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역사… 그 위대한 순간들>1969년 라이더컵, 역사상 최고 명승부가 된 이유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의 잭 니클라우스(왼쪽)와 영국의 토니 재클린이 1969년 라이더컵 싱글 매치 마지막 18번 홀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뒤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라이더컵 홈페이지 캡처

최종일 동점상황서 마지막 매치
18번홀 파로 마친 美 니클라우스
50㎝ 파 남긴 英선수에 ‘OK’ 줘
16 대 16… 사상 첫 무승부 탄생

1969년 잉글랜드의 사우스포트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제18회 라이더컵이 열렸다. 역대 라이더컵 중 가장 빛나는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 전체가 아니라 영연방의 12명, 미국에서 그해 10위권에 든 선수들과 캡틴이 추천하는 2명 등 총 24명이 출전했다. 이때부터 참가자가 12명으로 늘었다.

1927년 새뮤얼 라이더라는 영국 사업가가 라이더컵 트로피를 만들었고, 영국과 미국 선수 간의 매치플레이로 승부를 겨루는 당시엔 이례적인 국가 대항전으로 출범했다. 3일 동안 포볼, 포섬, 싱글 매치 등 3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1969년 라이더컵에서 양 팀은 치열한 각축전을 펼쳤다. 마지막 날 싱글 매치에서도 1경기를 남겨두고 나란히 15.5점씩 얻어 동점이었다. 첫날부터 양 팀은 막상막하였고, 32경기 중 무려 18경기가 마지막 18번 홀까지 가는 접전이 연출됐다. 마지막 주자인 잭 니클라우스(미국), 토니 재클린(영국)의 싱글 매치만 남겨두고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매치뿐 아니라 대회 전체의 승부가 마지막 홀에서 가려지게 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인세 골프역사 칼럼니스트

파4인 18번 홀에서 둘은 티샷과 세컨드샷까지 실수 없이 공을 그린에 올렸다. 재클린이 먼저 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시도했지만, 공은 홀 50㎝ 앞에서 멈췄다. 그는 니클라우스를 한 번 쳐다본 뒤 마크를 했다. 이어 니클라우스가 4m 거리에서 회심의 버디 퍼트를 시도했지만, 홀을 스치며 1.2m나 지나쳤다. 만일 파 퍼트를 놓치면 미국이 패할 위기였지만 29세의 라이더컵 풋내기 니클라우스는 여유 있게 파세이브를 했다. 50㎝ 탭인 거리를 남겨놓은 재클린이 넣으면 동점, 희박하지만 실수하면 영국의 패배였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니클라우스가 홀 속에 든 자신의 공을 꺼내면서 갤러리는 경악했고, 미국 선수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듯 감싼 채 ‘오 마이 갓’을 연발했다. 니클라우스가 자신의 공을 들자마자 홀 옆에 있던 재클린의 볼 마커를 집어 들었던 것. 재클린에게 컨시드를 준다는 사인이었다. 악수한 뒤 둘은 어깨동무를 했다. 이로 인해 16-16, 라이더컵 최초의 무승부가 됐다.

화가 치민 일부 미국 선수는 니클라우스에게 “너무 가볍게 행동했다”고 볼멘소리를 했고, 캡틴 샘 스니드는 “2년 동안 기량을 갈고닦은 건 이기려고 한 것인데, 여기에 놀러 왔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니클라우스는 “재클린은 홈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0㎝의 짧은 퍼트를 해야 했고, 긴장 때문에 퍼팅 실수를 할 수도 있다”면서 “떠오르는 한 선수의 남은 골프인생이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니클라우스는 “남의 실수로 인해, 요행으로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음 날 언론들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보여준 세계 최고의 스포츠맨십’이라는 극찬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 라이더컵은 최고 명승부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재클린은 2개월 전 열린 브리티시오픈에서 영국인으론 18년 만에 우승한 영웅이었다. 재클린은 이듬해 US오픈 우승컵까지 차지했고, 2009년까지 81년 동안 유일한 영국인 US오픈 챔피언이었다. 둘은 지금까지 골프 코스를 함께 건설하는 등 우정을 나누고 있다.

골프역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