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두 획의 묵적…채움과 비움의 교차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송수련, 내적시선 192×91㎝, 한지에 먹, 2017

산지가 많은 우리 산하를 벗어나,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광야 한가운데 서면 색다른 감흥을 느끼곤 한다. 비어 있다는 것, 시야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희열로 다가오는 것이다. 망망대해 같은 세계에 홀로 남겨질 때 비로소 나를 나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움’을 위해 부단히 채워야 하는 역설적인 경우도 있다. 송수련의 그림 바탕은 이미 글씨들이 쓰여 있는 화선지다. 그 글씨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갈 텍스트의 상징이다. 유전(流轉)하는 세계의 불확실성만큼 반투명 한지 지편(紙片)들이 차례로 덧대진다. 이 반복적 퍼포먼스는 그러한 깨달음의 나이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덧댄 결과 살짝 비치거나, 틈새로 언뜻언뜻하니 채워졌으면서도 비게 되는 교차점에 다다른다. 경험의 리셋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윤회의 인터스텔라에 던져진 것이다. 고요를 뚫고 드리워진 두 획의 묵적(墨蹟)은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는 걸까.

이재언 미술평론가