝이 빠르다”면서 “함지훈 특유의 생존법이 충분히 먹힐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유 감독이 그런데 최근에 바뀌고 있다. ‘밀당’ 도입이 눈길을 끈다. 특히 코트 밖에서 선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현대모비스의 기둥인 가드 양동근은 “유 감독께선 아버지의 마음을 지닌 분”이라면서 “여전히 코트 안에선 철저하고 엄격하신 분이지만, 밖에서는 농담도 잘하신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여전히 중앙집권제를 추구하지만 최근 선수단 훈련을 코치진에게 일임하고 있다. 유 감독은 훈련의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적인 건 참모인 코치들에게 맡겼다. 올해는 조동현(44) 코치가 1군 전반을 담당하고 있으며, 박구영(36) 코치는 2군인 D리그를 이끈다. 코치진의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

유 감독은 올 시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대형 트레이드를 하며 리빌딩을 선언했다. 올 시즌 후 자유계약(FA) 자격을 얻는 포워드 이대성(30), 다음 시즌 후 팀을 떠나야 하는 센터 라건아(31)를 KCC로 보내고 센터 리온 윌리엄스(34), 가드 박지훈(31)과 김국찬(24), 김세창(23)을 받았다. 세대교체라는 숙제를 풀겠다는 의미. 그런데 벌써 소득이 있다. 기대주 김국찬은 단점으로 지적된 기복을 줄이면서 이적한 뒤 경기당 평균 12.2득점을 올렸고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됐다. 김국찬은 올 시즌 KCC에 머물면서 8.1득점을 유지했다. 양동근, 함지훈처럼 유 감독은 김국찬의 숨겨진 재능, 잠재력에 후한 점수를 주었고, 김국찬은 A급으로 재탄생했다.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변신은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욱 속도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된다.

▲  왼쪽부터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장,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 양동근 현대모비스 가드, 이상범 DB 감독.

■ 유재학 감독의 인맥

유재학 감독은 상명초교 3학년이 되면서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농구사에서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꼽히며, 허재 전 KCC 감독과는 역대 최강의 가드 라인을 형성했다. 그러나 선수 경력은 짧다. 1986년 당시 실업팀 기아에 입단했지만 1991년 은퇴했고, 최희암 감독의 ‘호출’을 받아 모교 연세대의 코치로 부임했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한 직후 대우증권 코치로 기용됐으며 1998년 5월 감독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프로농구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다. 특히 2004년부터 16년째 현대모비스를 이끌고 있다.

나이 : 57
학력 : 상명초∼용산중∼경복고∼연세대
경력 : 1986∼1991년 기아 선수, 1991∼1997년 연세대 코치, 1997∼1998년 대우증권 코치, 1998∼1999년 대우증권 감독, 1999∼2003년 신세기 감독, 2003∼2004년 전자랜드 감독, 2004년∼현재 현대모비스 감독

방열(79) 대한민국농구협회장

유 감독은 롤모델로 방열 회장을 꼽는다. 방 회장과 유 감독은 기아 시절 사제지간이다. 둘이 만나면 말이 필요 없을 정도. 방 회장과 유 감독은 2010년엔 농구전술서인 ‘전략 농구’를 펴냈다. 유 감독은 “방 회장께선 이론과 기술을 겸비하시고, 인성마저 뛰어나신 분”이라면서 “방 회장으로부터 농구를 배운 건 행운이자 영광”이라고 강조했다. 방 회장은 “유재학 감독이 제자라는 건 내게 고마운 일”이라고 화답했다.

위성우(49) 우리은행 감독

위성우 감독과 유 감독은 절친한 사이. 지금은 나란히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사제지간이다. 유 감독이 현대모비스 사령탑으로 부임한 2003∼2004시즌 감독과 선수로 한솥밥을 먹었다. 2014년에는 인천아시안게임 남녀 대표팀 감독을 맡아 진천선수촌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고, 사상 첫 아시안게임 남녀 동반우승을 이뤘다. 유 감독과 위 감독은 특정선수 의존도를 줄이고, 수비에 포인트를 맞추는 전략까지 닮은꼴이다.

양동근(39) 현대모비스 가드

양동근에게 붙은 별명은 ‘유재학의 아들’. 유 감독에게 양동근은 현대모비스 왕조를 지키는 듬직한 애제자다. 양동근과 유 감독은 2004년 이후 16년째 호흡을 맞추며 6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 6차례 정규리그 1위를 합작했다. 양동근은 “생리학적 부모님이 계시지만 오늘의 저를 만드신 분은 유 감독”이라고 표현한다. 유 감독은 “양동근은 완벽한 자기관리로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리더”라고 칭찬했다.

이상범(51) DB 감독

유 감독과 이 감독은 연세대 동문. 유 감독은 1991년 연세대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고 당시 이 감독은 4학년이었다. 유 감독은 이 감독을 살뜰하게 챙긴다. 이 감독이 ‘야인’으로 지낼 때 유 감독이 전술공부를 도운 것은 유명한 이야기. 치밀한 유 감독과 선이 굵은 이 감독은 찰떡궁합. 이 감독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코치로 유재학 감독을 도와 우승을 이끌었다. 유 감독에게 만수(萬手)라는 별명을 붙인 게 바로 이 감독이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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