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장유정 교수 ‘경성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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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세상은 늙어가고 또 사랑은 식어간다／ 그 꿈꾸던 재미도 볼 수 없고／ 내 친구도 간 곳 없다／ 내 친구를 만나려고 나 종일 노래한다’.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이면서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 여가수인 윤심덕(1897∼1929)이 1926년 녹음한 ‘추억’ 시작 부분이다. ‘근대 노래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장유정(48) 단국대 교수가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소장 음원을 바탕으로 지난해 다시 불러 생명력을 되살린 노래다. 그전까지는, 윤심덕이 취입 3일 후 현해탄에서 투신한 사회적 충격 속에 음반으로 나와 당시 기준으로는 천문학적 판매량인 10만 장에 이른 ‘사(死)의 찬미’에 가려 존재조차 잊혔다. 루마니아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에 윤심덕, 또는 그와 함께 정사(情死)한 김우진이 가사를 붙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의 찬미’는 유명 가수들이 꾸준히 리메이크해 불렀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하고 흥얼거리는 사람이 요즘도 더러 있는 이유다.

구비문학을 전공한 장 교수는 대중음악 사학자이면서, 2012년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그가 발굴·편곡·재탄생시켜온 근대 가요 명곡은 이 밖에도 적잖다. 그 일부는 2013년 자비(自費)로 낸 음반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 : 1930년대 재즈송’에 담았다. 그는 노래의 공연과 강연을 접목한 ‘렉처콘서트(lecture concert)’도 2006년 창안했고, 이를 2017년부터는 동료 교수가 이끄는 밴드 주화준트리오와 함께 지속해왔다. ‘추억’ 등 9곡이 수록된 그의 2번째 음반 ‘경성야행(京城夜行)’이 지난 11일 나왔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내용을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 가사로 만든 ‘노라’는 한국 최초의 피아니스트 김영환과 한국 최초의 군악대 지휘자 백우용이 서로 달리 곡을 붙인 1921년 판과 1922년 판 모두 담겼다.

‘경성의 밤 사랑의 그 밤／ 그대와 나 만나 사랑을 나누던 그 밤／ 그대는 떠나고 나 홀로 남아 그대를 그리워하네’ 하고 시작하는 장 교수 작사·작곡의 타이틀 곡을 포함해 ‘경성야행’ 수록곡으로 꾸미는 렉처콘서트가 오는 2월 7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 클럽K 라운지에서 열린다. 장 교수가 ‘잊힌, 혹은 잊힐 뻔한 노래의 기억과 기록’에 흥미와 사명감을 가지는 배경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